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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 영화가 묻고 심리학이 답하다,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김혜남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평점 :
'서른 살 심리학'으로 유명한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의 신간이다. 서른을 앞둔 즈음에 이 책을 읽고 요동치던 내 마음을 많이 부여잡았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서른이라는 나이는 정말 좋은 나이였다...) 그래서 김혜남 작가의 신간을 많이 기다렸다. 이 책은 허구이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속 인물에 대한 공감과 이해, 얽혀있는 문제의 발견과 치유를 통해 내 삶에 겹쳐지는 순간들을 발견하고 영화예술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영화에는 언급되었지만 내가 아직까지 보지 못한 영화들을 보고 싶게 만드는 책.
1장은 진실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2006년 영화인 <어웨이 프롬 허 Away From Her>, 1990년 <귀여운 여인 Pretty Woman> 등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영화를 주제로 영화 속 주인공들의 심리를 풀어내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사랑의 기억을 잃고 새 사랑을 찾는 노년의 사랑 이야기 속에서 사랑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고, 피그말리온의 사랑이 지닌 함정, 즉 자기가 창조한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알게 된다. <봄날은 간다>는 실연이 주는 또다른 성숙의 면을 조명하고, <매트릭스>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채로 행복하게 살거냐, 아니면 고통스러워도 진실된 자아를 찾아 나설거냐 하는 문제를 심도있게 고찰한다. <저수지의 개들>은 소개글을 보니 좀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듯하기도 한데 정신과 분야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묘사한 대표적 영화라고 한다. 폐소공포증, 현대인의 단절된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2장은 왜 우리가 내면에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영화 이야기다. 1990년작인 <가위손>은 감독의 내적 세계와 외부세계에 대한 표상이 잘 담겨져 있다. 자아에 의한 퇴행인데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유아기의 편집-분열성 위치, 우울 위치를 보여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10세 소녀 성장기나 <굿 윌 헌팅>, <러브레터> 등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명작인 영화들 속 주인공이 겪는 내면 이야기와 그에 얽힌 심리를 읽어내려가며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3장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노인이 주인공 영화가 최근에 많아진 듯 하다. 조금 되긴 했지만 네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공인 <그대를 사랑합니다>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리, 늙음이 지닌 잠재적 가능성 등을 생각해보고 죽음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황금연못> 등 이 책에서 새로이 알게 되었지만 보고픈 영화들이 많다.
4장은 왜 우리는 현실을 살며 환상을 떠올릴까에 대한 내용이다. 나 역시 현실도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이 장에 공감이 많이 갔다. 특히 자꾸 나이를 먹으면서 청춘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 나이 든 내 모습을 가끔 되돌리고 싶다, 다시 돌아간다면, 하는 후회를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이다. <더 도어>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면서도 잊기 쉬운 진리들 말이다. <링>같은 영화는 불안한 내면이 두려움을 현실로 만드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2010년작인 <크레이지> 등 공포영화를 볼 때 인간의 심리를 파헤쳐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5장은 우리와 사회에 관한 이야기다. <기생충>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너무 적나라한 드러냄은 내게 여전히 불편함을 준다. 나는 아직 이상주의자이고 싶은가보다. <신라의 달밤> 등 한때 조폭영화가 유행했던 이유, <반칙왕>에서 보여준 남자들의 심리, 한 나라의 민족성과 불안정한 사회적 심리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스란히 보여준 <공동경비구역JsA> 등에 대한 얘기도 흥미로웠다.
책을 읽고, 혹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이렇게 김혜남 작가처럼 평론을 하고 서평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밝혀 뚜렷히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갔다. 어떤 매체든 보고 읽고 듣고 거기서 끝난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 곧 나에 대한 앎의 과정이며 치유의 과정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