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는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명작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아직 그 영화를 보기 전임이 다행이다. 나는 책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아무리 대궐같은 저택과 호화스런 파티로 개츠비를 꾸며도 그 바탕에 있는 개츠를 숨길 순 없다. 출세한 속물로 전락하고 평생 사랑한 여자 데이지에게 죽어서도 배신까지 당했다. 그녀는 개츠비의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신흥 벼락부자인 개츠비가 사실상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임은 아이러니이며 이 소설의 중심축이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과 사랑한) 지나간 시간을 없애고 싶으며, 아직 꿈(데이지와의 사랑)을 좇을 수 있다고 여기지만 그건 사실상 개츠비 혼자만의 꿈이자 착각이다. 줄거리의 가장 중심에는 돈이 있다. 개츠비는 가난한 노동자 출신이지만 조직 폭력배와 손잡고 좋지 않은 일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데이지라는 여자도 속물에 돈 과 탐욕이 있는 여자다. 개츠비가 이 여자에게 그렇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순애보는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결혼한 옛 사랑 옆에서 얼쩡거리는 게 그다지 좋은 순애보라 할 순 없다. 개츠비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속시원하다기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앞섰다. 1920년대 대공황 직전의 미국의 요란한 상황의 축소판이 개츠비 집의 호화 파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겉은 요란하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인. 그런데도 왜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일까. 반어법으로 개츠비를 더 희화화하려한 것 아닐까 생각하면 더 짠해진다. 찾아보았는데 출판사에 밀어부쳤다 한다. 정작 작가 본인인 피츠제럴드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고. 어쨌든 1900년대 초 미국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이 책은 전문 번역가 김석희가 2013년 번역한 후 10년만에 다시 재번역하여 개정한 작품으로, 이 책 맨 마지막에 번역가의 작품해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번역이 매끄럽고 읽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서 작품에 더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출판사에서 그간 번역이 된 책이고 여러 번역가들의 번역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까뮈의 이방인도 그렇고 번역은 늘 뜨거운 감자다. 독자 입장에선 어떤 번역이든 아주 미묘한 원어만의 맛은 못 살리더라도 등장인물 행동, 정서 묘사가 섬세하게 되어 있으면 몰입하여 읽을 수 있을 것 같다.피츠제럴드의 일생과 그가 살았던 미국의 시대 상황, 이 책을 출간했을 당시의 여러 정황들을 살펴보면 더 이 책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어떻게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고 집필했는지에 대해 작품 해설에 대해 나와 있고 가장 말미에는 작가의 연보가 나와 있다.이 책을 다 읽었으니 영화를 보며 책과 같은점 다른점을 비교 대조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