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마르는 시간 -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이유를 찾는 당신에게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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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이은정 작가의 산문집이다. 11월에 내가 읽은 첫 번째 산문집이다. 산문이 주는 매력에 빠져 있는데 이 책은 무덤덤하고 잔잔하게 감성을 자극하고 어떤 지점에선 후벼파기도 한다. 아픔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이은정 작가 역시 삶의 여러 방향에서 아픔과 고독을 느끼고 그것을 치유하며 이겨내는 과정을 산문으로 담아낸 것이라 더 인간적인 글로 다가왔다.

이 산문집이 좋았던 이유는 참 많다. 그 중에 몇 가지만 꼽자면 첫째로, 그녀의 산문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담아내며 상처를 가지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따뜻함이 있다. 사람마다 상처없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렇지만 이 작가의 글에는 뭔지 모를, 그녀가 받았을 상처가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그런 상처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서 비롯된 것인지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작가가 순간순간 뱉어내는 감정의 단어들과 일부 고백으로 짐작할 뿐이지만 어린 사춘기 시절 시작된 방황과 마음의 상처는 지금껏 치유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온몸이 발갛게 달아오를 만큼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그 애달픈 낙엽'(177p)이나 사과를 깎는 장면에서 사과가 교수형을 당하고 머리마저 서서히 능지저참 당하는 꼴로 묘사하는 부분은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상적인 모습을 특유의 감성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일품이었다.

두 번째는 풍부한 감정과 섬세한 촉수가 글솜씨와 어우러져 읽기 편안하면서도 멋드러진 문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더불어 내가 평소 잘 모르던 말을 배워서 더 좋았다. 머츰하다, 소포하다, 난만하다, 각회지다 등등 생소한 단어들은 그냥 지레짐작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래야 작가가 이 글을 썼을 때의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산문이 문학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런 단어의 선택에서 온 것 같다.

세 번째는 작가의 고백에서 느껴지는 진정성과 어디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언니같은 편안함이 글에 묻어 있다. 그건 아마도 가난에 힘겨워 동전으로 물건 값을 치르는 일에도 느끼는 부끄러움,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상처도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고백,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보는 것에 대한 감정 같은 것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아닐까 싶다. 공감이란 단어를 쓰기가 좀 조심스럽기는 하다.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는 걸 어른이 되고 한참 뒤인 최근에 깨달았다. 작가도 말미에는 그렇게 말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무게는 다르고, 나도 가난해봤으니, 나도 그런 상처있는 시절이 있었으니 이겨내라, 나약하다 같은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고. 그저 그랬구나, 한마디면 될걸 섣부르게 충고나 조언은 위험하며, 각 개인은 상대에게 그럴 입장이 아니라는 걸 나도 점점 세상에 닦여가며 배우는 중이다.

작가의 눈물이 마르는 시간동안 책을 읽는 독자의 눈물도 서서히 마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어제 읽은 산문집에서 에세이란 단지 말랑말랑한 감성의 표출이 아니라 지성과 사유의 표현이라 했었는데, 가끔은 추운 겨울의 문턱에서 가슴을 녹이는 말랑말랑한 감성 덩어리 산문집도 필요하다. 읽고 가슴이 따뜻해졌으면 그걸로 훌륭한 글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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