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가에쓰 히로시 지음, 염은주 옮김, 기타무라 다이이치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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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1월 8일 일본 최초의 남극 관측 대원 쉰세 명과 가라후토견 스물두 마리를 태운 남극 관측선 소야호는 안개비 내리는 도코 하루미 부두를 출항했다. (중략)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미지의 대륙 남극으로 향하는 모두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 있었다. (P.89)

지금의 러시아 남사할린 지역의 개, 가라후토견. 이 개들은 순종적이고 방향감 각도 예민하고 귀소성도 뛰어나, 썰매 견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이 내려진다. 남극 탐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던 반세기 전, 일본 최초의 남극 월동 대는 그렇게 스물두 마리의 가라후토견과 함께 불모지와 다름없는 남극으로 떠난다. 가라후토견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개썰매 훈련을 시작하게 된, 그저 남극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지구 물리학자 기타무라도 1차 월동대원 중 하나였다.

1차 월동대원들은 첫 탐사를 무사히 마치지만, 수의사 하나 없이 떠나야 했던 월동대들은 우려대로 몇몇의 개들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고난에 가까운 임무를 완수하며 1차 월동을 무사히 마친다. 교감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남은 가라후토견들을 며칠 후 도착할 2차 월동대의 썰매를 위해 잘 묶어두고 왔다. 하지만 기상 문제로 2차 월동대가 도착하지 못하게 되며 가라후토견들은 아무도 없는 남극에 남겨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당연히 개들이 모두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타무라 또한 가라후토견들의 생을 마무리해 주러  3차 월동대로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타무라가 도착한 기지엔 두 마리의 개, 타로와 지로가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기타무라는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나머지 개들의 생을 잘 마무리해주고 떠나온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참이 지난 뒤 밝혀진, 제3의 가라 후토견의 이야기가 있었다. 3차 월동 대가 도착하기 전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는, 9차 관측 대원에 의해 발견된 또 하나의 제3의 개! 이에 대한 실마리들을 모아, 마무리 짓고 싶던 기타무라는 가에쓰 히로시와 함께 정보를 모아 정체를 밝혀내려 60년 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기억들을 되살려내기 시작한다.

과연 누가 어린 타로와 지로를 지키며 일 년을 남극에서 견뎠을까?
1차 월동대원들과 열여덟 가라후토견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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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번역서를 읽다보면, 책속 인물들의 이름이 참 헷갈린다. 다시 책장을 넘겨 인물을 확인하고 돌아오기를 여러 번 하고 나면 어느새 인물에 익숙해지고, 그때부터야 독서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책은 인물보다 개들의 등장이 더 많다. 처음 가라후토견들을 모아 훈련을 시작하고, 다시 개들을 추려 남극으로 떠나 임무를 완수하기까지 수많은 개들이 등장한다. 그중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개들도 있고, 행방불명이 된 개도 있다. 1차 월동대가 돌아간 후, 그곳에 끝까지 남아있던 개들도 있다.

그런데 설원을 달린 열여덟 마리 개들의 사연들이 내게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앞장으로 넘어가는 일이 거의 없이 끝까지 집중해서 보았다.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지만 3시간 남짓한 시간에 완독했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아! 사람 이름보다 더 잘 기억나는 개들의 이야기라니! ㅋ

수십년이 흐른뒤 기억을 더듬어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그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그 느낌은 또 얼마나 짜릿했을까. 자신이 두고 온 열다섯 마리의 개들은 자신의 손으로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기타무라에게 남아있던 개들과, 탈출한 흔적의 목줄, 그리고 뒤늦게 발견된 또 하나의 제3의 견의 존재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유일한 치료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타로와 지로를 만난 순간, 인생 최고의 행복을 느꼈다니 말이다.

월동대가 되기까지, 그리고 월동대로서의 과정도 감동적이고 재미있었지만, 제3의 견을 추리해가는 과정도 참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개와 사람이 할 수 있는 교감, 그리고 진심으로 아끼던 개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려 가는 과정 속에서 추억도, 애정도, 안타까움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차가운 남극땅에서 함께 달렸던 개와 인간의 우정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위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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