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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ㅣ 허밍버드 클래식 M 5
찰스 디킨스 지음, 김소영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12월
평점 :
뮤지컬로도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이제야 읽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로 알게 된 찰스 디킨스는 이번 소설에서도 역시 당시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해학 그리고 탄탄한 스토리로 긴 장편을 순식간에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라는 두 도시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소설이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단연 억울한 옥살이를 두 번이나 하게 된 찰스 다네이와 그의 아내 루시가 주인공이겠지만 오히려 이 책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다른 주연, 조연들이 많아 오히려 이 두 주인공이 수동적으로 느껴진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과 보잘 것 없는(그래도 변호사인데...) 자신을 알아봐준 마네트 박사에 대한 존경으로 친구와 자신의 목숨을 바꿔 기꺼이 죽음을 택한 시드니 카턴은 소설 전체에서 볼 때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드파르주 부인(테레즈)은 내게 두 번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눈 앞에서 에브레몽드 후작의 잔인함 앞에 죽어가던 오빠와 언니, 그리고 후작에게 겁탈당한 언니의 뱃속에 있던 아이를 죽인 후작 집안을 복수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며 혁명군단의 여성 대장 역할을 한다. 소설 중반에서 후반으로 흘러가면서 뜨개질만 하던 드파르주 부인이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부분이 생생히 묘사된다. 스트라이버는 아마도 소설 전반에 흐르는 긴장과 어둠을 해소하기 위해 넣은 감초 역할인 듯 한데 시종일관 잘난척으로 도배된 이 작자의 모습이 실소와 함께 나름의 재미를 선사한다. 소설 초반부에 등장했던 첩자 존 바사드가 후반부에서 하는 역할, 그리고 미스 프로스와의 관계가 드러나는 장면도 반전을 선사한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 자체의 매력과 더불어 작가가 장치한 복선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읽는 재미가 있다.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포도주,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많이 닮은 점(초반부 이 점으로 인해 카턴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찰스 다네이를 한 번 살렸는데 마지막에 이걸 한 번 더 써먹는다...) 등 전혀 관계 없을 것 같던 인물이 의외의 관련이 있고 그것이 소설을 이끄는 사건의 핵심이 되거나 실마리를 푸는 도구가 된다. 더불어 끔찍한 단두대를 면도기로 비꼬거나, 단두대를 만든 사람(기로틴)으로 묘사함으로써 개인 혹은 집단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혁명 후 일상을 신랄하게 풍자했는데,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천연덕스러움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존재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프랑스 혁명이 가져다 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면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은 시드니 카턴의 숭고한 사랑과 더불어 찰스 디킨스가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한 핵심이 아닌가 생각된다. 왕과 귀족들의 방탕하고 안하무인한 태도만큼이나 혁명 후의 시민들도 부조리하고 잔인하고 극악무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중에 의한 봉기, 평민이나 하인 계급으로 받았던 수모를 내세우며 선한 시민들에게까지 죄목을 뒤집어 씌우고 비이성적인 논리로 폭력을 저지르는 민중들의 모습은 에브레몽드 후작이나 그 윗선들과 전혀 다를바 없다.
이 외에도 이 소설은 생각할 거리를 정말 많이 주는 소설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를 좀 더 알고 읽으면 재미가 배가 될 것 같다. 찰스 디킨스 자신이 '자신이 썼던 작품 중 최고의 이야기'라는 찬사를 스스로 했을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라고 하는데 왜 지금까지 이 소설이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지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두 도시 이야기를 검색하니 수많은 출판사에서 번역한 책들이 나온다. 다른 출판사의 번역은 읽어보지 않아 비교할 순 없지만 이 책은 상당히 번역이 매끄러웠다.(사실 매끄럽지 못한 번역 때문에 서양 고전을 읽을 때, 단 몇 줄을 한참 되뇌이며 읽었던 적이 많았다.) 상당히 긴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틀만에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촘촘히 짜여진 스토리와 인물의 내적 상태 묘사, 신랄한 풍자와 해학, 시대상을 십분 반영한 <두 도시 이야기>는 한 남자의 숭고한 사랑이야기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