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원히 살아있네
장 도르메송 지음, 정미애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별다른 기억 없이 생존에만 매달리다 '로'라는 불의 사제 어른 사내를 만나면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소설로 재탄생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의 '나'는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한 곳에 정착하고 말을 하게 되며 점점 진화하는 인류의 역사를 살아내는 불사신같은 존재다. 수많은 민족들, 언어들, 도시들, 종교들, 철학자들, 왕들을 만나고 수천년을 살아가는 주인공인 '나'의 이야기는 거대한 인류의 서사다. 먼저, 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 자체가 인류 역사에 대한 공부이며 이 공부가 결코 쉽지는 않았기에 저자의 내공이 한층 깊게 느껴졌다.

'나'는 트로이 전쟁을 경험하기도 하고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에는 도덕경의 노자가 깨어나는 걸 목격했으며 기하학과 수학이 만개하는 현장도 경험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플라톤과 함께 목격하기도 하고 플라톤을 따라 다녔다. 각 순간에서 가장 빛나는 곳에 빛나는 이들과 함께 찬란한 역사인 내가 항상 함께 하는데 이 시기를 나의(역사의) 20대 청춘, 역사의 봄이라 일렀다.

나는 결국 때론 남자였다가 여자이기도 했고, 모든 이들의 목소리며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날아가는 추상적인 역사인 것이다. 실존 없는 역사를 순간의 실존으로 생각하여 화자로 둔갑시켜 그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저자의 재치가 돋보이누, 그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의 소설이다.

알렉산드리아 대왕, 시저, 아우구스투스, 예수까지 거론된다. 예수를 가장 극단적 혁명가로 칭하며, 시간이 흘러 신대륙을 발견하는 현장까지 함께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인쇄술 발명, 신대륙 발견과 함께 종말을 맞은 중세시대에 이어 르네상스시대의 아름답고 위대한 학문적 성과에도 역사는 함께 한다. 롱사르, 몽테뉴, 말레르브와 함께. 그리고 파스칼까지. 세계는 다시 저물고 피어오르고를 반복한다. 그게 역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사회 정치적 변혁들이 일어나도 일상은 살아진다. 역사는 수많은 전쟁을 겪어낸다. 프랑스가 히틀러에 의해 열흘만에 무너지기도 하고 우리가 믿었던 지식이 과학에 의해 흔들리며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모든 것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철학적이고 어려운 책이 결국 저자의 삶에서 스쳐지나갔던 한 인간의 역사이면서 크게는 인류의 역사, 더 크게는 미래라고 생각한다. 결국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이 순간에도 계속 바뀌고 있다. 지금 이순간인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다시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이 영원히 지속될 아름다움에 대해 사랑 가득한 철학으로 그려낸 거대한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