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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성 - 우리는 얼마나 선량한가?
크리스찬 B. 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5월
평점 :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보면 성선설이 맞는 것 같다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보면 성악설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배운 윤리 지식을 최대한 상기시킨 후 성무성악설이 좀 더 일리가 있다고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백지와 같은 인간이 어떤 환경을 제공받느냐에 따라 악해질수도 선해질수도 있다면 인간의 품성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미덕이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미덕을 네 가지 특징으로 결정짓고 있다. 특정 상황에 적절한 선한 행동을 하고, 특정 미덕과 관련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하고, 적절한 이유나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고, 시간이 지나며 안정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동기가 있는 것을 미덕을 가졌다고 본다.
왜 우리는 선한 품성을 가져야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이 책에서는 덕 있는 삶이 감동과 영감을 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며 부차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죄책감을 가진 상태에서 남을 더 잘 도와주고 쑥스러운 상태에서 그 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남을 더 잘 도와준다는 것인데, 그보다 더 놀라운 실험은 혼자보다 집단의 상황에서 남을 더 잘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책임감이 분산되는 이유도 있고 쑥스러움을 회피하고자 하는 '관중 억제'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이기적 측면도 있지만, 인간이 가진 공감, 즉 이타주의적 측면은 선한 성품으로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인간이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유명한 밀그램의 실험으로도 알 수 있다.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 일에 대해서 남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 위해를 조절할 수 있게 되거나 책임이 주어지면 위해의 정도가 놀랍게 줄어든다. 거짓말의 경우도 타인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인 경우도 있지만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각한 거짓말도 있다. 심지어 심각한 거짓말은 거의 가까운 사람에게 가해진다. 우리 대부분은 정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 부정직하지도 않은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
부정행위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조건이나 여건이 되는데도 명예제도 서명이나 십계명 회상, 거울보기 같은 간단한 작업을 행하면 부정행위의 비율이 확 줄어든다. 우리는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도덕적으로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환경적 특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도덕적이 되기도, 비도덕적이 되기도 한다. 또한, 행동만 볼 것이 아니라 행동의 동기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각 개인은 어떤 상황에서는 공격성의 정도가 낮고 어떤 상황에서는 공격성의 정도가 높다. 공격성의 정도가 높은 상황이 다음에 또 오더라도 이 사람은 다시 공격적이 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품성을 잘 이해하면 특정 상황에서의 나의 행동을 예견할 수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행동을 의식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품성을 계발하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기, 미덕이라는 꼬리표 붙이기, 넛지를 이용하여 미덕으로 주의 환기시키기 등이 있는데 저자도 이러한 방법들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는지, 행위자의 동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된 바가 없다고 밝히며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도덕적 역할 모델의 설정, 상황 선택하기, 우리 자신에 대해 잘 알기 등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방법들은 우리 주변의 환경과 더불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의 대부분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마지막 장인 종교(특히 이 책에서 예를 드는 기독교)에 대한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의 교리는 아름다우며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긍정적인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일부 무신론자들이 끔찍한 일(강제노동수용소, 집단학살 등)을 저질렀다고 하는 대목에서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폴 포트 등을 비기독교인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이 집어 넣고 이들이 단지 기독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비종교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으며 만약 종교를 믿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여지를 두는 부분은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세계의 수많은 전쟁들과 힘없는 민간인들의 불행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자는 이에 대해 이러저러한 항변을 하고 있지만 내 기준에는 썩 논리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논거가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며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연과학, 공학적인 연구가 아닌 이러한 인문학적 연구들은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연구 자체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품성에 관한 논의의 기회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결국 인간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선한 품성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선한 품성을 함양할 계기가 된 것 같고 도덕적 인간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