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서늘할 때는 그저 누군가와 같은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옮겨와준 마음만으로도 뭔가가 가능하다는 걸"(소설가 편혜영)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들과 "무엇을 기다리는 줄도 모르면서 지극한 마음"('우리는 같은 곳에서')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들. 아울러 박선우는 다채로운 사랑의 모델을 제시하는 작가라고 할 법하다.


궤적처럼 떠도는 '너'에 대해서, 사랑을 하면서 느끼는 형형색색의 감정을, 그 망설이다가도 열망에 찬 감정의 미세한 결을, 이윽고 그 모든 것들이 초래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능란하고 절묘하게 그려낸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이 끝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박선우의 소설에서는 사랑이 끝나도 또 다른 사람이 되어가며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의 탐구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간다.


밤의 물고기들
우리는 같은 곳에서
빛과 물방울의 색
느리게 추는 춤
그 가을의 열대야
고요한 열정
소원한 사이
휘는 빛


어떤 순간들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남은 생을 고스란히 들여도 소거할 수 없는 얼룩을 남기고 떠나버리는 것일까. 어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우거진 이파리들 사이로 잘게 부서져 내리는 빛. 그 아래에서 두 눈을 감고 있으면 네가 떠오르곤 했다. 아마도 살갗에 내려앉은 온기가 내 안의 물기를 뭉근히 데워 증발시키는 감각 탓이었겠지.


이 편지가 닿을 즈음 너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 있을까._ (「그 가을의 열대야」)


남은 생에 간절히 염원할 단 하나의 이미지. 그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_ (「밤의 물고기들」)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이경은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붙들고 있던 소설의 한 구절을 꺼내놓으며 말을 이었다._ (「휘는 빛」)


그 시절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보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나였고,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무 문제도 없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나는 굳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실은 다른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믿었다.


우리안의 다채로운 사랑의 모델, 박선우 작가님의 첫소설입니다

남은 생에 간절히 염원할 단 하나의 이미지...

우리는 그 안에 함께 있었고, 빛이 머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채로 반짝거렸다. 


읽는 내내 마음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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