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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해적
시모다 마사카츠 지음, 봉봉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5년 9월
평점 :

책 띠지에 나와 있는 이 말이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끕니다.
해적이라는 건 바다위의 도적으로 도적이 뭡니까? 남의 물건을 뺏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모든 걸 아낌없이 나눠줬다고요?
홍길동인가?
그런데 제목이 죽은 해적이라고 되어 있어요. 으시으시한 해골도 나와 있고요.
온갖 추측과 호기심을 안은 채 책을 펴봅니다.

아이고 술이 웬수입니다.
술 먹고 싸우다 적의 칼에 정통으로 맞았네요.
아이들 보는 그림책에 이렇게 적나라한 그림이 나와도 되는지
첫 장면부터 살인등장이라니
충격을 안고 다음 장면을 폅니다.

칼이 몸통에 꽂힌 채 해적이 바다로 가라 앉습니다.
아직 의식이 있네요.

칼에 맞아 죽는 줄 알았는데
옴마야 커다란 상어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해적이 맛없어 보인다고 안 먹고
모자나 달라고 하는 상어.
그런데 또 그 모자를 안 주겠다던 해적
안 줄 도리가 있나요? 칼에 찔려서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데?
모자를 가지고 만족스럽게 떠나가는 상어
(인터넷 미리 보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상어 다음엔 늙은 물고기가 다가 와요
금이빨을 달라고 합니다.
파란 물고기들은 손톱을 달라고 하고요.
아귀들은 눈을
문어는 머리카락을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은 해적의 살을
달라고 합니다.
심연으로 가라앉으면서 처음엔 저항했지만 차츰 차츰 나눠주는 것에 익숙해진 해적.
뼈만 남은 해골이 된 해적은 깊은 바닷 속 바닥에 가라 앉은 다음에
그제야 만족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고 뼈만 남은 뒤에 안식을 찾은 해적.
그런 해적에게 새로운 삶이 찾아옵니다.
해적의 해골은 산호가 되었거든요.
깊은 바다 속이라 깜깜했는데 산호가 된 해적 주변은 푸른빛이 감돌고 다양한 색의 물고기들이 모여듭니다.
새로운 빛과 인생을 찾은 해적 산호~
이 책의 구조는 정말 단순해요.
해적이 죽어서 바다로 가라앉으면서 하나씩 나눠주고 산호가 된다.
이 한 줄로 끝나고 누가 와서 달라하고 가져가고 구조가 반복되요.
그런데 그 내용의 깊이는 심해 같아요.
인간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면(책에서는 바다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대책되는 거잖아요.
생명의 순환, 나눠줌으로써 연결되는 생태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에요.
그 시작점을 죽음으로, 삶의 끝으로 잡은 게 독특하고 철학적인 죽은 해적.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연결이자 시작이라걸 보여주는
그리고 그 대상이 늘 남의 걸 뻇던 해적이 나눠주는 주체로 나와서 그 역설이 재미있는
죽은 해적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