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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보통의 행복 - 평범해서 더욱 소중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7월
평점 :
수학 천재, 음악 천재, 온갖 천재는 다 있으면서 왜 행복 천재는 없을까.
행복은 가까이 있는 듯 하면서도 너무 멀리 있고, 멀리 있는 듯 하면서도 찾아보면 내 안에 있다. 행복에 대한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작은 담론을 엮은 책인 <아주 보통의 행복>은 '보통'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은 멀리 있지 않으며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렸음을 말하고 있다.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상투적인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연한 사실은 자주 들여다보고 기억해내려고 애쓰지 않으면 다시 까먹게 되고 사는 대로 살아지게 되는 것 같다. 다시금 내게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책이어서 좋다. 한 구절 한 구절 당연한 말을 당연하지 않게, 곱씹어서 천천히 생각하며 읽으니 새로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나는 내가 꽤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우울해하고 삶을 힘들어 했을 때도 나는 우울증에 걸리거나 감정 조절이 안되는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무던한 편이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의외로(?) 행복한 척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내용 중에 제일 먼저 내 가슴을 후벼팠던 뜨끔한 말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잘 모르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 거였다. 식당에서 음식 메뉴를 주문할 때 늘 아무거나를 외치는 습성이 있는데 여기엔 내가 거절당할 거라는 두려움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타인의 시선에 대한 강박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이 되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의 표현을 숨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게 되었다. 행복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게 많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걸 빨리 고를 수 있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런 것들이 많지 않다. 자율성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걸 스스로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가 첫 번째 결심이다.
두 번째, 나는 계획을 아주 철저하게 짜고 이를 행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새해에는 그 결심을 늘, 매번, 거대하게 짠다. 그리고 그 계획은 얼마 안가 뒤틀려 나 자신과 그렇게 만든 환경에 짜증나는 걸 반복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를 외치며 오늘을 포기해버리는 것, 12월의 끝자락을 공날로 쉽게 흘려보내는 것의 부작용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게다가 새해 결심 자체가 지난 날의 과오와 나태를 반성과 처벌없이 용서해주는 셀프 면죄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새해 결심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나 역시 매년 겪는데 이 지점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행복을 흡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흡족함이 심장을 뛰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일에서 흡족함을 못느껴 계속 다른 곳에 시선이 간다. 고질병같다. 의미와 목적을 가진 삶이어야 흡족할텐데 나는 그 점에서 늘 난항을 겪어 왔다.
코로나블루가 유행인 시대에 다행인건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위안이 된다. 칼 융에 따르면 내향성이란 자기의 내면세계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을 받는 성향을 말하는데 갈등도 회피한다. 왜냐면 갈등 자체보다 갈등이 만들어내는 자극의 과잉이 싫기 때문이다. 어쨌든 코로나 시국에 다른 사람들이 거리두기로 힘들어할 때 나는 한번도 힘든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 만나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사람 사는 재미를 두루두루 부대끼며 지내는 것이라는 관점보다 '꼭' 필요한 사람과 부대끼며 지내는 것에 의미를 두는 나는 불필요한 모임이 없고 만날 사람만 만나서 정말 좋다. 이 친밀하고 좁고 깊은, 좋은 인간관계는 내 삶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는 브레송의 뒤늦은 깨달음이 옳다면,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모든 운명적 만남과 결정적 순간은 이미 일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p.58
행복이란 오로지 일상을 위한, 일상에 의한, 일상의 행복이다. 행복은 그저 일상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
p 192
느리게 생각하기
천천히 걷기
여유 있게 바라보기
속도의 시대에 꼭 필요한 행복의 조건들이다. 오늘부터 하나씩 실천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