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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정지아 지음, 박정은 그림 / 마이디어북스 / 2024년 5월
평점 :
<강아지똥>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 우리 집 세 아이가 닳도록 읽으며 자란 책 강아지똥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집에 남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먼지 쌓인 골동품으로서가 아니다. '아! 추억이지...'라며 아이들도 한 번씩 오며 가며 넘기고, 강아지똥 이야기로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여러 번 하는 그런 책이다. 기억하는 느낌도, 좋아하는 장면도 서로 다르지만, 민들레를 꽃피운 강아지똥의 이야기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추억이고 행복이며 희망 그 자체로 자리 잡았다.
강아지똥을 비롯해 백여 편이 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주신 작가 권정생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의 글로 만나 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제목부터 담백하면서도 참 아름답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고 전쟁을 겪으며 몸까지 아파 어렵고도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권정생 작가, 정지아 작가의 표현대로 '이런 세상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강아지 똥처럼 살았던 사람' 권정생의 이야기를 따스하고도 담백하게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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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남을 아프게 한 적도 해친 적도 없는데. 도훈이는, 성태는, 청관이는, 왜 다 그렇게 된 것일까? (P.112)
마치 일제강점기를 다룬 역사 동화 한편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 권정생 작가의 치열한 삶 속엔 우리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가끔 등장하는 권정생 작가의 짤막한 글 속엔 고달픈 마음이 녹아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그럼에도 행복을 찾고 나눔을 실천하는 선함이 느껴지고, 그가 보여준 희생과 나눔 속에는 사람을 사랑한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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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를 떠돌던 지난 세 달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 길에서 정생은 자신처럼 고통스러운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예수님 같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 어디에나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했다.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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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노릇을 했을 때 그랬듯이, 지긋지긋한 병으로 죽어 가는 정생을 살린 것은 내로랄 이름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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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개똥처럼 더럽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잠 못 이룬 날도 많았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개똥이 민들레를 이토록 탐스럽게 피워올린 것이다. 정생은 그날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며 민들레를 보고 또 보았다. (P.133)
가난하고 아프고 소박했던 그는 늘 모든 이에게, 그리고 모든 것에게 자신의 따스한 품을 내어주고, 자신의 죽을 나누어주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준다. 권정생 작가는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주변을 품고 꽃피우는 강아지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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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생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떠나는 것이 아니고 그리운 이들의 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P.180)
어쩌면 권정생 작가는 정말 천사가 아니었을까. 희망을 글로 적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라고. 나눔과 희생을 동화책 속에서 펼쳐보라고. 그곳에서 싹튼 희망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글 속에서 빛내보라고 보낸 천사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픔과 고난이 가득했던 그의 삶이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어떤 존재도 하찮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늘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고, 안아주고, 나누고, 움직였다. 그리고 이젠 남겨진 그의 많은 이야기들이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고 안아주고 나누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힘들고 가난하지만 가장 고귀한 일을 한 작가 권정생의 삶. 이젠 그의 삶이 동화가 되어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차례다.
🌿위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