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관련 서적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닌 데도 계속 찾아 읽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예전에 읽은 올리버 색스의 저서도 그렇고 미치오 카쿠의 '마음의 미래'도 그렇다. 내 독서 습관의 시작을 열어 주었던 책인 칼세이건의 '에덴의 용'도 따지고 보면 뇌과학 책이었다. 최근에는 텀블벅 펀딩을 통해서 고려대학교의 뇌과학 학회 뉴런의 학회지를 후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꾸준히 뇌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인간의 원초적인 무언가에 대해 다가가고 싶고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옛날부터 건재해 왔기 때문이다. 나중에 프로그래밍에 활용을 하든, 뇌과학 요소가 담긴 SF 소설을 써보든 지식의 재창출의 여지는 뒤로하고 본질적으로 내가 뇌과학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결국 호기심이었다. 사람의 생각을 만들고 몸을 통제하고 영혼과 사념의 중심지인가 고민되게 만드는 그 장소, 뇌. 어찌 이 신비로운 장소에 대해 관심을 끊지 않을 수 없으리. -이 생각을 뇌가 한다고 생각하니 만화경에 둘러싸인 느낌이 든 다만.
허나 뇌 과학적 이야기에 파고 드는 것은 한편으로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전공 언어들의 포화를 이겨낼 각오를 해야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두엽이나 편도체 같은 뇌의 일부분을 이르는 단어야 그렇다고 쳐도 '내인성 카나비로이드'나 '시교차상핵' 같은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오면 독서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화학 관련 용어들이 잡채처럼 버무려져 나오는 경우는 더할 나위 없다. 허나 '장 디디에 뱅상'은 그런 뇌 과학을 맛보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다소 친근하게 다가선다.
그의 문체와 주제에 다가서는 능력은 그의 인문학적 소양과 결합하여 나타났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그의 문학적인 작명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잠시 프롤로그에 있는 글을 살펴 보자
1,500세제곱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두개골 안에 어떻게 장대한 대성당을 건립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그 수수께끼를 풀러 가보자. 뇌가 끊임없이 성스러운 놀라움과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뇌에 대한
발견이나 탐험은 신대륙 발견보다 한참 뒤에 시작되었다. 그전에는 이 ‘미지의 땅’은 사색과 미신의 소관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행동하고,
사랑하고, 무엇을 아는 것은 다 뇌라는 도구 덕분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것 뿐만이 아니다. 매 장의 시작은 항상 시적인 구절의 인용이다.
"나의 초는 양 끝으로 타네, 저 초가 밤새 타지는 못하리,
하지만 친애하는 벗들이여, 친애하는 원수들이여,
저 초가 타는 모습을 보시라고요!"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첫 번째 무화과] (6장 뇌 여행도 식후경의 개문)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인문학적인 뇌 과학 개론서라고 볼 수 있다. 장 디디에 뱅상이 괜히 페미나상 수상자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문학적 내용이 전문적인 내용의 질을 낮추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마치 권투 선수처럼 치고 빠지는 것을 굉장히 잘 했는데 여행자들에게 문학적인 글로 몰입을 요구하다가도 해부학적 용어와 신경학적인 사례들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점에서 비전공자 독자들에게 다소 미안한 마음을 가졌는지 그는 끊임없이 '이 지루한 여행'을 잘 따라온 독자를 칭찬하곤 한다.
친애하는 뇌 방문객이여, 나는 그대가 벌써 세월아 네월아 주워섬기는 나의 지루한 언변에 그만 잠들어버리지 않았는지 걱정된다. 그대가 침대에 안온하게 누워있다면 나는 검지를 내 입술에 대고 온 세상에 조용히 하라 명할 터요, 그대에게는 "지금은 주무시오, 그게 내가 바라는 바요"라고 할 것이다. 먹고 마실 시간은 내일 또 올 터이니. (5장 수면의 과학에서 )
600여쪽이 길어보이기는 하지만 19개의 장으로 구성 되어 있어 각 장을 읽다 보면 도전 못 할 만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글을 마칠 때 저자는 소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간질 관련- 아쉬워 하기도 한다. 짧은 역사 동안 발전해온 뇌과학이지만 다뤄야 할 내용은 관심 만큼이나 많은 것이다. 다루고 있는 내용들의 장의 분류가 뚜렷한 만큼 시적인 제목을 파악하여 원하는 파트만 읽는 방식도 괜찮다고 본다. 유명한 뇌,신경과학자들이 써놓은 글들은 분홍색으로 따로 표시가 되어 있으니 전문적인 소양을 원한다면 그 부분을 따로 읽는 것도 좋다. 기본적으로 뇌과학적 지식이 있으면 있을 수록 책에서 알아가는 것이 많을 것이며 초심자라도 최초의 책으로써 건들...수는 있다고 본다. 요즘에는 교양서적의 한 분류로써 다른 뇌과학 서적도 많이 나오니 좀 더 세분화된 책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권하고 싶다. 과학적 글쓰기의 표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장 디디에 뱅상의 글은 훌륭하므로 의외로 그의 문체를 배우기 위해서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