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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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유튜브에서 시대별 동아시아 지도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시대별로 계속해서 바뀌는 나라의 이름과 국경의 범위를 보며, 참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치열하게 선을 가지고 싸워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었다 줄었다 넓혔다 좁혔다하는 나라의 크기 변화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저 경계가 정말 정확하게 표시된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인구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을 테고, 지도로 명확하게 표시하고 측정할 도구도 없었던 시절, 왜 사람들은 그 옛날에도 국경을 지키고 빼앗으려 그렇게도 치열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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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학자 존 미어스는 2001년 그의 저서에서 한나라는 만리장성을 "명확하고 연속적인 경계선이라기보다는 대략적인 국경을 설정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제한하는 일종의 검역선"으로 여겼다고 설명했다.(중략) 당시 강력한 힘을 보유한 제국들이 설정한 국경 개념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엄격한 국가 경계 개념보다 훨씬 느슨한 형태였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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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 무렵부터 지도에서 다른 어떤 형태의 경계선보다 국경이 더 굵게 표시되기 시작했다. 어느 국가에 속한 영토인지 그 경계를 표시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중략) 이제 국가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되었으며, 세계의 모든 지역은 특정한 국가의 일부가 되었고, 국가는 단순한 정치적 단위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의 근원이 되었다. (중략) 결국 제국들은 붕괴했지만 제국들이 지도 위에 그어놓은 선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는 광활한 지구의 땅을 약 193개의 독립된 단위로 나누었다.(P.11~2)

이 책이 세계사의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직선적으로 이어간 역사 서술도 아니다. 그러나 연대 순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경계들을 다룬 1부와, 현재에도 세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경을 얘기하는 2부, 날짜와 시간대 사이의 시간적 경계, 바다나 상공의 경계, 우주의 경계를 다루는 3부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국경 이야기가, 매우 새롭고 신박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국경으로 바라보는 역사적 변화와 적응, 위기와 분열, 시작과 발전의 모든 과정이 신기할 정도로 이어져 있었고, 역사의 모든 과정에서 얽혀 있었다.

 특히 만리장성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전국시대인 기원전 5세기부터 3세기, 소국들이 독립을 하고 황제가 명목상의 존재로 전락하던 그때, 중국인들이 처음으로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는 것. 이때 성벽은  방어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영토를 표시하는 방법이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소국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이후 통일을 이룬 시황제는 최초의 황제로서  기존의 여러 성벽을 하나의 방어 체계로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진나라의 성벽은 분명 중국의 통일에 기여했다. 명나라 때는 군사 방어 체계였으며 북방을 진압하는 전망대이기도 했다. 청나라 때는 이 성벽이 중국 문화 영향력이 중국 영토가 아닌 동북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차단하고 만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데도 활용되었다. 만리장성의 목적과 의미는 수 세기 동안 급격히 변화해 왔다.

철의 장막이라 불리던 베를린 분단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베를린, 독일, 유럽 그리고 세계를 두 개의 적대적 진영으로 분리했던 경계선. 처칠의 표현대로 철의 장막이었던 이 분단선은 20세기 대부분 동안 유지되었다. 1989년 동유럽 전역에서 연이은 혁명이 일어나고 각국 정부가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9일 동독 정부는 국경 개방을 발표했다. 그날 밤 베를린 시민들이 스스로 그 장벽을 허물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재 철의 장막이 지나갔던 자리에는 유럽 그린벨트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가장 어두운 역사 속에서 긍정적인 무언가가 탄생하기도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무척 공감된다.

이외에도 한 국가가 분단되어 서로 다른 체제와 이름을 사용 중인 한반도의 분단문제나, 한 지역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상황 (물론 하나는 주권 국가고 하나는 실체가 확실치 않지만)에서 자신들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이야기, 구글 지도 때문에 국경 분쟁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세계의 역사와 지리를 꿰뚫어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위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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