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부모를 위한 심리 수업 - 세상을 품는 생애 첫 1년 육아
최민식 지음 / 레몬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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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일은 불안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만 지나면 불안함이 사라지려나 했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또 다른 불안함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아이는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나와 다른 독립된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의 인생에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쉽다. 이 작은 아이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도 부모, 특히 엄마인 나다. 내가 갖고 있는 불안을 감춘 채 아이에게 전지전능한 척 모든 걸 다 아는 부모의 모습을 하는 것조차 불안하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나를 비롯한 모든 불안한 부모를 위한 심리 인문학 책이다.

첫 장에서의 어떤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자신의 꿈을 이룬 엄마는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할 이유가 없다.

생후 첫 6개월간은 존재의 취약성때문에 엄마가 100을 해주는 완벽한 엄마여야 한다. 그러나 자녀가 자라면서 아기는 적절한 좌절을 맛보게 되고 자녀가 크면 부모의 역할은 0이 되어 자녀와 부모는 서로 독립해야 한다. 자녀가 유아기에 적절한 좌절을 맛보도록 허용하는 엄마를 위니캇은 "충분히 좋은" 엄마라고 불렀다. 모든 걸 다 해주는 완벽한 엄마가 되지 말자는 것이 그런 뜻이다. 지금 나의 육아를 되돌아볼 문구가 참 많았다.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성을 향해 달려가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는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필수적인 동일성이 확보돼야 존재의 중심을 지키며 하나의 '나'로 살아갈 수 있다. 또한 부모-자녀 관계는 기존의 수직적 관계와 더불어 수평적 관계(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며 그때의 자기 자신을 함께 돌보며 결핍을 채우는 것)를 동반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엄마는 아기가 보내는 여러 가지 신호를 해석해 내고 해석한 대로 해결책을 제시하기 전에 그 해석을 아기에게 '말하기'로 확인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기의 옹알이는 엄마, 아빠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다는 표현이며 엄마가 아기가 보내는 신호를 언어로 바꿔주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말하기를 하지 않으면 아기의 지각이 몸 안에 쌓이게 돼 몸을 사용하는 반응을 보인다.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표현을 식인적 사고로 생각하는 것이 눈여겨볼만 했다. 두살 반 이전의 아이들은 타인과의 뽀뽀도 식인행위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엄마가 말하기로 안아주지 않은 아이들은 사물 취급당한다는 느낌으로 조종당하고 뽀뽀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의 스킨십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외 타인의 뽀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관점이 신선했다.
청소년기에는 동성부모도 자녀의 피부 경계를 지켜줘야 한다. 또한 부모의 '말하기로 안아주기' 부재는 자녀에게 성적 조숙함과 지나친 분노를 초래한다
엄마는 아기에게 '말하기'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아기에게 대상으로 제공하고 동시에 아기를 대상화한다. 엄마로부터 대상화를 경험한 자녀는 생애 출발부터 어엿한 주체로 살아가게 된다.

유아가 하나의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를 내 안에 존재하는 타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기는 한때 한 몸으로 움직이던 엄마의 몸을 놔주면서 아기 내면 안에 '내적 실재' 또는 '내적 대상'으로서 엄마가 존재하게 된다. 아이는 내면의 내적 대상을 외부로 투사함으로써 외부를 지각하고 관계를 맺는다. 엄마의 존재가 중요하고 더 많이 안아줘야 하는 이유다. 통합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아기가,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게 엄마가 안아주면 향후 아기는 존재 가능성의 높이와 깊이와 너비를 넓힌다.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머문다는 것은 고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고독할 줄 아는 사람은 내면에 자기 사랑이 차 있는 사람이다. 사람의 감정은 80%이상이 내장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내장 환상으로 내려갈수록 무의식의 세계는 깊어지고 전능 환상을 경험하는데, 아기는 최초 형태의 자기 정체성을 획득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태열, 아토피 등이 엄마와의 심리적 교류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도 보는데 이는 몸-정신의 통전과정이 피부 경계가 세워지면서 마무리 되고, 이렇듯 건강하다는 것은 내장과 피부 사이에서 에너지가 잘 순환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관점에서 본 것이다.

엄마와의 눈맞춤, 엄마의 소리 들려줌, 엄마와의 피부 맞댐, 엄마의 젖 냄새 이런 감각들이 아이에게 중요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아기가 존재의 중심을 잡는 순간은 이런 감각이 엄마 품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이다. 이때 아이는 우주의 중심이 되는 개별적, 개체적 존재가 된다. 유아기에 엄마가 따뜻한 품으로 아이를 잘 품어주면 아이는 피부 경계를 확실히 세우게 된다. 이러한 피부 경계를 잘 세우는 것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같은 병을 예방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이인증이라는 병을 처음 접했다. 이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분리된 느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감각 작용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결국 엄마 품의 문제로 환원된다. 엄마의 존재를 깊이 경험하는 것은 곧 엄마 뒤에 있는 대지와 우주와 신을 대신하여 대표적으로 엄마를 경험하는 것이고 이것이 엄마를 통한 외부 세계에 대한 '상징화'라고 말한다.

아기에게 있어 엄마의 얼굴은 아기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아기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를 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본다고 생각한다. 아기가 최초로 경험하는 은유인 것이다. 엄마의 따뜻한 품에서 아무런 사고를 할 필요가 없는 이 은유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기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엄마의 반영과 확인으로 되돌려 받게 되면서 진정한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자기 내면을 보는 깊이만큼 아기의 존재 깊이를 본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look at 이 아니라 look into(내면까지 꿰뚫어 본다)인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아이에게 거울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수치심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아기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힘을 공격성에서 나오고 부모는 이 공격성을 오롯이 받아낼 수 있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현실이 아기에게 들어오면 자기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얼굴이 자기가 아님을 깨닫고 거울은 깨지며 공격성은 위축된다. 엄마의 존중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자란 아이는 리비도 안에 건강한 공격성이 가득 차 있지만 아기가 어머니의 얼굴에서 거울이 깨지는 것을 목격하면 순응적인 삶을 살며 자발적 움직임도 묻히게 된다. 아이 입장에서 현실을 모독당하면 지능만 발달한다.

부모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대리 인생을 살지 말고 가장 '나답게 살기'를 도전하라.


동일성과 자기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 I am'과 신을 접목하여 설명하는 과정이 신선했다. 동일성이 무엇에 관한 것이라면 자기성은 누구에 관한 것이다. 동일성이 확고해지면 자기성의 삶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리고 이 존재의 중심인 동일성은 아기 생후 1년 동안 만들어내며 이것은 여성적 요소, 즉 엄마의 여성적 요소로부터 채워진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존재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 가져야 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아버지의 딸'과 '어머니의 딸'을 선택하는 것은 여성 본인의 고유한 선택이나 엄마의 역할과 아빠의 역할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하며 엄마만이 아기에게 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이 있음을 인정한다. 모유수유를 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모유수유는 엄마의 존재론적 의미를 오롯이 느끼고 동일성을 획득하는 여성적 요소를 충분히 채우게 하며, 아기에게 수유 흥분과 성적 흥분의 경쟁을 경험하게 한다.

어쩌면 요즘 시대에 여성성, 남성성을 구분하고 모유수유, 엄마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책을 읽고 느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첫 1년은 생애의 어느 시기보다 중요하고 그 순간은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늘 미안한 엄마다. 다시 아이들이 갓난 아기로 돌아간다면 그땐 과거의 나보다 좀더 잘 할 수 있을 건데 하는 후회도 든다. 지금부터라도 내 아이들이 자기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주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기존의 육아서와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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