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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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적 사고관을 견지하여 자칫 냉소로 문제를 덮어버림을 경계하려 노력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집단주의에 매몰되거나 한없이 반항적으로 변해버리거나 두 가지에 모두 질려 쿨한 척으로 자신을 문제에서 분리시키려 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한 번쯤 들어볼 필요가 충분하다.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개인주의자로서의 자세, 둘째는 타인에 대한 이해, 셋째는 사실을 마주하는 법에 대해 다룬다. 만연한 꼰대이즘에 대해 단호히 반대 의사를 잃지 말라는 조언이 1부를 이루고, 2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가 말한다. 3부에서는 맞닥뜨릴 갖가지 상황을 좀 더 슬기롭게 다루기 위한 마음가짐을 이야기하고 있다. 칼럼들을 묶은 책이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공감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과정들이 독서 중에 자연히 스며들 것이기 때문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유명한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는 없을 것이다. 유명한 말에 이끌려 공산당 선언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몇 장 보고 접었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이어졌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오래 전 내용들이라 현대에 공감하기 쉬운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동구권 몰락으로 사회주의 기류 역시 크게 꺾인 탓도 있을 것이다. 여러 이유 때문에 지금 독자들에게 널리 퍼지기는 어려운 책이다.
반면 개인주의자 선언은 다른 모습을 가진다. 과학적 분석을 통한 이론서가 아니다. 소소하게 써낸 에세이다. 난이도도 쉽다. 거창한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고, 그 동안 본 수필처럼 읽으면 된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그 영향을 듬뿍 받은 청년들은 개인/자유주의적 성향을 많이 가진다는 점에서 더 많은 독자들에게 퍼질 힘도 있다. 손석희 사장의 추천사처럼 이 책이 많은 책들 속에 묻히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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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나의 병사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27
하비에르 세르카스 지음, 김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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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에 나왔다. 스페인 내전을 주제로 삼아 당시 큰 주목을 이끌었다. 수필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이 소설은 팔랑헤 당의 거물이었던 산체스 마사스가 내전 중에 겪은 일을 시초로 한다. 처형의 위기에 맞닥뜨린 그는 이름 모를 병사의 행동과 카탈루냐 패잔병들의 도움으로 살아남고 이 이야기를 자신의 기록에, 지인들에게 남긴다.

산체스 마사스의 당시 상황을 복원하려고 조각조각 흩어진 자료들을 맞추는 과정과 이를 토대로 소설을 만드는 과정, 찾아도 찾아지지 않던 무명용사를 정말 우연찮게 찾아가는 과정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망각협정과 이행기 속 잊어버린 어두운 과거를 들추어낸다.

산체스 마사스는 팔랑헤당 창립멤버로써 당시 불씨로만 지펴진 파시즘의 선봉이었다. 그는 탁월한 시인이자 소설가, 선동가로 팔랑헤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깊은 확신과 낭만으로 역설한다. 탄탄한 정신, 옛 도덕과 훌륭한 질서의 수호자들이 만드는 유토피아를 상상한 그는 수많은 이론가들이 그러하듯 생각과 다른 현실의 굴곡에 마주한다. 저자는 기나긴 시간과 사건들의 끝에 마사스가 결국 박살나버린 자신의 이상에 남긴 한줌의 회한을 보여주며 프랑코 시대의 이상과 가치가 허상임을 보여준다.

산체스 마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난 뒤 결코 찾지 못한 이름없는 병사는 칠레 출신 작가에 의해 실마리를 연다. 프랑스에 아무도 모르게 잊혀지는 그를 찾아내면서 마침내 잃어버린 역사의 마지막 면을 완성한다. 특별한 이상을 가지지도 신화나 영웅담처럼 거대한 사명을 띄지도 않아 묻힌 그는 역설적으로 그래서 영웅이었다.

저자는 영웅담을 들춰내어 세월에 묻힌 진짜 주인공을 드러내고 동시에 이러한 과거를 모두 묻어버리기로 한 망각협정과 이행기에 비판을 재기한다. 독일의 역사학자가 말한 "최후에 문명을 구해내는 소수의 병사들", 즉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살라미나의 병사들은 마사스가 말한 자신들 상상 속 이상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다른 곳에서 죽어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임을 일깨워준다. 이 책 제목이 원래 산체스 마사스가 쓰려던 책의 제목이었음을 밝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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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난 신 - 어느 태평양전쟁 귀환병의 수기
와타나베 기요시 지음, 장성주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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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껴안고"에 언급되었던 책이다. 저자는 일본해군 수병으로 여러 해전에 참전했다. 타고 있던 전함이 부서지며 죽을 고비도 넘기고 옆의 전우가 내장을 쏟으며 죽어갈 때 직접 지켜보기도 했다. 전쟁동안 그는 열렬한 천황의 추종자였고 황군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믿던 세계는 너무도 빠르고 뻔뻔하리만치 그를 버렸다. 이 책은 그가 세상에 버림을 받고 쓴 일기이자 통렬한 자기고백이다.

첫장은 일본이 항복한 후 해군에서 전역조치 당해 고향으로 내려왔을 무렵부터 시작한다. 그는 미국에 항복을 해야했다는 것에 크게 분노한다. 더불어 천황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그가 제국의 원수로써 장엄한 최후와 책임을 질 것임을 믿는다.

하지만 항복문서 조약, 맥아더와 히로히토 천황의 듀엣 사진, 전후 이어지는 황가의 조서 등은 그것과 전혀 먼 곳이었고, 첫번째 신화이자 가장 큰 믿음은 깨진다. 천황에 대한 분노, 실망, 경멸을 품으며 등을 돌린다.

