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위한 반성문
이대범 지음 / 북스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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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도 수필을 쓰는 수필가가 되고 싶었다. 글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지만 늘 가슴 한 구석에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꾸준히 글을 쓰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아무나 쓰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수필독서가가 되기로 했다. 잘 쓰여진 에세이를 읽을 때면 감탄하게 된다. 잘 쓰여졌다는 내 느낌의 기준은 글이 쉽게 읽히고 뚜렷한 생각이 드러난 글이다. 이 책의 제목은 수필을 위한 반성문인데, 앞 부분에 '수필을 위한 반성문1'과 '수필을 위한 반성문2'가 실려 있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과 생각이 담겨 있는데 솔직하고 명쾌한 어투가 좋았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 소설도 많이 써보시다가 수필가로 등단하고 국립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글에는 수필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반성이 들어 있다.

이외에도 저자의 중국여행에서 만난 시인과의 이야기, 영화를 통해 생각해본 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 힐링을 빙자해 우후죽순 쏟아져나오는 청춘 위로 책들의 알맹이 없는 위로를 꼬집는 글 등 저자의 생각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다.

너무 어린 시절 읽어 줄거리도 큰 윤곽말고는 희미해져가는 레미제라블 속 코제트와 에포닌에 대한 평가도 신선했다. 흥부와 놀부가 선악의 프레임이 갇히기 전에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또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함부로 단면만 보지말자 생각했는데 이 책의 에포닌에 대한 평가도 그러하다. 코제트의 사랑은 숭고하고 에포닌의 사랑은 가벼운가에 대한 신선하고 현대적인 관점에 공감했다.

저자는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공부도 강원도에서 하고 강원도에서 지금껏 살고 있는 국립대 교수이자 강원도 토박이다. 강원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들이 참 좋았다. 내가 있는 곳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몇 번 가보지 못한 강원도. 자연과 가장 어울리는 대한민국 구역이 아닐까 싶다. 내가 보고 듣고 살고 있는 지금 현재를 둘러보면 글을 쓸 주제들이 많고 내 생각을 정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주로 여행, 사람과의 관계, 강원도, 반려견, 밥상머리 등의 주제로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 여행에 가서 어느 특이하고 괴팍한 시인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적은 글은 피식 웃음이 났고 전직 대통령과 그의 딸이 적은 sns글을 보며 정치적 견해도 덧붙이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저자가 대학생 시절 참여했던 연극 동아리 이야기, 예술 이야기 등 자신의 경험을 허심탄회하고 논하고 거기서 현재의 발전이나 느낌을 생각하는 부분도 좋았다.

수필은 결국 내 가치관을 정립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애매한 관점을 가진 내가 글을 쓰며 반드시 길러야 하는 능력 중 하나다. 저자는 '소설이 안 되면 수필이나 쓰지 뭐'하며 호기 아닌 호기를 부렸던 날들이 부끄럽다고 반성했는데, 사유가 스스로 길을 낼 때까지 기다려야 쓸 수 있는 글이 수필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타인의 사유를 보고 읽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뚜렷한 관점을 가진 수필가들이 부럽다. 내가 수필을 즐겨 읽는 이유도 나 역시 그런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타인과 책으로 교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수필집도 성공적인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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