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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찾는 현대인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카를 구스타프 융 지음, 김세영 옮김 / 부글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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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Carl Jung)의 저서 '영혼을 찾는 현대인'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은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 심리학 책이다. 


저자는 과학 만능주의와 종교적 신앙의 상실로 인해 길을 잃은 현대인의 내면을 진단한다.

기계화된 사회에서 현대인이 겪는 신경증은 단순한 질병이 아닌, 삶의 의미를 상실한 영적 위기로 본다. 

융은 프로이트의 성적 리비도 이론을 한 단계 넘어, 인류 보편의 정신적 유산인 '집단 무의식'과 '원형(Archetype)'을 제시하였다. 


나아가서 인간에게는 신성(Divine)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으며, 내면의 영혼을 회복해야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인생의 후반기에는 외부적 성취보다 내면의 통합 및 개성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융의 분석은 단순한 임상 치료를 넘어 인류의 문명적 한계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물질문명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영적 요구를 심리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성의 한계를 비판하고,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조화를 추구했다.

또한 꿈 분석, 콤플렉스, 정신치료의 원리 등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여 심리학의 저변을 넓히는 공로도 있다. 


그러나 융의 심리학은 비과학성과 신비주의 경향으로 비판 받기도 한다.  집단 무의식이나 원형의 개념은 경험적으로 증명하거나 반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심리학보다 종교학이나 신화학에 가깝다는 지적이 대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의 심리학은 급속한 산업화와 물질주의로 인해 영적 가치를 상실한 현대인들이 내면의 공허를 극복하고, 무의식 탐구를 통해 진정한 자기(Self)를 발견해야 함을 분석심리학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써, 현대 심리학의 정언적 필요성을 확립하는 데에 확실한 주춧돌을 놓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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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전 雙典 - 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
류짜이푸 지음, 임태홍.한순자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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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평론가 류짜이푸의 저서 <쌍전(双典)>은 중국의 이대 고전인 <수호전>과 <삼국지연의>가 중국인의 국민성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신랄하게 해부한 문화비평서라고 하겠다.


류짜이푸는 두 고전이 중국인의 영혼을 타락시킨 '독약'과 같다고 주장하며 '쌍전(두 개의 고전)이 망친 중국인'이라는 파격적인 담론을 제시한다.


1. <수호전>의 문제 (폭력의 미화)

<수호전>은 '의기(義氣)'라는 명목하에 무자비한 살인과 폭력, 반인류적 파괴 행위를 정당화했다고 비판한다.

지배층의 압제에 저항하는 민중의 에너지를 긍정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야만성과 생명 경시 사상이 중국인에게 '폭력적 유전자'를 심어주었다고 본다.


2. <삼국지연의>의 문제 (권모술수의 일상화)

제갈량, 조조 등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구사하는 음모, 기만, 배신 등의 권모술수를 지혜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한다.

도덕성이 결여된 정치적 책략이 사회 전체의 심리적 기만과 불신을 낳았으며, 중국인의 영혼을 가식적이고 음험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두 소설이 결합하면서 중국인들은 겉으로는 공맹(孔孟)의 유교 도덕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음모와 폭력을 일삼는 위선적인 '위군자'가 되었다고 저자만의 문화 심리적 진단을 내린다


서유기나 홍루몽 같은 소설은 인간의 성선(性善)에 기반하고 있기에 인류의 '원형(原形)적' 문화를 전파하고 있지만, 수호전이나 삼국지는 인간의 성악(性惡)에 기반하고 있기에 인류의 '위형(僞形)' 문화를 전파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저자가 동양 사회의 부정적 정치 문화와 폭력성의 근원을 전적으로 이 두 소설에 돌리는 것은 일종의 환원주의적 오류에 가깝다. 소설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의 병폐가 오직 소설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논리적 비약이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 <쌍전>은 우리가 맹목적으로 찬양해 온 고전의 이면을 통렬하게 반성하게 만드는 신선한 문제작이라 하겠다. 다만, 고전을 '인간성을 파괴하는 악서'로 몰아붙이는 건 시대적 맥락을 거세한 채 현대의 윤리관으로 고전을 심판하려는 구성적 한계라고 볼 수 있기에 이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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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는 '독후감 소매상'을 자처하는 저자의 지적 편력과 인문학적 성찰을 나름 담고 있으나, 비판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자의 과거 운동권 이력과 편향된 시각이 고전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비판점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좌파 운동권의 이분법적 독선과 진보주의 중심의 맹신


이 책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등 70-80년대 운동권의 핵심 이념을 형성했던 책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는 고전이 가진 다양하고 보편적인 가치보다는, 저자가 지향하는 '반자본주의적', '운동권적' 시각에서 텍스트를 제한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고전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목적'을 강조하지만, 이는 곧 자신의 이념적 좌표만이 정의롭다는 '진보=정의'의 이분법적 인식으로 흐르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를 진보 지식인으로 정체화하며,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고전만 '위대한 고전'으로 추켜세우는 독선을 보인다. 


2. 선별적 고전 목록을 통한 편향적인 편집


책에 소개된 14권(특별증보판 15권)의 목록은 고전의 보편적 기준보다는 '86세대 운동권의 독서 체험'에 기반하고 있다. 즉 운동권의 의식화 교재 위주의 이념 선별적인 발췌에 해당한다. 


