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 지성사로 보는 민주주의 혐오의 역사
김민철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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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내게 다소 어려운 단어다. 집권당이 바뀔 때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로 독립하여 쓸지 '자유'라는 말을 붙여 자유 민주주의라고 쓸지 늘 논쟁거리가 된다. 과연 민주적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이며 민주주의는 논쟁적 단어인지, 정확한 개념이 뭔지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은 민주주의가 왜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쓴지, 어떤 계기로 민주주의가 인정받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민주주의는 오늘날 좋은 의미임에는 분명해보이나, 이를 혐오했던 때가 있었다.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책이 이 책이다.
나는 '민주'라는 단어를 대학생이 되어서야 제대로 만났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무슨 뜻인지도 정확하게 모른 채 선배들을 따라 간 집회에서 흥얼거렸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혁명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뜻도 정확히 모르면서.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저 투표할 권리, 다수결 체제로만 인식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단면만 보는 것이다.
투표, 입헌주의, 법치를 민주주의의 본질로 내세우는 것은 200년 전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고 한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중 무엇이 더 좋은 것이며 실행가능한 것인지,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인지를 계속 묻고 답하는 책이 이 책이다. 단순히 민주주의가 좋은 건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 보다는 그러한 생각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 본다. 결론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민주주의는 하나의 방향성이자 태도이며 사람들의 생활문화와 정치적, 경제적 현실이 결합하는 장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1부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게몽사상의 시대까지 민주주의의 역시랄 살펴본다. 그리고 2부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민주주의를 살펴본다. 이렇게 큰 두 가지 틀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 철학자들은 압도적인 비율로 민주주의에 반대표를 던졌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 민주정을 용서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민의 뜻이 최고 권력을 갖는 국가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제대로 된 국가조차 아니라고 못박는다.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혼합된 체제였던 로마 역시 멸망의 길을 걸었는데 로마 시대에서도 민주정을 경멸하고 두려워하는 정치, 사상가가 많았다.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지, 공화주의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더 심도 깊은 논의를 지속한다. 공화주의 패러다임이 권장하는 사회의 특징을 살펴보고 반대 급부에서 자연법학자들의 사고방식도 알아본다. 18세기 유럽의 정치체제는 단연 절대군주제였다. 자유로운 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저자는 희망의 찬송가가 아닌 절망의 서사시라고 불려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루소는 민주정을 세우고 유지하는 일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위대한 입법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민주정과 홉스주의적 절대왕정이 해결 못하는 문제들은 그밖의 여러 정부형태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계몽사상가들이 민주주의를 거부한 이유를 여러 관점에서 살펴본다.
프랑스 혁명 이전까진 거의 모든 사상가들이 인민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불안을 공유했지만 프랑스 혁명이 터졌다. 콩도르세의 역할과 그의 구상, 대의제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민주정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본다. 프랑스혁명으로 수립된 제1공화정 총재정부 시기에 민주파가 탄생하고 이에 따라 대의민주주의 정치사상이 어떠한지를 논의한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대의제와 민주제, 계몽이 합쳐져 상업사회의 습속을 개선하여 자유, 평등으로 번영, 평화가 오고 무정부상태와 군사정권은 방지된다는 것이다. 민주파의 경제사상, 프랑스 혁명의 결산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현대정치와 민주주의의 역사성을 논한다.
우리는 정말 민주주의가 실현된 국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하나의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이론으로 구축되었다. 자유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민주주의라야 하지만 실제로 의도되고 실현된 것은 민주주의의 무늬를 띤 투표제 위에 수립된 자유주의 정부였으며 그런 점에서 투표자유주의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역사성을 인식해야 한다. 비밀투표나 형식적 자유는 부차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역사를 배제하고 부차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정은 보통사람의 목소리가 통치를 좌우하는 정부형태여야 할 것인데 보통사람의 입장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류의 과거사는 엘리트의 통치도 인민의 통치만큼이나 불완전했으며 어떤 지식도 절대적인 것은 없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인간의 무지를 받아들이고 무지위에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것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임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개념,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김민철 교수의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뿐만 아니라 역사적 흐름을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살아가는 현대시민이라면 반드시 한 번을 읽어봐야 할 교양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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