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립 밴 윙클
워싱턴 어빙 지음, 유진상 옮김 / 바른번역(왓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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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맞바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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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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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를 바라보는 후세대의 객관적 시선. 절망의 공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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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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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삶이 있다. 사람 사는 것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것이 글로 옮겨지면 보통의 삶도 그럴듯하게 윤을 내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는 그의 글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 나조차도 잊고 산 아무것도 보태지 않은 낯선 감정의 순간들을. 진심이 담긴 사연은 뭇사람의 마음을 쓸어준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안다. 글쓰기란 무엇일까. 나에게 글이란 것은 그저 읽는 것에 불과한데 많이 읽다보면 또 잘 쓰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인가보다. 기껏해야 누가 읽을 성싶은 서평을 쓰는 게 글쓰기의 전부이지만 나 역시 나름의 고충은 있다. 써놓고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투적인 표현들이 그것인데 이곳 저곳 너무 많이 쓰인 나머지 반들반들해진 문장은 혹여나 있을 읽는 이의 마음에 걸리지 못하고 그대로 휙, 지나쳐버릴 확률이 높지 않은가. 그런데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다. 나만의 스타일일랑 없고 앞서 읽은 작가의 문체에 영향을 받아 서평을 작성하기 때문에 지금 써내려가는 이 글도 아마 소설가 손홍규의 모습을 조금 닮아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그 목소리의 떨림마저 기록할 수 있는 사전이 나온다면 누구보다 먼저 반기겠지만 그런 사전은 앞으로도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이며 그러기에 소설은 스스로 사전이 되어야 한다. 역사에 매장된 숱한 언어들은 사전이 아닌 삶에서 발굴되어야 하고 사전이 아닌 소설에 등재되어야 한다." p.45

"그에 비하면 내 말은 허위에 가깝지 않았던가. 내 말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내가 쌓아온 사연들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의 결함은 사투리나 표준어의 결함이 아닌 결국 내가 살아온 삶의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p.46




한 마리의 소에게서 그는 소설을 알았다. 가난하고 순수했던 한 시대를 함께한 우직한 소의 삶은 한 사람의 생 전체를 아우르는 기억이 되어 영생한다. 가령 깜깜한 밤 주고 받았던 무심한 눈길과 손등을 스친 어미소의 까끌까끌한 혓바닥의 감촉은 그의 일부가 되어 가슴 한 켠에 자리해 있는 것이다. "소는 언제 울어야 할지 아는 짐승"이거늘 얌전히 집을 떠나며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은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함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글로 풀어낸 오롯한 진심 때문일 것이다. 쓰여지기 위한 글이 아닌 깊은 사유의 흔적이 베인 글이기에. 고로 산문집의 첫 장의 시작은 문학의 길을 열어준 존재에게 바치는 헌정글이자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를 떠나보내야 했던 그의 고백록이 되며 이어지는 장(章)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포착한 절망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린 시절 갑작스레 날아든 아버지의 사고 소식은 오랫동안 그에게 시시각각 떠오르는 악몽과도 같이 잔상을 남겼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손가락에 그의 기억이 붙박힌 것처럼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음을 떠올린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다. 말도 안 되게 어린 나이였고 정말로 죽길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상상에 그친 총동적이었던 최초의 삽화는 줄곧 내 기억에 붙박여 함께 자라났다. 그날 내가 겁을 덜 집어먹었더라면,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머릿속에서 무한히 되풀이 했다. 그렇게 스스로 키워낸 절망은 울리지 않은 전화벨 소리를 듣고 아무도 여닫지 않은 문소리를 듣게 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사연을 쌓아가는 존재"이며 사람은 절망 속에서 성장한다지만 앞으로 쌓아갈 날들에 그토록 깊은 절망은 많지 않기를. 요즘 나는 하루를 산다. 읽고 싶으면 읽고 그러다 지겨워지면 단 한 글자도 읽지 않고 몇 날 며칠을 보낸다. 해야 할 일이 생각나면 미루지 않고 움직인다. 가만히 흐르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읽히지 않을 책장의 책들이 아까워 조금씩 들인 습관은 어느덧 일상이 되었고 그렇게 책장 속의 짐은 자꾸만 늘어간다. 나의 삶처럼. 그런데 여기 죽음과 책 읽기를 연결짓는 이가 또 있다니! 타인의 공감은 늘 즐겁다.



