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중세 수도사인 후고가 쓴 『디다스칼리콘』이란 독서 가이드의 해설서이긴 한데 이론연구서라기 보다는 '읽다'란 표현이 내포한 의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보는 주요 근거로써 지금의 독서 행위를 성찰하자는 목적이 크다. incipit니 cogitatio, artes 등의 생소한 라틴어를 학습하는 즐거움도 있겠으나, 텍스트가 페이지에서부터 분리되면서 만들어낸, '책'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을 포착하는 기쁨이 더 크다. 지금껏 책읽기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12세기의 '책'이란 경외감으로 받들어야 하는 성물이란 사실에, 수사들이 중얼중얼대며 함께 소리내는 신체활동인 '읽기'에 어리둥절할 법하다.
심지어 '쓰기'란 저자의 말이나 구술을 기록하는 바를 의미하지 저자의 생각과 사고 체계를 정돈한 지식과 정보의 집합체가 아니었다. '읽기'는 귀를 위시한 '청각'에 집중한 활동이었는데 장 제목, 색인, 종이, 문단, 띄어쓰기가 도입되며 눈으로 보는 '시각'활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저자가 수도사들의 '읽기'를 악보에 비유한 바는 그래서 적절하다.
조선시대 서당에서 훈장이 천자문을 읽어 준 후 학동들이 낭독해 암송하는 방법이 주를 이루었던 사실을 보면 '읽기'는 소리를 내는 감각기관 활동이 먼저지 이해, 숙지, 기억을 되새기는 정신활동은 부속이나 다름없었다.
책읽기란 입으로 맛보고 기억의 궁전에 새겨넣어 묵상으로 되새기며 음미하는 전방위적인 행위고, 수사에게는 경건한 영적 활동의 일환으로 신이라는 '지혜'에 다가가는 기도 행위다. 책뿐만 아니라 SNS, 뉴스미디어, 잡지기사, 영화, 드라마 등 쏟아지는 정보를 숙고할 필요가 없는 현대인에게 12세기의 책읽기는 기괴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읽기' 몰입감으로 삶에 변혁을 꾀하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 비춰 지금의 '읽기'가 어느 선상에 있는지 내 읽기는 어느 축에 기울어 있는지를 곱씹을 여지는 충분하다 본다.
전체 335 p. 분량에 196 p.부터 주석과 참고문헌으로 빼곡하다. '주석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한 삶이 어떤 구역을 자주 걸으며 주워 모았고, 이제 그 풍부한 기념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소박한 이유치고, 부지런히 자료를 끌어 모은 정성에 그의 책을 수사식으로 읽는 흉내는 해야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