동서양의 인문학적 고전 전반을 다루기보다는, 사회주의나 급진적 진보 사상을 지지하는 저작들에 편중되어 있어, 다양한 문명사적 성찰보다는 정치적 사유를 정당화하는 '편향적 편집'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3.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의 가해자로서의 위선과 은근한 선동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감금 고문 폭행 사건(프락치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이었던 유시민은, 이 책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인간의 존엄'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무고한 민간인을 프락치로 오인하여 고문하고 감금한 사건에 대해 책 내에서 진정한 반성이나 구체적인 사과 없이, 낭만적으로 청춘을 회상하는 모습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위선'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자신이 저지른 폭력 피해자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것이다. 


또한 80년대의 폭력적이었던 운동권 상황을 '시대의 아픔'으로 치부하며, 텍스트를 통해 독자들에게 은근히 자신의 진보적 행동주의를 정당화하거나 선동하는 성향도 행간에서 엿보인다. 


결론적으로, <청춘의 독서>는 지식 소매상의 독서 안내서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저자 특유의 편향적인 이념적 색채와 과거 자신의 폭력적 운동권 행적에 대한 반성 부재가 고전의 해석을 '진보 진영의 논리'로 협소화한 책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동시에 안고 있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같은 거창한 문구를 모토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정작 그의 선(善)은 자기 진영에만 제한된 그들만의 편협한 이분법적 선에 매몰되어 있음이 '60대'를 훨씬 넘긴 저자의 책에 아직도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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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잭팟 - 폴 데이비스의 우주론 강의
폴 데이비스 지음, 이경아 옮김 / 한승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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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인 폴 데이비스가 인생을 통해 궁구해 온 우주론의 정수라고나 할까.


우주를 설명하는 데 있어 '거북 탑'과 같은 무한의 퇴보를 피하려면 과학적 설명에서조차 믿음에 근거해 받아들일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최대한 단순해야 한다. 


물리학은 관측자 참여를 만들어낸다. 관측자 참여는 정보를 만들어낸다. 정보는 물리학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우주는 관측자를 설명하고, 관측자는 우주를 설명하는 셈이 된다. 


유무(有無)란 본래 구분할 수 없는 개념이다. 완전한 유 혹은 완전한 무를 물리적으로 구체화하는 건 어렵다. 기껏해야 수학적으로나 (그것도 정의나 약속에 의해서만이) 관념적으로 상정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결국 존재란 무시무종이요 원인-결과의 영원한 순환이요, 그래서 결국은 ‘항상 그러할 뿐인, 여여(如如)할 뿐인, 표현할 수 없는 지금 여기 이것’이다. 


대부분의 우주학자들은 양자적 다중우주를 지지하면서도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양자적 다중우주에서) 생명체가 있는 우주를 얻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막대한 수의 죽은 우주인 셈이다. 


글쎄, 사사무애 도리로 보면 모든 양자우주가 일종의 다수결을 통해 ‘주류’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존재는 양자우주 속에서 무수히 존재하지만 다수결을 통해 지금, 여기의 나를 "Main Me"로 설정하여 꾸려가는 우주적 History를 써가고 있는 것 아닐까? 


존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결국에는 지금까지 논의한 모든 접근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실상은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들 접근(①우연에 의해 생명체를 허용하는 유일한 우주, ②이유도 없이 존재하는 엄청난 수의 또 다른 평행우주, ③자기 설명적이며 모든 존재보다 앞서 존재하는 신, ④역행하는 인과율과 목적론을 수반하면서 관측자가 있는 자기 창조적이고 자기 설명적이며 자기 이해적인 우주) 모두 저자에게는 아주 우스꽝스럽거나 불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 지닌 이해력 한계로 설명되는 근원적인 난국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 우리의 정신은 유전자와 문화자(meme)의 산물이다. 


저자는 인류가 우연한 자연 작용의 우연한 부산물 그 이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체와 정신이 희미하고 어렴풋이 감지된 생명체 원리를 통해 우주의 구조에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아마도 우주는 생명체인 관찰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시작되었고, 관찰자의 의식은 다시 새로운 우주를 시작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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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 선영명시선 24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정광식 엮음 / 선영사 / 199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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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는 님과 나, 절대자와 인간의 관계를 노래한 시이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며 나약한 존재이다. 나는 님이 “싱싱한 생명으로 채”운 “연약한 그릇”이요, “새로운 노래”를 불어 주는 “갈대 피리”에 불과하다. 님이 안겨 주는 이 생명과 노래를 시인은 “무궁한 선물”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님을 극도로 찬양한다. 님은 내 생명의 근원이다. 님은 “천상의 주인”이며, 내 생명 속에 뿌리 내린 의지이다. 


타고르는 어린이를 노래한 시편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어린이들의 활기와 재잘거림을 시편들에 등장시켜 사람들의 마음속에 유년의 세계가 보다 오래 보존되기를 바랐다. 그는 “어머니, 오늘은 우리의 휴일, 토요일입니다/ 어머니, 일을 그만두십시오. 여기 창가에 앉아 동화 속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인가 말해 주세요”(‘유적의 땅’)라고 노래했다. 이 시에서의 ‘어머니’는 유년으로부터 훌쩍 자라 버린 세상의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타고르가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의 산티니케탄에 학교를 설립한 것도 이와 같은 그의 시 세계와 무관하지 않았다. “나의 이 노래는 다정한 사랑의 팔처럼 내 아기여, 너의 주위를 음악으로 휘감을 것을./ 나의 이 노래는 축복의 입맞춤처럼 너의 이마를 어루만질 것을.”(‘나의 노래’)이라고 노래할 때 우리는 타고르 시의 천진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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