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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롱 시한부
김단한 지음 / 처음북스 / 2022년 2월
평점 :
나이가 들면서 맞이하게 되는 죽음도 하나 둘 늘어난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부터 지인의 가족과 같은 간접적인 관계에 놓인 사람의 죽음, 그리고 조부모 (세대)의 죽음....부모 (세대)의 죽음....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모두들 마치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가까운 누군가가 남아있는 시간을 선고받게 되면 하늘이 무너질 듯 세상이 사라질 듯 혼돈과 아픔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나이드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고 그 끝은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지와 인정 사이는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저자는 2-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외할머니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살다가 광복과 동시에 한국에 넘어왔지만 생계를 책임지느라 한글공부를 할 수 없어 아직까지 이름도 못쓰던 안나(외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드린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매일 전화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를 하며 어디서도 얻지 못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가득가득 전해주던 안나.
외할머니와 손녀의 사이가 나이를 초월한 친구사이 같아서 신기하면서도 부러웠고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말과 위로를 전해주는 존재가 얼마나 삶에서 크고 중한지, 그리고 그러한 존재가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상실감과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구구절절 공감하며 읽었다. 카페에서 읽다가 눈물을 계속 훔쳐낼만큼 .... 😭 작가의 글솜씨가 무척 훌륭했고 그 이전에 글로 담아낸 감정과 마음들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내겐 필요 없는 것(돈이든 뭐든)이라 해도 기어코 손에 쥐어주고야 마는, 그래야만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은 정말 아홉을 주고도 하나를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손주를 향한 찐사랑이다. 나 또한 어느 날 밤에 아버지가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흘리듯 하신 적이 있었는데 살면서 부모님께 부족함 없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나였기에 이 말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작가의 마음에 깊이 공감이 갔다.
종종 나도 이런 일이 닥쳐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곤 하는데 작가처럼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며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생각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두려움이 너무 커서 현실을 직면할 용기가 없는 거다. 잘 이별할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만 안타까이 흐를 뿐.... 그러나 이 역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과연 맞닥뜨리면 냉철하게 잘 할 수 있을까... 내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주변은 못돌아볼 것 같은, 그리하여 나중에 더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울컥해 지는 것이 이 부분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다.
응당(?) 해야할 것들 (=그리하여 남들도 다 하는 것들, 가령 취업이나 결혼, 출산 같은 것들)에 대하여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집요하게 묻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명확한 플랜을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안나에게서 "바라는 건 딱 하나, 니 행복....." 이란 말이 나오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안나는 손녀를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있구나.... 물론 앞서 말한 것들도 애정에서 비롯된 말이긴 하겠으나 눈에 보이는 것들을 넘어서서 정말 존재 자체를 사랑해버리는 치원 높은 찐애정을 느낀 순간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감동이 밀려왔다.
읽으면서 너무 이입을 하면서 읽었더니 그래서 지금은 어찌되었는지도 괜히 더 궁금하고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손녀도, 그리고 그 손녀와의 대화도 이제 잘 기억하지 못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에 대해서 괜히 더 속상하고 그렇다. 죽음에 대하여, 그 두려움에 대하여, 담담하게 써내려간 작가의 말들에 깊이깊이 공감이 갔던 나이롱 시한부. 조부모님 세대는 이제 안계시지만 부모님께 더 잘 해드려야겠단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