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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위대한 영웅의 여정에서 내 인생의 길을 찾다
김태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위대한 영웅의 여정에서 내 인생의 길을 찾다
김태진 (지은이) | 민음사

몇 해 전 『오뒷세이아』를 숲 출판사, 천병희 교수님의 번역본으로 읽었다. 함께 읽기를 통해 매일 단상을 남기며 3,000년 전의 오뒷세우스의 긴 귀환 여정 서사시를 완독하며 어떤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이후 아카넷에서 나온 이준석 교수님의 번역본을 발췌해 읽었고, 최근 영화 <오디세이>까지 보았다. 같은 이야기를 번역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만난 뒤 김태진 작가의 『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으니, 이번에는 익숙한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하나의 에피소드에 여러 해석의 틀을 겹쳐놓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로토스 섬의 이야기는 하이데거의 ‘세인’과 연결되고, 키르케의 섬에서는 기억과 자기 동일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세이렌의 유혹은 행동경제학의 ‘율리시스 계약’으로, 스퀼라를 통과하는 장면은 니체의 ‘아모르 파티’로 읽어낸다. 여기에 융, 캠벨, 리쾨르 등의 사상이 더해진다.
이런 방식은 『오뒷세이아』를 하나의 의미로 고정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는 듯하다. 이미 알고 있는 장면에 새로운 질문을 연결하니 로토스 섬은 유혹의 섬으로만 해석되지 않았고, 세이렌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으며, 귀환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만은 아니었다. 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반드시 원전을 반복해서 읽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상과 현재의 삶에 연결해볼 때, 오래된 이야기는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낸다.
특히 『오뒷세이아』를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이야기’로 바라보는 시선에 공감했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으로 출발하지만 귀환의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순간을 수없이 맞닥뜨린다. 때로는 ‘아무도 아닌 자’가 되고, 때로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며 살아남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이타카에 돌아온다. 그렇다면 그의 귀환은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일까. 아니면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일까.
이 책은 위의 질문을 현대의 우리의 삶과 연결해준다. 책은 남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고,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삶이 사실은 사회가 요구한 선택은 아니었는지 묻는 것 같다. 특히 AI 시대를 배경으로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목은 고전이 왜 지금도 읽힐 수 있는지를 다시 알게 해주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오뒷세우스의 여정을 ‘나를 찾는 여정’이나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읽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3,000년 전의 서사시를 오늘날 익숙한 자기계발과 자기실현의 언어로 해석하는 순간, 우리가 고전에서 발견하는 것이 과연 고전 자체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가치관을 고전에 투영한 것인지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신화와 철학, 심리학, 행동경제학을 넘나들며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가독성이 좋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철학적 개념들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가지고 온다. 덕분에 원전을 읽으며 지나쳤던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고,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뒷세우스의 선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뒷세이아』가 현재까지 읽히는 이유는 시대와 독자에 따라 계속 다른 질문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좋은 해설서는 그 질문에 대신 답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읽은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책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오뒷세이아』를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좋은 안내서이고, 이미 읽은 독자에게는 다시 읽을 이유를 만들어주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