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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평점 :
어머니인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을 치른 후 일주일 뒤 자신의 70세 생일을 맞은 멕시코 남자 빅 엔젤. 암 선고를 받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마지막 파티가 될 70세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가족들을 모두 불러모은다. 빅 엔젤 가족, 범상치 않다. 일단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온통 그 또는 그의 아내 페를라의 가족, 친척이다. 중간에 슬며시 등장하는 몇몇 외부 인물들(우키, 데이브 등)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이다. 빅 엔젤의 친구 데이브는 소설의 초반부에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인생이 그런 거라고, 멍청아. 너 말이야. 물결은 처음에 세차게 시작하지만, 해안으로 갈수록 점점 약해지지. 그러다 다시 안으르 돌아오고. 돌아오는 물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서 세상을 바꾸는 법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본인이 뭔가 성취했는지 어떤지 의심이나 하고 있잖아.
p41
의미없는 삶이 있을까. 빅 엔젤과 그 일가족의 삶과 관계를 정신없이 뒤따라가다 보면 웃음도 있고, 감동도 있고, 나의 죽음의 순간을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삶의 순간을 이렇게 처절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듯 그 끝인 죽음도 계획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경찰이었던 아버지 돈 안토니오는 아들인 빅 엔젤을 엄하게 교육시켰다.(사실 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요즘같으면 아동학대로 잡아갈 판이다.) 돈 안토니오의 미국인 베티와의 바람, 그로 인해 삼촌인 첸테벤트에게 피비린내나게 맞던 청소년기, 하얀 피부의 미국인 이복형제 리틀 엔젤까지. 바람잘날 없는 이 집안에서 리틀 엔젤은 그 나름대로 형인 빅 엔젤, 그리고 그의 가족들과 섞이지 못하고 늘 겉돌았으며 형과도 어쩔 수 없는 태생적 벽 등으로 인해 트러블을 겪어왔다. 어쨌든 이 멕시코인들은 거의 모두 미국인이 되고 싶어했고 미국인인 리틀 엔젤을 알게 모르게 부러워했다. 이들 형제의 대화에 섞이는 걸쭉한 욕과 지극히 현실적인 빅 엔젤의 딸, 아들인 미니, 랄로 남매간의 욕이 절반 이상인 대화는 소설을 읽는 내내 피식하게 만든다. 이미 브라울리오, 인디오라는 아들이 둘이나 딸린 페를라를 사랑하여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 빅 엔젤은 겉으론 욕이 난무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멕시코 아버지다.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아들들을 강한 아들로 키우려했던 잘못된 교육법은 인디오를 가출하게하고 랄로는 그동안 마약 폐인이 되었지만, 파티를 주도하고 아버지를 살뜰하게 묵묵히 챙기는 딸 미니의 모습은 그녀가 곧 이 집안의 가장임을 암시하는 문구와 함께 강한 여성상을 엿보게 한다.
"우리가 하는 건 말이다, 얘야. 바로 사랑이란다. 사랑이 답이야. 아무것도 사랑을 막을 수가 없어. 사랑에는 경계도 없고 죽음도 없지."
p372
빅 엔젤이 미니에게 했던 이 말이 이 소설 전체의 핵심이다. 결국 천사 같던 빅 엔젤의 죽음 앞에는 온 가족의 서로를 향한 사랑, 화합이 있었다. 랄로를 쏘려던 총잡이 앞에서 기꺼이 자신을 먼저 쏘라했던 아버지 빅 엔젤, 그리고 인디오까지. 서로를 오해하고 짓누르던 거대 가족이 빅 엔젤이라는 멕시코인의 따뜻한 가족애로 서로를 이해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은 우리 나라 주말드라마의 성인버전 확장판같은 느낌도 들었고 장편 시트콤같기도 했다. 노란색 표지 만큼이나 따뜻했던 빅 엔젤의 70세 생일파티, 그들 가족의 사랑과 화해, 화합의 스토리가 추운 겨울과 아주 잘 어울린다.
책 마지막에 리틀 엔젤이 중간중간 그렸다는 이 가계도가 나온다. 방대한 등장인물과 책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라 글로리오사의 매력, 그리고 정말 이상야릇한 리틀 엔젤과의 관계, 브라울리오와 기예르모 그리고 엉클 짐보의 이야기, 마르코와 눈 먼 소녀 릴리의 불꽃같은 사랑 이야기 등 깨알 같은 소스들이 중간중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작가의 형이 불치병 말기일 때 어머니 장례를 치러야 했고 장례식이 형의 생일 전날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일 그 파티를 손녀의 제안으로 시끌벅적하게 열면서 생일 파티이자 송별회를 열게 되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빅 엔젤과 리틀 엔젤이 탄생했고 멋진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의 따뜻한 가족애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멕시코인들의 시끌벅적 가족 화합기,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