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us Gabriel VS -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차이와 분열을 극복하는 철학,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쓰키타니 마키.노경아 옮김 / 사유와공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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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르쿠스 가브리엘이라는 독일 실재론 철학자가 일본 인터뷰어와 줌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나는 이런 철학책을 읽는 것이 좋은데, 철학이야말로 인간의 사고에 균형을 지어주고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크게 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장은 나에게 타자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로 이루어진다. 타자성은 인간이 공유하는 하나의 특징이며 차이의 총칭이다. 고전 철학(칸트, 하이데거 등)에서는 정체성을 타자성과 같은 의미로 봤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며 현대는 소셜미디어가 정체성을 강요하므로 올바른 소셜미디어 사용 태도를 확립하고, 인류의 상호존중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인 윤리 자본주의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존엄을 공격하는 동기에는 이기적인 이해가 깔려있으므로 반드시 사회 구조와 도덕관념을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동조 압력이 심한 편인 것 같다. 동조 압력에서 벗어나 상대의 의사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는 허용이 필요하며 이는 매일 실천되는 일이어야하고 여기서부터 타자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타자를 생각할 때는 타자를 자기와 똑같이 대하고 진심으로 상대의 처지가 되어 볼 것을 조언한다.

2장은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며 (대면)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포럼이 의무화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좀 더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가정에서,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는 걸 민주 시민 의무로 규정하는 제도를 만들자고까지 얘기한다. 비슷하게 교육과정도 전공과 동떨어진 수업을 듣지 않으면 안되게 대학 커리큘럼을 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다소 극단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주장에는 사랑과 우정, 수용과 소통이 바탕에 있다. 죽일 의도 없이 적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의 적대적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이며 적을 이기려면 예상 밖의 행동이 필요하고 상대의 예상을 뛰어넘어야 한다.
또한 정체성 정치에서 차이에 얽매이는 정치, 그리고 그로부터 차이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대화를 많이 하고 타자의 처지에서 생가가며, 자신이 상대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으식하는 습관을 들일 때만 최종 정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을 성차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장에서 가장 단호한 주장은 자연주의-유물론-과학만능주의의 저격이었다. 사회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타자성을 배제하며 과학 기술의 발전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인드는 폐기되어야 하며 그 자리에 윤리교육이 들어와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즉 과학은 윤리에 종속될 때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3장은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내 가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나와 공유하는 것이 많은 중요한 공동체임은 틀림없다. 저자는 인생이 유한함을 깨닫고 현재를 살아라고 말한다. 자꾸 미래로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최선으로 살라는 거다. 그리고 저자는 부모 교육의 의무화를 강조한다. 나도 동의한다. 세상에는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언론 매체가 그런 걸 조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비출생주의에도 반대하며 자유란 '올바른 속박을 선택할 자유'라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의 속박은 필요하나 그것은 올바른 속박이어야 한다는 거다. 또한 갈등상황이 일어났을 때 '잘 싸우는' 방법 즉, 언제 싸움을 멈출지, 어떻게 멈춰야 하는지, 언제 물러나야 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비슷한 견지로 어떤 타이밍에 비효유럭으로 시간을 보내야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하는 것 만큼 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4장은 내 감정과 마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여기'의 행복은 언제나 타자와 함께 하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타자는 내 행복을 방해하거나 내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인데 타인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변화 그 자체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사람과 교류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코로나 시대의 봉쇄 정책을 강력하게 꾸준히 모든 장에서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행복을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하지만 타자에게 행복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지 그 누구도 타자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나도 격하게 동의한다.
또한 자기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의 작은 죽음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를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5장은 종교, 윤리, 타자와의 관계를 조명한다. '우리에게는 보편적, 도덕적인 가치관이 있다'는 신실존주의의 전제를 받아들이면 인간관계의 고민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는데 공통된 인간성에 대해 항상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리에 반하는 페이스북은 2030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했는데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타주의가 도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신 맞는 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좀 더 자신을 위해서 살았어야 하고 예수도 자기 가족에게는 폐를 끼쳤으므로 완벽한 도덕적 인물은 아니라고 본다. 이타적이기만 한 사람은 어느 순간이 되면 타인에게 폐를 끼치게 되며 그들은 거절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을 떠안고 괴로워하다 무너진다고 본다. 같은 의미로 칸트 윤리학에도 비판적인데, 정언 명령에는 성스러운 의지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도덕은 성인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칸트 도덕은 기독교적이었으므로 틀렸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플라톤의 <대화편>을 꼭 읽어보라고 당부한다. 대화가 점점 사라지고 SNS에서 쉽게 팔로잉 팔로우로 친구를 맺고 끊는 것이 가능한 시대에 진짜 소통이란 무엇인지, 타인과의 관계란 무엇이니 고민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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