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두 그림자>
아가미에서도 그랬지만 김나은 작가가 설계하는 세계는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필요하다. 케토라라는 행성을 이해하는 데 그랬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는 저승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야기 속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존재한다. 짧게 죽었다 살아난 사람, 오랜 시간 죽었다 살아난 사람 다양하다. 그 중에 윤화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방어를 공격으로 표현한다. 유령 같은 사람들이라면서 따로 집단 시설에 넣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긴다.이러한 사운데 연우는 윤화를 좋아하고 윤화를 도와주고 싶어한다.
윤화를 도와주려고 하는 선한 마음이었지만 연우도 결국 윤화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자꾸만 저승에 가기 전 윤화에 대해 말해준다. 오직 윤화를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나랑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을 원하는 것 같아.”(51쪽)
그렇다 이 이야기는 내 눈 앞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악의로 그런 게 아니라 도와주려는 마음이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 제목 처럼 ‘선량한 시선왜곡’을 말한다.
그나마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떄가 덜 묻어서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 이야기를 읽고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구나. 언제나 노력해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몽유>
돌봄 로놋이 모든 것을 해주고, 케어 로봇이 환자를 간병하는 세상이라니. 이런 판타지한 세계가 정말 올까? 싶은 마음이 드는 이 이야기에서 로봇은 인간 뇌속 칩과 동기화 된다. 사람들은 그 로봇을 자기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닌다. 그니까 사람 둘이 만나면 로봇까지 총 4개 의자가 필요하다.
이런 사회에서 로봇이 문제를 일으킨다. 인간의 무의식과도 동기화된 로봇이 인간이 자면서 꿈을 꿀 때 그 꿈의 내용을 현실에서 로봇이 실현하는 것이다. 그게 좋은 거면 모르겠는데 누군가를 구타, 살인, 절도… 범죄가 일어나는 거다.
이에 기업과 정부는 개인 탓으로 돌리고 여기에 저항하는 청소년들 가운데 세나가 있다. 식물인간인 엄마와 살면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별이는 구김 없는 세나가 부럽다.
로봇에 대한 시위를 하러 세나랑 한 차례 갔지만 한별이는 더이상 안 간다고 한다. 세나를 자꾸 피하게 된다. 자꾸 나쁜 꿈을 꾸고 나쁜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고 세나 옆에서 죄짓는 기분이다.
결국 세나에게 자기 엄마를 보여주면, 자기 상황을 보여주면 세나가 알아서 떨어질 거란 생각에 집으로 데려간다.
“세나의 눈에 나를 향한 혐오, 또는 죄책감이 담겨 있기를. 그러나 그 속에는 오로지 나뿐이었다. 맑고 뜨거운 그 눈 속에서 내가 어지럽게 일러였다.”(87쪽)
한별이는 세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투명하게 비추는 친구로 인해 깊은 잠을 자게 된다.
앞의 두 이야기에 이어 이 이야기도 나를 비추는 타인을 이야기한다. 어린이 청소년 시절엔 친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세나 같은 친구가 있는가, 나는 세나 같은 친구인가
중년의 독자에게도 필요한 질문이다.
<고백 시나리오>
이 작품집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 할 만한 이야기다. 왜냐면 사랑 이야기니까~~~
고딩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인데 거기에 로봇이라는 설정이 들어가 있다. 이야기인 즉 고백을 하고픈데 떨리고 용기가 안 나서 업체를 통해 자기랑 똑같이 생긴 휴머노이드가 자기가 선택한 시나리오 대로 고백을 대신 해 주는 거다.
주인공 나인은 업체가 제공하는 시나리오까지 살 돈은 없어서 자기가 고백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고백봇을 통해 고백을 했다. 고백은 성공했지만 정후와 만나면서 계속 찜찜하다 고백의 순간을 자신이 직접 하지 못한 것이 걸린다.
고백보이 하든 자기가 하든 마음만 진심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런지 어쩐지 나인이와 정후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진실과 진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봇이 나의 진심을 대체할 수 있을까? 나 대신 전해도 그것은 진심일까? 불안과 두려움까지 감내하는 게 경험이 아닐까?
독자에게 많은 의문을 던지는 좋은 이야기다.
“나인이 고백봇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나인의 시선은 볼이 빨개진 정후를 직접 보았을 고백봇의 눈동자에서 멈췄다. 목구멍과 가슴이 동시에 꽉 막혀 묵직해졌다. 소중한 무언가를 놓쳤다고, 나인은 생각했다.”(105쪽)
<플루토>
‘우주로 가는 계단’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이야기다. 이웃에서 이상한 할머니라고 소문난 할머니가 사실은 과학자였다는 뭐 그런 거만 비슷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 두 사람이 관계맺는 방법이니까.
암튼, 플루토를 명명한 할머니와 인연 맺게 된 마빈 박사 이야기인데 앞의 작품들에 비해서 큰 재미는 없었다. 이미 다른 작품에서 본 이야기 구조여서 그런 듯하다.
이 작품을 보면서는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는 우주만한 게 없단 생각을 했다. 우주의 다양한 별, 행성들을 보고 관찰하고 알아가다 보면 지구 위에서 볶닦이는 인간이란 존재도 다르게 보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네갸 태어났을 때 넌 먼지보다 조금 더 컸지. 그래도 난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기분이었단다“(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