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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만에 들어보는 에쿠니 가오리인지 모르겠다. 냉정과 열정사이로 유명한 에쿠니 가오리. 친구가 아주아주 오래전 선물해준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해도>라는 책은 아직 십여년이 흘렀음에도 내 책장에 그대로 꽂혀있다. 작가만의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소설들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에세이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이 책에는 꿈도 친구도 없던 사춘기 시절, 그저 자신과 연관이 있는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며 모든 것을 스스로 오롯이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담담히 이야기하기도 하고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에피소드나 수상소감도 실려 있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일상을 신선하게 꿰뚫어보는 일기같은 느낌의 글들인데, 빵을 보며 자신이 과자보다 빵을 닮은 여자라고 생각하거나, 서점을 좋아하는 이유가 '데려올'책들이 가만히 기다려준다는 안심감을 느끼는 등의 감성과 관찰력이 부럽다. 어떤 책은 읽을 때의 느낌이, 겨울에 햇살 잘 비치는 실내에서 피부가 햇살의 따스함을 느끼고 있는데도 팔을 드러내놓고 있어서 소름이 돋는 느낌이라니.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것을 즐겨 먹고 누구와 어떤 추억이 있으며 어떤 일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가 촘촘하고 담담하게 드러나 있다. 여행을 가서의 느낌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낌이 실린 에세이를 읽을때는 한 소설가의 삶과 주변을 엿보는 느낌도 든다. 소설가로의 고뇌가 드러나기도 하고 사물이나 일상을 보는 그녀만의 시선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나 나나 별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인 듯 한데도 차이가 있는건 그녀가 일상을 느끼는 방식이 나와 다르게 세밀하고 감성적이며 주위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그리고 그런 감정을 벗삼아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에세이의 제목처럼 에쿠니 가오리의 시간에 함께 순간순간을 머무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내가 잠시 글 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이 아니라 잠시 내가 밖에 있다가 글속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은 책을 만나는 것이 참 좋은 일일진데 때론 덤덤하고 때론 무던하지 않은 그녀의 일부가 글로 읽혀질 때 그런 느낌이 들었고, 나 또한 에세이를 써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했듯,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서 하는 모험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