두번째 신화는 일본 사회 전체였다. 고위 관료직들은 어설픈 자살 쇼만 늘어놓고 어제 천황을 위해 몸을 바치라던 마을 유지들은 미국에 덤빈 것은 어리석었다고 말한다. 식량난으로 도시사람과 시골 사람들의 지위가 뒤바뀌고 야마토 타마시 (일본민족의 혼) 으로 대표된 화합의 세상은 사상누각임이 드러났다. 귀환한 군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또 하나의 문제였다. 친구들은 보병, 만주 개척대, 카미카제등으로 차출되어 나갔고 시체로 돌아오거나 병에 걸리거나 자포자기가 되어 흥청망청되는 등 원래의 삶을 잃어버린다. 저자 역시 붕 떠버린 신세를 어찌해야할지 몰라 고통받는다. 그러나 제대군인들에 대한 멸시와 조롱만이 남았고, 이전에 전쟁에 참가한 시절은 절망, PTSD, 회한만 남길 뿐이었다.

만약 이대로 끝났다면 평범한 전후 기록으로 끝났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가 끝나기 전까지 일본의 대다수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책이 다른 기록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자기반성과 성장이 후반에 제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도쿄에 연이 닿는 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저자는 과연 자신은 일련의 사태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를 생각해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전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저작들 (주로 '빈곤론'같은 마르크스주의 책들이지만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을 통해 동조했던 자신을 다시 생각하고 성찰한다. 이후 도쿄로 떠나는 날, 천황에 편지와 함께 전쟁중 자신이 받았던 피복과 음식 등을 모두 돈으로 갚으며 산산조각난 신을 정리한다.

책이 특별히 잘 썼거나 멋진 문구들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솔직하게 세태를 고발하고 그 일원이었던 자신을 반성하는 글이기에 소중하다. 단순히 지나간 역사에 대한 배상 치부가 아닌 자기기만의 멈춤이 중요하다. 당대 일본이 하지 못한 것, 지금의 일본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글이 계속해서 남기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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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1
신카이 마코토 지음, 코토네 란마루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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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빨리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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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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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학교 복도에서였다. 복도에 붙어 있는 누군가의 서평이었다. 총균쇠나 이언 모리스는 알고 있었으나(그렇다고 본 건 아니지만) 유발 하라리라는 이름은 처음 보았다. 이런 저런 빅픽쳐들을 소개하는 책이 최근 쏟아져나오는지라(혹은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는지라) 그런 비스무리한 것인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그래도 역시 자주 노출되면 언젠가 관심 한 번은 가져주듯이 서평을 주욱 훑어보았다. 인류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걷게 될 발자취를 모아 둔 책이라고 자신있게 설명하는 데서 호기심이 끌렸다. 마침 빅 히스토리에 대한 입문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름 고민하고 있던 차에 적절한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샀다. 그리고 대략 100일 정도는 다른 것 한답시고 까맣게 잊었다.(사실 그동안 살만 칸의 책이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보았다.) 그동안 총균쇠와 이언 모리스의 책들을 슬금슬금 모으면서 어떤 것부터 집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역시나 이 책을 집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나마 있는 책 중에 제일 글자도 큼직하고, 컬러풀하고, 최근에 나왔으며 페이지도 상대적으로 제일 적으니 가볍게 볼만하겠지란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루트로 인류의 발전상을 심심찮게 접해봤다면 이 책의 내용이 그렇게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크게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이라는 4개의 장으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한번쯤은 어떻게든 본 거다 라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인지혁명과 그에 따른 현대 인간 종의 이동, 그리고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과정은 이전에도 언급되어 온 내용이듯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런 별개의 내용들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보아야 한다. 책에서 저자는 계속해서 이런 흐름들이 다같이 일어나고 있으며, 점차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한다. 인지혁명으로 인하여 호모 사피엔스들은 더욱 넓은 범위의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런 큰 규모의 사람들을 응집할 수 있음으로써 비로소 기존 동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보통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하였고, 그 흐름은 새로운 축을 만들어내면서 본격적인 역사의 시대를 연다. 비록 개개의 행복이 늘어났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런 방향으로 계속해서 전진했다. 하나로 통합될수록 우리의 크기는 점점 커졌고, 그 속도는 생물학적 진화로는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점이다. 그동안 분절적으로 생각해왔던 역사를 하나의 큰 흐름으로 다시 재조명하는 일은 작지만 작은 일은 아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말이다.

또다른 큰 축은 과학이다. 과학혁명, 즉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라는 것을 전제하고 그것을 밝히며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론이 등장하고 난 이후로는 이전까지 해왔던 모든 변화보다 더욱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조만간 우리는 우리도 생각지 못한 것을 해낼지도 모른다.(자세한 미래에 대해서는 이 책이 아니라 '특이점'관련 책을 참고하길 추천한다.) 이런 커다란 흐름들을 하나의 책에 집어 넣은 것이 하라리의 소소한(?) 업적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식상하다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우리가 이렇게 최대한 깔끔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를 얼마나 많이 보았을지 생각한다면 이 책이 가지는 의미를 축소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위에 의존하는 설명은 별로지만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교수의 평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책에서 잊어버린 내용도 많고 간략하게 정리되어 그 구체적인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많아 구구절절 늘어놓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간략히 줄이자면 이 책의 의의는 인류가 지나온 발자취, 그리고 거기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과 방향을 명확히 짚어낸 것에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살펴보길 권한다. 물론 옮긴이의 말처럼 디테일에서 이런저런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라리의 주장은 유효하다. 우리는 더욱 더 커져왔고, 날로 새로워졌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더욱 생각해보아야 하겠지만 이런 진로가 갑자기 틀어지는 것보단 유지되는 편이 더 가능성도 높고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성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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