"세계는 우리가 만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므로 만나지 않은 채 만나기 위해 책은 존재해야 한다. 거기에 다른 군더더기가 무슨 소용이랴. 오래전에도 나는 불온한 도서들의 대출기록부에 쓰인 이름들을 나지막이 호명해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던가. 손가락으로 그 이름들을 쓸어보는 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않았던가. 이 더러운 세계가 이처럼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덕분에 완벽하게 붕괴되지는 않았다는 걸, 그리하여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일터로 떠나듯 쓸쓸하게 책을 품고 어딘가로 돌아가는 사람들처럼 나 또한 등을 돌려 떠나야 한다는 걸 오래전에도 알았던 것만 같았다. 나는 무덤 속에 관을 내려놓듯 조심스레 책을 다시 서가에 꽂았다." p.153





중생에게 절을 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부처가 있는 경주 열암곡을 지나 이스탄불에서 야샤르 케말과의 아련한 만남에 이르기까지 그와 함께한 여행 한 걸음 한 걸음은 돋보기로 세상을 보듯 너무도 익숙해 쉬이 지나치는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세상 만물이 품은 아름다움과 절망의 사연을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소설가가 응당 가져야 할 삶의 태도가 아닐까. 사회의 아픔에 공명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진실을 보도하는 매체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고 권력의 힘으로 가려진 장벽 뒤에선 많은 이들이 조용하고 처절한 싸움을 이어갔다. 본래 아파 본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알아본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그의 시선 끝에 마음을 절뚝이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가 타인의 오른손에 자신의 왼손을 살풋 얹어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이다. 그러므로 글쓰는 일이야말로 세상과 밀접히 관련된 일임에 분명하다. 오늘도 우리는 읽음으로써 위로 받는다.




별책 부록의 재미를 선사한 두 편의 미니픽션에 대한 감상평이 남았다. 평온한 모습으로 숨을 거둔 한 남자의 죽음에서 시작되는 『헛것들』은 과거 국정원에서 일하며 사람들을 감시, 살해한 사람이 겪는 공포를 그려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잃어버린 사람은 한 그루의 나무처럼 혹은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 어둠이 내리기 전까지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 모든 것을 조망 가능한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사람들을 감시하는 시선과 그가 쌓아온 공포를 열망하는 소녀의 눈에 비친 것 모두 헛것에 불과하다. 산문집을 들추다 헛것들에 방점이 찍힌 문장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절묘한 일치가 있어 남겨본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전설 같은 풍문과 함께 돌아왔고 그림자 속에 스스로를 은닉해버렸다." (p.88)




『불한당의 소설사』는 오래 전 얻은 명성으로 중압감에 시달리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다. 등단 오십 주년을 기념하며 은퇴작을 쓰던 그는 소설의 결말 부분만을 남기고 진전을 보지 못 하던 중 친구의 문학상 수상 자리에 참석했다가 갑작스레 소설을 마무리 짓는다. 세상은 열광하고 예정대로 칩거에 들어갔던 소설가는 자신을 비난하는 비평가의 글을 읽고 다시 펜을 잡는다. 때론 사랑보다 분노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 비평가와 독자들의 반응이 상반된 것 역시 그의 펜촉을 움직이게 한 힘의 원천을 직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제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 하는 글은 분노에서 소실될 수밖에 없는 진심과 원고지 앞에서 절로 굽어지는 협심증 환자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에게 글쓰기란 "소유할 수 없다는 체념이 아니라 결코 소유하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부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엇이 됐든 도적질 한 것은 제 손을 떠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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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우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7
주나 반스 지음, 이예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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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쓴 문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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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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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따뜻한 실내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런데 문틈 새로 스며드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다가, 어쩌면 이건 오만일지도 모르겠다고, 눈으로 덮인 세상에 깨끗함과 포근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이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과연 저 바깥에 있는 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라난다. 냉혹한 추위와 칼바람은 그저 우리를 오돌오돌 떨게 할 뿐이거늘.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작별>에 실린 7편의 소설에는 쓸쓸한 이 계절을 닮은 외로움과 울타리 바깥에 존재하는 외부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키워드를 꼽아보았다. 어쩐지 두 단어가 풍기는 서늘함이 비슷하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 눈 결정을 손에 꼭 쥐었다가 펴본다. 내가 존재했음을 증명해줄 만한 것이 금방이라도 증발해 버릴 물기가 전부라면 어떤 기분일까. 수상작 한강의 『작별』은 어느 날 벤치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눈사람으로 변해있었다는 한 여성의 존재론적 이야기이다. 주목할 것은 이 황당한 사태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태도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길만큼이나 담담하다는 것. 상황을 타개 할 방법을 찾기 보단 '난처한' 자신의 처지를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늦은밤 식탁에 앉아 낙관적인 미래를 계획해보지만 늘 딱딱하게 뭉쳐 피로감을 유발하는 근육처럼 한편으론 자신에게 남은 시간(한계)를 알고 싶어 했다. 지난한 삶에서 비롯된 체념적 태도는 살을 에는 추위가 더는 고통스럽지 않음을 깨닫고 안심하게 한다. 그녀를 노예와 같은 존재로 느끼게 했던 부모와 폭력을 휘두르던 오빠의 죽음, 어느덧 멀어져버린 동생, 이른 나이의 결혼이 실패로 끝난 뒤 홀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그녀의 삶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반복적이고 무미건조한 삶은 스스로를 지하철 손잡이나 낡은 가방과 같은 사물로 상상케 했지만 정작 사물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을 때 그녀를 녹아내리게 한 것은 인간적 감정(키스, 포옹, 눈물)이었다. "조금씩 더 녹고 있는 건지, 반대로 얼어붙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심장부근의 미온은 그녀가 생과 사의 경계에 자리했음을 암시한다.



