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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초록색 병
아르투르 게브카 지음, 아가타 두덱 그림, 엄혜숙 옮김 / 천개의바람 / 2024년 10월
평점 :
여러분은 책의 표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두려워하는 놀란 눈의 아이와 고양이가 보이시나요?
무언가 크나큰 공포에 질린 듯한 눈빛과 표정입니다.
싱그러움의 상징 초록색 너머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
그게 처음 나타난 건 언제였을까?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아마 부모님이 싸운 다음이거나, 아빠가 직장에서
또다시 승진하기 못한 다음일 것이다. (P.2)
언젠가 집안에 생겨난 불쾌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병.
짙은 초록색의 병을 볼 때마다 겁이 나고 가슴이 떨려요.
한자리를 차지하던 병은 거실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고
오직 아빠만 그 병을 꺼리지 않아요. 그 병은 점점 커져요.
아빠는 날마다 퇴근한 뒤 병 맞은편에 앉아 있어요.
아빠는 병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그럴수록 병은 더 커져요.
🔖
아빠는 내 행동에 반응하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있는
쪽을 때때로, 잠깐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 눈초리가
걱정스러웠다. 그 눈은 아빠 눈이 아닌 것처럼 무척이나
낯설었다. (P.10)
병은 점점 더 커져갑니다. 아빠는 병과 춤을 추기도 해요.
엄마가 아빠가 일하러 간 사이 병을 겨우 버리고 들어오자
처음으로 다시 우리 가족의 냄새로 집이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그 병은 저녁 아빠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오죠.
그렇게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아빠는 병 속에 갇혀 버립니다.
놀랍도록 집중하게 하는 이야기라 숨죽여 책을 읽었어요.
침입자인 초록병이 아빠와 집을 점점 잠식해가는 것만큼
글 페이지의 초록은 점점 그 양이 늘어가며 채워졌답니다.
초록색이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는 정말 처음이었어요.
그 공포를 느꼈을 아이 마음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어요.
아빠가 병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후 아빠는 세상과
단절되었고, 점점 글은 온통 초록으로 채워지고 맙니다.
아이의 가족의 이야기가 온통 초록의 공포로 물이 듭니다.
과연 이 초록병으로부터 아빠를 구할 수 있긴 한 걸까요?
시작은 작은 초록병 하나였어요. 그러나 그 작은 초록병은
결국 아빠뿐 아니라 모든 가족과 집과 평화를 앗아갑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이 아닐까요?
포기하지 않는 희망과 가족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희망이란
작은 씨앗은 아빠의 마음에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지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인생의 위기, 고통의 순간에
역시 누구나 알코올의 힘을 잠시 빌릴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위로의 방법이 사랑하는 내 가족을 잡아먹고,
우리 가족의 평화를 깨뜨리고 나를 가두어버린다면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공포요, 파괴의 방법이 됩니다.
그대로 마개가 닫혀버리기 전에, 마음의 문을 닫기 전에
선뜻 손 내밀어 주는 가족, 기다려주는 따스한 마음,
그리고 그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는 아름다운 순간이
함께 한다면 우리 얼마든지 극복할 수도 있다는 것,
이 책은 바로 그 희망과 기적의 순간을 이야기해요.
또한 아이에게 이 극단적인 상황이 얼마나 거대한 공포로
다가오는지 문장과 섬뜩한 그림들 속에서 느낄 수 있어요.
작고 힘없는 아동에게 이것은 학대와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이웃들의 태도에도 생각할 만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빠로 인해 초록을 물든, 즉 알코올 의존증 환자 가족인
아이와 엄마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너무도 차가웠어요.
'마치 너도 똑같아!'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그 눈빛을 통해,
아이와 엄마는 무수한 상처를 지니게 되지 않을까요?
엄마와 아이가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가족이라는 상황이
손가락질과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할만큼 죄가 있나요?
이제는 그들을 위해 선뜻 손을 내밀어 주는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이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로 그들의 이웃이니까요.
🌿위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