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 - 나를 되살리는 이타와 돌봄의 윤리학
지카우치 유타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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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

나를 되살리는 이타와 돌봄의 윤리학

지카우치 유타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어째서 사람들의 마음은 서로 엇갈릴까?’

‘왜 타인을 위하는 선한 마음이 헛돌고, 때로 상대방을 상처 입힐까?’

한번쯤 질문해보았을 문장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상처가 서로의 다정함에 생채기를 내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흔히 ‘좋은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상대를 위해 건넨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믿음이 얼마나 자주 오해받고 다른 방향으로 가닿는지에 대해 말한다. 왜 우리는 다정하게 건넨 말로 상처를 주고, 누군가를 위한다고 한 선택이 오히려 거리를 만들게 되는 걸까. '독선적인 선의의 실패'는 선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놓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임을 짚어낸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타인을 향한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은 돌봄과 이타를 ‘소중한 것’이라는 기준으로 다시 정의한다. 돌봄은 타인의 소중한 것을 함께 아끼는 일이고, 이타는 그 소중한 것을 나의 것보다 앞에 두는 선택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그 ‘소중한 것’이 더 이상 공통된 가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에게는 배려였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침범이 되고, 다정함은 때로 상처로 남는다. 그래서 돌봄과 이타는 더 이상 마음의 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타인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어긋남을 감수하는 과정이 필요해진다.


저자는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우리의 익숙한 생각으로 인한 멈춤 자체가 관계를 단절시킨다고 말한다. 마음은 깊이 숨겨진 것이 아니라, 관계와 상황 속에서 계속 드러나고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가가려는 시도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견디는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그 과정에서 이타는 결코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필연적으로 갈등하게 된다. 나의 기준과 충돌하고, 때로는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바로 거기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타인을 향한 선택은 결국 나를 바꾸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타는 누군가를 위한 행위라기보다, 내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는 하나의 계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김혜진의 「관종들」이라는 단편소설이 떠올랐다.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인물의 모습은 우리가 타인을 향해 내미는 마음이 얼마나 쉽게 어긋나는지를 보여준다. 선의에서 출발한 관심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관계는 더 미묘하게 틀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한 것이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무심함은 또 다른 방식으로 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반대로 아예 개입하지 않으려는 두 극단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건네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 무엇이 배려이고 무엇이 침범인지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상태, 바로 그 모호함 속에서 다정함은 종종 방향을 잃는다.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가 말하는 문제의식도 이와 연결된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선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지 못한 채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기에, 다정함은 언제든 오해받을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좋은 마음’ 자체가 아니라, 그 마음이 닿는 방식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맥락이라는 점을 이 책은 계속해서 환기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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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없는 육체
김곡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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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없는 육체』 , 김곡 작가, 교유서가 



 

 우리는 보통 ‘몸’을 ‘모양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날씬한 몸, 근육 있는 몸, 예쁜 몸처럼 항상 눈에 보이는 형태로 평가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전제를 전복시킨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보고 있는 ‘몸의 모양’은 사실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이라고 말한다. 즉 몸은 원래부터 고정된 형태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계속 바뀌고, 해석되고,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모양 없는 육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제목에서 무척 끌렸는데 무언가 정확하게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이미 감각하는 것들에 의해 몸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모양 없는 육체』는 몸을 이야기하지만, 그 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개인을 넘어 타인과 사회의 방식까지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한다. 우리는 늘 몸과 함께 살아왔지만, 정작 몸을 하나의 존재로 사유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몸은 관리해야 할 대상이고, 개선해야 할 프로젝트이며, 때로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몸은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함께 살아내야 하는 타자라고 말한다. 더 나은 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평가하고, 교정하는 삶. 다이어트와 운동, 성형과 보정 앱은 거의 일상적인 수행이 되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이런 현상을 외모지상주의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딥페이크, 스토킹, 가스라이팅 같은 전혀 다른 현상들이 사실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본다. 몸이 더 이상 세계와 관계 맺는 통로가 아니라, 내가 끊임없이 통제하고 조형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을 때, 타자 역시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변한다. 그래서 타자를 존중하는 감각이 약해지고, 관계는 지배와 조작의 방식으로 기울어진다. 

 특히 “타자가 사라졌다”는 저자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에는 외부에 있던 타자가 이제는 몸 안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자기 몸과 싸우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뱃살과 체중, 피부와 근육이 더 이상 단순한 신체 상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적’이 된다. 이때 몸은 더 이상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제거하거나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전쟁의 방식은 점점 더 폭력적이고 집요해진다.


 이 책은 우리가 정말 몸을 사랑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혹은 우리가 말하는 ‘자기관리’가 사실은 자기혐오의 다른 표현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부족한 존재로 규정하며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글은 과감하고 급진적으로 느껴진다. “다이어트가 성행할수록 스토킹이 유행한다”는 식의 연결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려는 핵심은 몸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면, 세계를 대하는 방식도 함께 바뀐다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변화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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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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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의 바움가트너는 10년 전 아내를 잃은 일흔의 철학교수다. 그의 삶은 상실 이후 멈추지 않고, 다른 속도와 감각으로 이어진다. 그는 환지통을 앓고 있다. 이 통증은 이 소설에서 잃어버린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감각에 가깝다. 안나는 부재하지만, 기억과 몸의 감각 속에서 계속 남아 있다.


