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위의 낱말들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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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신 작가의 책을 처음 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게 술술 읽히는 느낌의 문체는 아니었다. 작가가 펼쳐놓은 문장과 단어의 세계를 말하는 '너'라는 주체가 작가 자신인지, 작가의 지인인지, 지인이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독자인지 헷갈렸다. 그냥 나일수도 너일수도 있는, 작가와 단어를 공유하는 누군가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편안하게 읽혔다. 단순하고 뚜렷한 글이 아니라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그래서 느리게 읽혔고 그러다보니 단어에 대한 내 생각을 책에 적어보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끼적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원했던 달 위의 낱말들은 이런거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동사 단어들과 명사 단어들이 목차에 등장한다. 작가님이 여는 말에 순서 안지키고 읽어보라고 하셔서 내키는 단어를 골라 읽어보았다.
지키다 라는 단어는 토마스 만의 책과도 연결해볼 수 있는데, 토마스 만같이 루틴이 철저하고 규칙적인 사람도 사랑이란 감정이 들어오면 지켜오던 루틴도 규칙도 엉망이 되고 만다. 그 원칙들이 다시 제자리를 지킬 때까지 사랑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된다는 거다. 사랑은 자신만의 루틴과 원칙이 깨지는 소용돌이같은 감정뿐만 아니라 원칙이 돌아와서 평정을 되찾고 지켜질때 어떻게 감정을 다스리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명사들은 한자의 구성을 하나하나 풀이하기도 하는데 가장 멋진 구절은 기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것이었다.
奇는 사람을 형상화한 큰 大가 옳을 可 위에 있다. 곡괭이 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해석해 기특하다는 의미도 있다. 발자취 跡은 발 足과 사람 겨드랑이를 형상화한 亦이 붙어 있어 이 글자에도 사람이 들어있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기적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갑작스런 돌발상황이라기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발자취의 모든 과정이 기적이라는 의미다. 한자어를 뜯어보니 단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오디오나 자동차, 휴대폰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물건에 대한 작가의 소회를 담은 에세이도 인상깊었다. 자신의 20년된 차 스펙트라가 폐차되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에 대한 감정, 홈시어터를 경험하고 느낀 이상한 쓸쓸함에 반하여 작은 씨디플레이어를 장만한 일화, 가족의 성화에 못이긴채 주방 리모델링을 하며 느낀 감정들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건 작가의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 글을 쓰게하는 동력이라는 것이다. 작은 것도 허투루 보지 않고 나만의 시선과 경험을 입혀 따스한 글이 탄생한다. 이루다, 버티다, 소원 같은 단어를 일상에서 많이 쓰고 접하지만, 그 단어의 질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 책은 여는 글이 가장 어려웠는데 다 읽고나니 약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달 위의 낱말들인지도. 여행을 떠나보면 낯익은 일상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자주 보고 쓰던 것들을 낯설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연습을 이 글들을 통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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