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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간에는 비밀이 있다 - 도시인이 가져야 할 지적 상식에 대하여
최경철 지음 / 웨일북 / 2019년 11월
평점 :
나는 도시를 좋아한다. 서울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라 직장을 가지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특별한 곳이다. 친구들이며 친척들이며 죄다 서울로 갈 때 혼자 이 도시를 쓸쓸하게 지킨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나는 내가 사는 이 곳이 어느 도시들보다 매력적이고 좋다.
게다가 나는 자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특성이 있다. 가끔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럴 때 교외로 여행이나 산책다녀오면 다시 원기가 충전된다. 요즘 귀농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지만 나는 아마 퇴직하고도 시골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교과서의 일화처럼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어린 시절 시골에 갈 일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도시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참 매력적이고 좋다. 아이들 크고 여유가 생기면 세계 각국의 도시 여행을 가고 싶을 만큼 나는 도시와 그 불빛, 네온사인, 번잡함, 각종 건축물들을 사랑한다.
이 책은 도시를 바라보는 한 건축가의 유쾌한 통찰이 돋보이는 건축교양서다. <유럽의 시간을 걷다>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 건축가 최경철의 두 번째 책이다. 1부 도시와 건축, 2부 개인과 공간, 3부 영감의 원천으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외부에서 내부로 더 깊게 도시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도시는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시간이 지나며 계획적으로 인간의 손을 많이 타고 거친다. 그 손에는 건축가의 지분이 상당히 클 것이다.
이 책에는 각종 아름다운 건축물들의 사진이 중간중간 상당히 많이 실려있어 즐거움을 준다. 공간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뚝 서있는 건축물을 보며 수학의 느낌이 많이 묻어난다. 철학도 묻어 있다. 북독일 란데스 은행 건물은 해체주의 건축의 예다. 분리된듯 실존하는 건물의 모습은 도시와 도시인 자체의 모습같기도 하다. 폐주유소가 된 곳을 기본틀을 유지한채 동네 극장으로 변모시키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인간적인 도시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하며, 런던 마스타바는 호수 중간에 폐석유통으로 쌓아올린 사각뿔대 모양의 거대분묘로, 석유통 표면에서 산란하는 빛과 함께 고정되어 있으나 변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한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향은 굽이치는 파도같기도 하고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은 반짝이는 둥근 지붕과 내부가 예술이다. 멋진 건축물을 많이 소개하고 있지만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주제는 아니다. 좋은 집이란 무엇인지, 죽음과 집, 좋은 공간에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그리고 개인에게 필요한 방과 내부, 화장실같은 내밀한 공간과 건축을 연결하여 끊임없이 삶과 건축을 연결하고 인문학적 사유를 하게 한다.
이 책은 건축교양서 같기도 하고 에세이같기도 하다. 저자인 최병철 자신도 전작인 <유럽의 시간을 걷다>와 달리 '발터 벤야민'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건축 비엔날레와 같은, 건축과 접점이 없는 독자에게 생소한 얘기도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통해 자연스레 자유 공간이 주제였던 건축 비엔날레 얘기를 풀어나가고 유학 시절,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저자 개인의 기억과 시간, 역사를 건축의 이야기로 자연스레 전환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건축을 낯설지 않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도시 읽어주는 남자'라는 어느 장의 제목말이 딱 어울리는 듯 하다.
도시, 건축과 관련된 책들을 최근에 많이 읽었다. 알쓸신잡 유현준 건축가의 힘이 크다. <어디서 살 것인가>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비슷한 결이면서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유럽이든 어디든 여행을 간다면 이 책을 포함하여 여러 책들이 손에 들려 있을 것같다. 나는 사진으로만 본 서초동의 부디크모나코같이 맹거스펀지를 닮은 오피스텔, 지오데식 돔 같이 기하하적, 수학적 아름다움을 주는 건축물에 흥미를 느껴 건축이란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도시를 살아가는 수많은 도시인이 조금만 더 건축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더 사랑하고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지며 풍요로운 도시인이 될 수 있을 것같다. 도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읽어봄직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