『바움가트너』는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왜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사라지고, 우연히 마주친 장면들이 오래 남는지' 생각한다. 기억은 의도적으로 선택되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환지통처럼, 이미 없어진 것들이 여전히 현재를 건드리는 방식이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 상실은 고립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움가트너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속에서만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깊이 연결되었던 한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그 관계의 흔적은 삶을 지탱한다. 『바움가트너』는 상실 이후에도 관계와 기억이 남긴 감각 속에서 시간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기억이 하는 일이 있다면, 사라졌음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비의지적 기억’에 의해 증명하는 일이 아닐까? 기억은 예고 없이 도착해 현재의 감각을 흔든다. 아무 의미 없었던 장면들도 우연에 의해 소환되고, 그것은 또 다른 것과 연결된다. 떠난 사람과,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나를 느슨하게 이어 붙이며 삶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기억하게 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읽고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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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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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오직 그녀의 것』은 한 편집자의 일과 삶, 그리고 읽기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석주는 젊은 시절부터 삶을 개척하거나 쟁취하기보다 “주어진 몫을 수용하며 감당하는 방식으로 삶에 순종했던”(p.29) 인물이다. 그녀에게 일은 투쟁의 현장이 아니라 인내의 자리였고, 열정은 불타는 감정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p.87) 자기 자신을 닦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일’의 세계는 반복과 수정, 타인의 판단과 마감이 얽힌, 감정의 여지가 점점 희미해지는 곳이다. 나는 그 세계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일과 감정, 열정과 체념, 인간과 체계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 애써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감정을 덜어내는 법을 배우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점점 무뎌져가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석주는 그렇게 책을 만들면서 세상을 이해했고, 결국 그 일 덕분에 “남몰래 갈망하던 성취와 성공을 어렴풋하게 경험하고, 타인과 자신을 사랑할 힘을 얻었다.”(p.271) 그녀는 깨닫는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상처받는 일이며, 일은 결코 쉬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수년째 책을 읽어왔다. 읽기를 통해 나를 옭아매던 오래된 감정들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했다. 책은 내 안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고, 나는 그 문장들을 따라 조금씩 단단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책으로 사람을 만들고, 일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람에게 지치기 시작했다. 책을 매개로 한 사람들, 읽는다는 행위로 연결된 관계들 역시 그 나름의 위계와 권력을 품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읽는다는 일에도 회의가 찾아왔다.


『오직 그녀의 것』은 ‘읽는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편집자로서의 읽기는 아니지만, 그 태도는 독자로서의 읽기와도 연결되었다.) 읽기란 결국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기 이전에, 자신에게로 향하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석주는 그것을 쉰이 넘어서야 깨닫는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 허구의 서사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밀한 기억의 감정이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실은 읽는 행위의 전부”(p.267)라는 것을.


"책을 좋아하나요?"(p.272)라는 질문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지만, 어쩌면 삶 전체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좋아함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기를, 다치지 않으면서도 계속 좋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아한다는 것은 끝내 그만두지 못하는 일, “꾸역꾸역 해나가는”(p.253) 일이라는 걸 알기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읽고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그녀에게 삶은 노력과 분투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미래는 모험이라기보다 수용에 가까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삶이 어떤 식으로든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 P10

작품을 냉정하게 보라는 건 단점에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지점,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좋은 점을 찾는 건 부족한 점을 찾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부족한 부분에서 잠재성을 발견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고요. - P25

그러게요. 참 이상하죠? 일이 쉬워지는 법이 없으니.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그땐 무슨 이런 감상적인 소릴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틀린 맒도 아니더라고요. - P253

석주는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을. 허구의 서사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밀한 기억의 감정이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실은 읽는 행위의 전부라는 것 또한.
아쉬운 지점이 없진 않았다. 지나치게 망설이는 듯한 도입부와 어수선하게 정리된 결말은 손을 볼 필요가 없었다. 알량한 지위와 권위를 내세운다면 신인 작가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뭐랄까, 의기소침해진 작가가 마지못해 고쳐온 원고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 P267

책을 좋아하나요?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맞다.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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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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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열린책들 하다 앤솔리지1


『걷다』는 다섯 명의 소설가가 걷기를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풀어낸 앤솔러지다. “하다”라는 가장 단순한 동사에서 출발했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삶의 가장 근본적인 결이 드러난다. 김유담, 성해나, 이주혜, 임선우, 임현 — 이 다섯 작가의 소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결국 걷기가 삶을 다시 묻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김유담의 「없는 셈 치고」에서 주인공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발바닥이 쓰라렸다. 그보다 더 쓰라린 건 마음인지도 몰랐다”라고 말한다. 그 문장에서 나는 걷기가 마음의 무게를 드러내는 몸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해나의 「후보(後步)」에서는 38년간 철물점을 지킨 인물이 뒤로 걸으며 자기 삶을 반추한다. 걷기가 시간이 아니라 기억을 되짚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주혜의 「유월이니까」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발이 어떻게 생명을 붙잡는지를 보여준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뛰는 거예요”라는 말은 걷기가 생존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어지는 임선우의 「유령 개 산책하기」에서는 상실의 자리에서조차 걷기가 위로와 동행의 행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령 개와의 산책은 목적지 없는 느릿한 길이지만, 그 느림 속에서 오히려 삶이 회복된다.

마지막으로 임현의 「느리게 흩어지기」는 산책을 “흩어지기 위해 꾀를 내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걷는다는 것이 모으는 일이 아니라 흩어내는 일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걸을 때마다 환기되는 감각, 불현듯 떠오르는 사유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걷기는 사색이 아닌 일부러 시간을 내어야만 가능한 행위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또는 건강을 위해 쫓기듯 걷는 것 같기도. 그래서 이 소설집의 문장들은 '걷다'의 행위,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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