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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옥림 엮음 / 미래북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저자인 김옥림 시인이 향기나는 국내외 시들을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시를 읽으며 차분해진 마음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무엇보다 그 옛날 '언어영역' 수능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했던 많은 시들이 들어있어서 더욱 낯익었다. 그와 더불어 그 때 좀더 지금처럼 시를 마음으로 느꼈다면 언어영역 공부가 덜 힘들었을까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국어 시간, 자자! 갈래는 서정시, 자유시! 성격 땡땡 관조적! 상징적! 운율은?! 내재율! 밑줄친다!
지금의 국어수업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 때 나는 억지로 화자의 마음에 내 마음을 이성적으로 끼워맞추며 정답으로 향하는 길만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좋은 느낌을 주는 시들이 있었는데 그냥 막 시를 해석하려하지 않고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느낌을 갖게 했던 시들이 있었다. 신동집의 <오렌지>를 읽으면서 느꼈던 몽글몽글한 느낌은 그 시의 주제가 본질의 탐구와 같은 심오한 것일지언정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이 책은 아무튼 그런 언어영역 안에 갖혀 틀과 분류로만 기억됐던 시들을 내 안에 다시 살아나게 했다. 시라는 것은 원래 이렇게 느껴야하는거지 싶으면서 그 때 못느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상황적 문제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심오한 시들이 아니라 쉽게 읽히고 따뜻한 감성 묻어나오는 시들로 이루어져있어 편하게 차한잔 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부는 국내 시인, 2부는 국외 시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시가 소개되고 저자의 총평이랄지, 시에 대해 혹은 시인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각 시마다 수록되어 있다.
나태주의 <풀꽃>이나 김춘수의 <꽃>,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과 같이 눈에 익숙한 시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기도 했고, 언어영역 지문에 등장해서 화제가 됐던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도 다시 읽으며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윤동주의 <서시>나 <별 헤는 밤>은 오히려 그 시가 쓰여진 배경을 공부했었기에 시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새롭게 접한 귀중한 시들도 많았다. 장 콕토의 <산비둘기>, 박성룡의 <풀잎>과 같은 시는 너무나도 귀여운 느낌의 시다. 문정희의 <편안한 사람>을 읽으며 내 주변도 돌아보게 되었고 외국의 시들은 주로 사랑을 노래하는 시들이 많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정을 꾸린 후에는 가정과 관련한 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박목월의 <가정>이나 신달자의 <여보! 비가 와요>, 더글라스 맥아더의 <아버지의 기도>는 읽으면서 뭉클하고 저릿한 느낌의 시들이다.
오랜만에 시를 읽으며 다가오는 가을을 느껴봤다. 시를 읽으며 풍성한 가을만큼이나 내 마음도 풍성하고 빛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