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인문학 수업 - 인간다움에 대해 아이가 가르쳐준 것들
김희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미리 말해주는 사람이 왜 없었을까. 모두들 카톡 프로필에는 환하게 웃는 아이와 가족의 얼굴들만 있으니 나는 실로 정말 행복만 가득한 것이 육아인 줄 알았다. 사실 그 순간은 정말 90번 울어제끼고 10번 웃을 때 찍는 진귀한 샷이라는걸 나도 경험해보고야 알았다.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첫째가 너무나도 나에게는 어려운 아이였기에 힘들었던 지난 영아기 시절이 조금은 마음 편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둘째도 점점 쉽지 않다.) 읽으며 너무나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그저 옆집 언니가 얘기해주는 경험담에 지혜와 지식까지 더해져 읽는 내내 맞아맞아 맞장구치며 읽다보면 어느새 스윽 읽히는 책이다. 여러 가지 주제들을 저자의 경험 및 견해와 함께 풀어놓으며 관계있는 참고문헌들을 인용하여 공감과 사유를 적절히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계속되는 돌봄 과정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생각의 주제들이 시간의 파노라마처럼 나열된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육아의 치열한 순간 스치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며 돌봄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한다.

수유와 단유에 대해 내가 했던 번잡했던 고민들과 상충되는 두 의견(모유냐 분유냐) 속에서 내 나름의 기준을 잡고 결정을 내릴 때의 느꼈던 감정, 유난히 잠투정이 심했던 첫째와 현재진행형중인 둘째가 겪는 잠, 그리고 엄마 수면에 대한 단상, 직장맘에게는 필수인 보조양육자에 대한 이야기(사실은 내가 보조양육자지만)들은 특히 나의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보조양육자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현대를 살아가는 엄마에게 지워진 완벽이란 무게, 제도적 문제까지 생각해보게하는 글들은 결코 이 책이 가벼운 육아이야기만은 아님을 느끼게 한다.

아이가 기관생활을 하며 겪는 또래관계에 대해 <양육가설>이란 책에선 부모와의 애착이나 교육보다 또래 그룹과의 동일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대두되는 왕따문제나 또래집단에의 소속감, 상호작용 등은 아이가 스스로 잘 거쳐야할 관문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집단의 횡포가 개인의 빛나는 고유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나는 어릴 적 여러 상황에서 직접 경험했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그런 장면들을 자주 목격한다. 인간의 집단성과 개인성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아이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같은 상황을 잘 헤쳐넘기기를.

아이를 타인으로 인정하라는 부분은 우리 나라 특유의 교육 분위기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과 맞물린다. 막상 나 역시 내 아이를 낳아보니 내 자녀가 공부를 잘했음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군이 중요하고 그래서 부동산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고민으로 연결된다. 만약 내 생각대로 아이가 크지 않을 때, 내가 공들인 돌봄의 시간에 비해 아이가 빛나는 객관적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해도 나는 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타자 수용이 나를 비롯한 우리 나라 부모들의 핵심 과제라 본다. 어쨌든 난 최선을 다할거지만 그 결과가 나의 최선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하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다행스러웠던 것은 두 아이의 출산과 함께 나의 학위라든지 그밖에 사회적 인간인 나를 위한 모든 부수적인 것들을 포기하느라 얻은 상실감의 크기만큼 돌봄의 가치가 정말 크다는 것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그런 것들까지 챙기며 육아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란 판단을 했다. 다시 돌아가도 내 결정은 같을 것이고 나중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후회하지 않을만큼 내 돌봄의 가치가 위대함을 다시 상기하게 되어 기쁘게 책을 덮었다.

책의 부록에는 <돌봄 인문학 워크북>이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의 돌봄에 미약하게나마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만큼, 부록에 나오는 '아이를 돌볼 때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 12가지를 이 글을 다 적고난 후 바로 기록해볼 생각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들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책 뒤에 따로 소개된 참고문헌들을 읽고 싶다. 인간의 돌봄을 실천 중인(혹은 예정중인) 모든 사람이 공감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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