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내기 왕 세종
권오준 지음, 김효찬 그림 / 책담 / 2021년 5월
평점 :
우리가 기억하는 세종은 성군이자 책을 좋아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임금이다. 게다가 세자 옹립 때문에 왕자의 난을 벌였던 태종이 장자를 세자로 세워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기에, 양녕을 폐세자로 만들면서까지 세운 충녕대군은 더욱 완벽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처음이라는 것은 매우 떨리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나 보다. 엄하고 무서운 잣대가 있던 태종의 아들이기에 뭐든지 처음부터 잘했을 것 같은 세종도 처음은 쉽지 않았다. 독서를 많이 하고 똑똑한 충녕이었지만, 왕의 자리는 정말 만만치 않았다. 충녕대군이 세자가 된 지 2달 만에 태종에게서 양위를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웠다. 태종의 양위 2달 전 판단이 역사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었으니까 말이다.
🔖"대궐 안에 두 임금이라니."
"대신들이 참 힘들겠구먼, 두 임금 모시느라."
"우리는 대체 어느 해 아래 있는 거야. 상왕인가, 아니면 젊은 임금이신가?"
충녕대군에게 임금 자리를 내주었지만, 실질적인 왕 노릇은 상황이 하고 있는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P.15)
이렇게 태종이 상왕으로 떡하니 버티고 병권까지 꽉 잡고 있기에 태평성대라고 생각한 세종은 그저 불안하고 겁이 나는 상황이 맞았을 것이다. 스물둘에 갑자기 임금이 된 세종은 잘하고 싶었을 것이고, 또 겁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임금이 되기는 했으나 자신의 편이 누구인지도 모를 상황, 세종은, 형을 중심으로 언제라도 다시 세력이 뭉쳐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형인 양녕과도 마음을 나누고 꾸준히 교류를 하고 유교적으로도 맞는 예를 다하여 부담스러울 수 있는 양녕대군의 지지세력도 포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태종은 양녕을 미워하지 않았다. 세자로 세웠던 큰아들로, 적장자이기도 했고, 어느 정도 기대와 지지도 쌓였으리라. 담을 넘어 놀러 다니기 바빴고 사고를 치기도 해 노여움을 사기는 했으나 여전히 사랑하는 아들이었을 것이다. 매사냥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칭찬을 퍼붓다 멋쩍어하는 태종의 모습도 참 인상 깊었다.
세종은 이렇듯 양녕과 양녕을 여전히 아끼는 상왕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상왕이 형을 폐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종은 놀기와 사냥을 좋아하는 양녕대군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기도 하고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지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하기도 했고, 태종에게 양녕의 능력을 칭찬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등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안전과 실리를 챙기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애도 지키고자 했던 것 같다.
또, 상왕이라는 부담을 무거워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상왕께 배우고 싶어 하는 총기 있는 임금이었다. 오히려 상왕이라는 큰 아군의 옳은 비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나갔다. 잘했다 칭찬을 받으면 너무나 기뻐하고, 실수나 짧은 생각에는 한없이 부끄러워하기도 했던 새내기 왕 세종. 상왕을 통해 참된 임금이 되는 법을 서서히 깨달아갔다.
그 떨리는 새내기 시절을 힘들어하거나 고통스러워 피하려 하기보다는 더욱 긍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삼은 현명한 세종이기에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최고의 임금, 세종대왕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 의견이 모든 사람과 다를 때는 내 생각이 짧은 것일 수 있습니다.
찬반이 섞일 때에는 서로 논의 해서 결론에 이르면 됩니다."(중략)
'아, 임금 하기 참으로 어렵구나. 내 생각이 지푸라기보다 짧았다니!'
그날 임금의 방에서는 밤새도록 긴 탄식이 멎지 않았다. (P.119)
세종에 대해 모르던 부분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가 단편적 업적을 통해서만 알아온 세종의 완벽함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처음은 떨리고 걱정된다는 것,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기보다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책이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