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첫 그림책 ‘노인과 소년‘

노인과 소년 ㅣ 물구나무 세상보기
박완서 지음, 김명석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17년 1월

박완서의 글 ‘노인과 소년’을 김명석의 판화와 함께 그림책으로 만든 <노인과 소년>은 이 시대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며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져준다. 박완서 님의 아름다운 글에 판화의 독특한 색감과 형태가 만나 더 풍성한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그림책 <노인과 소년>을2017년 첫 그림책으로 읽어 보았다.

  우선 표지는 해가 중천에 떠 있고 황폐해진 마른 땅을 노인이 앞서 걷고 소년이 뒤따르고 있다. 물기 없는 메마른 땅과 동물의 사체로 보이는 머리로 인해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파란 하늘과 한 걸음 내딛기 위해 발이 떠 있는 소년의 모습에선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이 그림책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궁금해 하며 책장을 펼쳤다.

 

  처음 나타난 면지는 초록색이다. 짙은 초록색...학교 다닐 때 칠판에서 많이 보아왔던 색이다. 하얀 분필로 무언가를 적고 싶은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책의 시작 부분인 제목이 드러난 부분에서 소년이 왼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붉은 해는 서쪽으로 지고 있고 하늘은 핏빛이다. 불편한 느낌과 함께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드디어 그림책 시작. 이야기는 낙조의 시간부터 시작된다. 박완서 작가의 세심한 문체가 드러나는 문장들 속에 앞을 바라보는 노인과 불안한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는 소년이 등장했다. 이 둘은 어떠한 관계인지 독자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 어디를 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 노인은 아이에게 앞으로 아이가 살 고장을 찾아주는 이야기를 건낸다. 아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족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궁금증을 품고 책을 한 장 더 넘기니 두 사람의 관계와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된 이유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살던 곳에 전염병이 돌아 모든 것이 사라졌고 노인과 소년만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이 섬뜩한 상황이 두 사람의 만남과 여행의 이유이다.

둘은 앞으로 살아갈 곳을 찾아 몇 군데 마을을 들른다. 그런데 책을 태워 사는 사람들, 먹을 것에 독을 넣는 사람들,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만났다. 다행히 아이는 이 마을들이 가지고 있는 이면을 직감적으로 알아낸다. 그래서 그 고장들에서 살기를 거부한다.

  횃불을 든 노인이 앞서 걷고 불안한 눈길로 뒤를 돌아보는 소년이 다른 고장을 찾아 떠나면서 그림책은 끝난다.

  이 그림책은 소년이 살아갈 고장을 찾는 여정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 과정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떠해야 할지 독자들에게 열린 결말로서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한다.

  박완서 님의 아름다운 문제에 덧입혀진 판화는 글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을 전한다. 예를 들어 앞뒤 면지의 짙은 초록색은 책 속 내용의 무거움과 황량함을 감싸는 생명과 희망의 이미지다. 모든 것이 사라진 도시, 살아갈 곳을 찾지 못하는 방황이라는 다소 절망적인 이야기가 초록색으로 감싸진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엔 희망이 있으며 싱싱한 생명력의 상징인 아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 이야기가 해가 지는 때에 시작되었는데 앞으로 살아갈 고장을 찾는 여정은 만월이 떠있는 밤의 길이다. 이들의 방랑이 쓸쓸해 보이지만 않는 이유를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노란빛으로 가득찬 만월은 세상의 생명들을 품어주는 여성성을 상징하며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꼭 필요한 빛이다.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들을 온전히 받아내고 느끼며 읽다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책 속 노인이 자신이 살아갈 고장이 아닌 아이가 살아갈 고장을 찾는 것을 보며 이 시대를 사는 어른으로써 책임감도 느껴졌다.내 아이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 이 생각이 혼자만의 사유로 끝나지 않도록 명절을 맞아 모인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보았다. 함께 그림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번 설명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풍요로웠다.

우리집 노인과 소년...^^

아이가 살아갈 고장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