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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새해에 어울리지 않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허무주의에 빠져있다. 김영민 교수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김영민 교수님 문체와 생각에 빠져서 사게 된 책이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허무주의란, 인생은 허무한 것이니 그냥 대충 살거나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여튼 그런 허무주의 관점에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썩 마음에 들었다. 삶은 늘 행복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견뎌내야 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기쁨을 건져 올려야 한다는 것. 그 논조에 십분 공감하며 읽었다. 허무주의와 헤르만 헤세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삶의 방향성이 같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읽고 또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 책이다. 책 내용은 그냥 술술 읽으면 읽힌다. 그런데 그냥 읽으면 안되는 책, 생각하고 읽고 곱씹어야만 하는 책이 바로 헤르만 헤세의 수필집 <삶을 견디는 기쁨>이다.
첫 페이지에서 내가 생각하는 바가 그대로 나와 있어서 반가웠다. "적당한" 쾌락을 즐기는 것. 그러니까 핵심은 '절제'에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기쁨을 간과하지 말고 거대한 행복을 누리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다. 내가 몇 개월째 하는 습관 중 매일 하는 것이 "하루 하늘 한 번 보기"다. 그 하늘이 흐리든 맑든 간에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내게 하루 동력을 준다. 뮤지컬을 보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는 커다랗고 짜리한 행복들도 좋다. 그러나 인생이 늘 그런 행복일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허무주의의 맥이다. 사소한 기쁨들을 가능한 많이 잘게 잘게 경험하는 것.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도 그런 맥락이다.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살아라! 아름다운 오늘을!" 헤르만 헤세와 같은 위대한 작가도 그 옛날에 이미 알았던 거다. 카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 알기는 아는데 실천은 늘 어렵다. 그래도 자주 상기해야 한다.
나는 지금은 거의 없지만 어릴 땐 불면증에 자주 시달렸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내 불면증이 감사하게 느껴졌을텐데. 헤세는 잠 못이루는 밤이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 시간만이 외적인 충격 없이 우리 영혼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충분히 놀라거나 솔직한 감정을 의식하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가장 정신적으로 각성된 시간 새벽, 그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인 것이다. 그래서 헤세는 심지어 불면증이 경외심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학교라는 찬사를 보낸다.
당신은 정말 행복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헤르만헤세는 어떻게 내리고 있을까? 행복이라는 무엇일까? 헤르만 헤세는 그가 병을 앓았을 때 쓰던 병상 일기를 통해 자신과 삶에 대해 생각하는 글을 쓰고 있다.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가 병상에 있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곧잘 생각했다. 즐거울 때는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고통과 불안, 죽음이 도사리고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의 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죽음과 삶이 하나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한 삶의 지혜를 이 책을 천천히 읽음으로써 배울 수 있다. 새해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