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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대중들에게 언니네 이발관 이라는 밴드의 가수로도 알려져 있지만 <보통의 존재>라는 산문집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이석원 님의 에세이가 새로 나왔다. 나는 <2인조>라는 그의 산문집이 더 좋았다. (기회 되면 다들 이 에세이를 읽어보셨음 좋겠다.)
요즘 에세이를 읽고 싶었다. 내가 단단할 때는 인문학 책을 읽고 싶지만 불안정할 때는 말랑말랑한 에세이를 더 읽고 싶어지는 게 사실이다. 지금이 이 책을 읽을 적기라고 생각했다.
뭔가 말하고 싶긴 했지만 말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 부분을 이 책은 잘 건드려준다. 그러면서 공감하고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위안을 느낀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의 제목인 '어떤 섬세함'은 참 잘 지은 제목같다. 이 제목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다. 딴에 남을 위해준다고 섬세하게 배려심있게 행동했던 게 도리어 남을 더 불편하게 했던 경험을 얘기한다. 차도에서 끼어드는 차에게 양보했다가 뒤에 있는 많은 차들이 신호에 걸린 것, 택배 기사님이 힘드실까 음료를 드렸는데 거기에 부담을 느끼신건지 아니면 고마우셨던건지 작가님의 택배만 항상 문앞에 가져다주셔서 오히려 자신의 호의와 섬세함이 타인을 불편하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 나도 느끼는 감정들인데 그걸 건드려주니 더 공감된다.
친구가 없다는 작가에게, 그 나이 되면 친구 다들 없다고 말하는 친구. 사실 나도 친구가 그렇게 많이는 없고 그런 부분을 드러내는 게 좀 사회성 없는 거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나이에는 다들 그렇다는 말 한 마디에 저자도 나도, 그래 뭐 다들 그러고 살지, 인생은 혼자지, 근데 또 그러다가도 정말 기분 좋아지는 사람을 만나면 피어오르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는 거다.
여행에 대한 일화도 참 좋았다. 예전에 젊을 때 갔던 런던에서 느꼈던 감정과 나이가 더 들어서 갔을 때의 감회는 다르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지금 나이에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충실히 느끼자는 것은 내 나이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이석원 작가의 글은 몽글몽글하지는 않지만 뭔가 무심한듯 부드럽게 마음을 감싸주는 느낌이다. 맞아, 나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 있는데 겉으로 드러내기 힘들었지. 왜냐면 내가 이상한 사람, 멋지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까봐 말이다. 그런데 그냥 그럴수도 있어, 하고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빨간 표지가 겨울 느낌도 나고 이 시즌에 알맞는 책. 그런 책을 만나 이 겨울 행복하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