매번 차멀미를 견디며 연인을 만나러 오는 현수의 삶은 나무늘보의 것과 닮아있다. 날카로운 발톱을 안쪽으로 굽히며 타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생존을 위해 그저 버티는 삶을 사는 것은 그녀에게 동질감 비슷한 감정을, 가느다란 실의 감각을 불러들인 게 아닐까. 하지만 타인의 아픔에 쉽게 공명하는 그런 예민한 감각은 자신을 갉아먹기도 한다. 몸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연인의 자존심을 걱정하고 부모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놀랐을 아이를 다독이고 자신의 차가운 몸을 사과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사고의 피해자들은 이름 모를 죄책감으로 악몽이 되어 그녀를 찾아온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져버리는 취약한 존재로의 변형이야말로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 것은 아닐까. "홀가분했다. 미치도록 후련했다. 아니, 억울했다. 이가 갈리게 분했다. 아니, 아무것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을, 제발 더 생각을 해야 했다. 가능한 시간만큼, 조금만 더." (p.53) 내내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녀는 주어진 시간이 끝났음을 직감하고 조급해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별의 시간은 대부분 의미없는 말들로 흘려보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그 순간이란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그리고 마침내, 부서져내리는 몸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는 사력을 다해 뒤돌아본다. 이제 남은 것은 완전한 소멸 뿐, 하다못해 소금기둥이 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건만 그녀는 무엇을 위해 뒤돌아보았나. 그것은 어떠한 궁금증도, 미련도 아닌 고난했던 자신의 인생에 고하는 작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뒷맛이 씁쓸하다.



강화길의 『손』은 무언가 딱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사건과 마을 사람들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결과가 자명한 집단과 개인의 갈등 구도로 그린다. 퍽, 하고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와 마을 곳곳에서 풍기는 쿰쿰한 내음은 그들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권력과 계급에 공포스러움을 더한다. 가끔씩 뉴스로 접하는 폐쇄적인 마을에서 벌어진 경악스러운 사건들처럼 읽고 나면 왠지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권여선의 『희박한 마음』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노인이 한밤 중에 들려오는 기괴한 소음에서 부재한 연인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하지만 기억을 떠올릴수록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아득함의 끝엔 폭력을 휘두르며 그들의 사랑을 끄라고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려퍼진다. 당당하지 못하고 무력했던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여 사람들의 얼굴은 지워지고 정체성은 흐릿해진다. 그 모습은 마치 한껏 겁을 집어먹고 움츠러든 거북이와 같아서, 한때는 충만하고 선명했을 그 희박한 마음은 뒤집어쓴 세상으로부터 더욱 깊숙히 숨어들게 한다. 김혜진의 『동네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이사한 동네에서 가벼운 사고에 휘말리게 되면서 주인공은 외부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음적 시선과 배타적인 태도를 겪는데, 이는 낯선 이들로 가득한 군중 속에서 느꼈던 평온함을 오싹함으로 변질시킨다. 더 멀리, 더 낯선 곳으로 도망친다 한들 두 여성이 편하게 자리할 곳이 있을까. 극중 인물이 끝까지 사과하길 거부한 것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와 본성 자체를 부정하는 행동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 알지. 다 알아. 다 안다고." 중얼거리던 노인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은 성경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를 재해석한 것으로, 소설과 해설을 함께 읽는 것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띈다. 도시 소돔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지만 나그네 살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자유로움의 이면에 자리한 이기주의와 외부인을 배척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잘못된 이념을 가진 집단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선을 행한다는 것의 모순과 진정한 의미도 되짚어보게 된다. 언니라는 호칭이 주는 친밀감에 어쩐지 마음이 울적해지는 정이현의 『언니』는 모든 순간을 정직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개인과 속물적인 세상을 한 발 물러선 타자의 시점으로 서술한다. 극중 인물들이 교수의 중국어교재 번역 일을 떠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결코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권력 지향적이고 탐욕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타 전문대학 출신이 석사과정을 밟는 것을 학력세탁이라며 억울해하는, 이른바 수평폭력을 양산한다. 전쟁(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대비하기 위해 허섭스레기들을 주워 모아 얼기설기 만든 자기만의 방은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물려지고, 세상 앞에 무력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엎드려 앉아 숨을 깊게 들이쉬는 일 뿐이다. 격변의 시기에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배경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기억을 복기하듯 서술된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불쑥 솟아오르는" 시대이지만 동시에 "모든 게 변하고 있고,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미래는 영원히 당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미래는 공백이다"라는 말처럼 좋았던 것들은 점차 사라지고 우리는 그저 현재를 반복해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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