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사피엔스는 거꾸로 공부한다
최승복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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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사피엔스'는 최재붕교수가 2019년에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며 이때부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스마트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만큼 스마트하지 못하고 늘 아날로그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점점 아날로그와 멀어지는 것 같다. 그것도 너무 빠른 속도로 말이다. mz세대라는 말은 좋은 측면보단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어 개그로도 풍자되고 있다. 나는 mz세대와 포노사피엔스가 겹친다고 생각하는데,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와 만나는 학생들은 모두 포노사피엔스들이고 아날로그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며 늘 폰을 잡고 유튜브, 게임만 보고 사는 그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왔음이 사실이다.(물론 그런 나도 폰 중독자이면서...)
그런 와중에 교육부 공무원으로 장기간 재직해온 최승복님이 쓴 이 책의 제목에 흥미가 생겨 서평단 신청을 했다. 저자도, 저자의 아내도 모두 서울대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두 딸들은 또 얼마나 공부를 잘할까, 라고 당연히 생각하겠지만 저자의 둘째는 스스로 결정하여 중학교를 잠시 그만다니고 요리학원을 다니다가 다시 복학하고, 대학교 가서도 다시 휴학하며 자기 선택에 따라 결정하고 그 삶에 책임을 지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있다. 대안학교를 다녔다는 일화도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을 허락해준 부모님 즉,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노사피엔스는 빈곤이나 계층상승 등 외재적 학습동기가 작용하지 않는 세대다. 그들에게 작용하는 동기는 내재적 학습동기뿐이며 따라서 공부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관심이 있고 욕망하는 것을 삶의 현장과 다양한 직업 분야에서 직접 경험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들은 지엽말단에서 출발하여 근본으로 파고들고, 뒤에서 시작해서 앞으로 배워가는 '후방향 학습법'으로 학습한다.

야후가 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지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1990년대 야후, 라이코스, 알타비스타와 같은 초기 검색엔진의 특징은 검색결과를 내용의 성격에 따라 카테고리별로 모아서 보여주는 식으로, 카테고리는 대부분 도서관의 문헌 및 도서 분류 기준과 일치했다. 반면 구글은 초기화면과 구성은 너무도 단순했지만 무한대의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검색자를 중심으로 검색결과를 보여준다는 전략을 활용했다. 구글은 검색자가 입력한 키워드와 반복적으로 방문한 검색자가 과거에 입력한 키워드까지 고려해 검색결과를 점수화했고 검색자의 관심을 중심으로 검색결과를 서열화해 보여주었다. 즉, 구글의 검색결과 제시 방식은 무한한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가 검색자, 학습자의 관심과 욕망에 기초하여 적실성과 근접성에 따라 분류될 때만 유의미한 지식과 정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모든 학교교육은 아직 지식과 정보에 대해 전통적인 저장량 개념을 가지고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를 인출할 수 있는지 측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가 스트리밍 자원으로 전환된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트리밍 되는 지식과 정보의 활용에 익숙하고 능통한 포노사피엔스에게 미래학교는 오직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학교, 포노사피엔스 학교다. 학습은 학습자가 자신의 관심과 욕망의 프리즘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바라볼 때야 비로소 의미와 동력을 갖는다.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 그 자체만으로는 학습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 사회의 학습자는 레고 블록을 가지고 노는 것과 유사하다. 디지털 네트워크 속의 지식과 정보는 모듈화 되어 있고 관련된 모듈끼리는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있지만 학습자가 관심과 욕망을 지니고 초점을 맞추지 않는 한 그것들은 무의미한 쓰레기 더미와 같다. 학습자는 구조와 체계에 구속되지 않으며 기초와 심화 단계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기초와 심화 단계는 공존하고 구조와 체계는 학습자의 관심과 욕망에 따라 비로소 구성되고 틀을 잡아 간다. 조벽 교수가 <조벽 교수의 인재혁명>에서 '창의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허용'이라고 말했듯이 학습자의 관심을 존중하고, 스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을 지닐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현대학교가 수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저자는 현재의 국, 검정 교과서 제도가 교사의 전문적 창의성과 학생들의 학습 다양성을 제한하고 교육과 학습을 저장량 개념으로 타락시키며 자율과 창의의 바탕인 학교 자치를 방해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체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계획 세우기를 반복하는 동안 '지지받고 있다'는 정서적인 편안함, 그리고 '누군가는 나를 응원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도록 돕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p.206

아이가 '제대로 욕망'하는 과정을 겪는 동안 부모의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녀가 게임에 몰입하면 부모는 그냥 안아주고 지지해주면서 아이들이 숨어서 죄책감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일만 막으면 된다고 말한다. 아이가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순간 나는 스티브잡스도 빌게이츠도 자신의 자녀에게는 스마트패드를 못쓰게 했다는 얘기가 떠오르며 또 반론을 제기하려 했지만 저자는 이 부분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근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미국 학교는 수업에 스마트패드를 가지고 오게 하며 수십 년 전부터 모든 교실에서 학생들이 전자계산기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가 가르쳐야 할 핵심 역량 여섯 가지로 스스로 자기 돈, 물건 관리하기, 시간 관리, 몸 관리, 마음 관리, 욕망을 직시하기, 타인과 주변 배려를 꼽는다. 어떤 방향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내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준 책이다. 이제 교육의 방향은 기존의 방향과는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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