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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 1089 ㅣ 씨앗읽기
노형진 지음, 김병하 그림 / 바나나북 / 2021년 9월
평점 :
저는 삼남매를 집에서 충분히 직접 돌볼 수 있는 길을 걷고 있지만, 저의 어린 시절은 책 속 주인공 현준이, 성우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엄마와 아빠는 늘 바쁘게 일하셨고, 조부모님이 저와 함께해 주셨지만, 넷이나 되는 작은아빠네 아기가 태어나거나 일이라도 생기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저는 동생과 단둘이 지내야 했거든요. 방학 땐 역시 맞벌이인 작은아빠 댁에 가서 동생들 둘을 더 돌보며 지내기도 했었어요. 당시엔 지금과는 또 다른 돌봄 문화였으니까요.
부모님들은 열심히 사시느라 여념이 없었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음은 분명한 사실이예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린 시절 그때는 외롭기도 했고, 원망한 순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저 역시 현준이처럼 조금씩 성장했고, 부모님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제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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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이네 집 비밀번호는 1089. 십중팔구 집이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빈 집에 들어오는 일은 외롭고 짜증 났다. 엄마와 아빠는 바쁘게 일하셨고, 늘 할머니가 현준이를 챙겨주셨으나, 얼마 전 아기를 낳은 고모네 집으로 할머니가 가셨기 때문에, 현준이는 홀로 시간을 보낸다. 11살이나 되었다며 큰소리를 쳤던 현준이는 후회 중이다.
어쩐지 현준이는 엄마에게 자신보다 회사가 우선인 것 같다. 아빠도 오직 엄마 편만 든다. 엄마 아빠는 뭘 모른다. 엄마 때문에 모둠 과제도 못 가져갔고, 그래서 점수도 깎였고, 청소도 했고, 가정통신문에 사인을 안 해줘서 방학 특강도 못 듣게 되었는데 엄마와 아빠는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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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구 소리를 질렀다. 누가 내 가슴에 불을 피워 놓은 것 같았다. 불이 자꾸 거세져서 위로 치솟았다. (P.31)
현준이는 같은 반 성우를 놀이터에서 만난다. 성우는 엄마도 안 계시고 아빠도 바쁘고, 동생 성아를 보느라 학원도 못 다니면서도 어른스러웠다. 상처가 많아서 빨리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성우네 집에서 성우 아빠가 해준 저녁도 먹었다. 작고 낡은 집이지만 왠지 자신의 집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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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가 부러웠다. 행복은 크기를 잴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난 엄마도 있고, 큰 집에 사는데 왜 성우가 더 행복해 보이는 걸까? 행복은 뭔지 모르게 어려운 것 같다. 어쩌면 쉬운 걸까? 아니, 잘 모르겠다. (P.70~1)
사실 오늘은 현준이의 생일이었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는 기억도 못 한다. 역시나 1089 우리 집은 빈 집이다. '열한 살 밖에 안되었는데...' 현준이는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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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9를 누르고 빈 집에 들어오니까 갑자기 겨자를 먹은 것처럼 코 속이 맵다. (P.74)
현준이는 결국 가족들에게 자신의 모든 마음을 털어놓는다.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엄마도 울었다. 아빠도 마음속으로 울었다. 과연 이대로 현준이네 가족은 괜찮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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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라인을 타며 아빠가 현준이에게 이야기했던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라는 표현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기울어도 넘어지기 쉽다는 것, 몸도 마음도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쿵 하고 제 마음에 들어와 박혔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 같아서요. 각자의 자리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 정말 공감되었답니다. 중심을 잡아야 잘 달릴 수도 있고, 때론 시원한 바람도 느끼고 따뜻한 기운도 느끼고 진정한 행복을 느낄 테니까요.
아이들은 저마다 성장을 하며 삶의 중심을 잡아갑니다. 처음엔 서툴 수도 있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겠지요. 남과 비교하기도 하고 엉뚱한 일로 균형을 깨는 일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준이에게 성우라는 마음의 추가 결국 하나 더 생겼듯, 우리도 우리 삶의 중심을 잘 잡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조금 늦어도 상관없어요. 마음이 기울지 않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성장이고, 그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요.
🌿위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