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정해연 지음 / &(앤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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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와 죄의 무게의 서늘한 질문, (끼이익-)

정해연, 드라이브(앤드)

 



시원하게 뚫린 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금방 몰입했고, 빠른 속도로 문장이 눈과 머리에 들어왔다. 빠른 속도로 차가 내 앞을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랄까. 솔직히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나눠서 읽었다. 자꾸 브레이크를 밟았다. 몰입이 너무 된 나머지 스스로 힘들기도 했고, 뭔가 두려웠다. 내가 노균탁, 김혜정이 되어 지옥 같은 상황에 떨어진 느낌은 정말 아찔하고 잔인하고, 숨 막혔다. 나눠 읽어도 순식간에 페이지는 넘어갔고, 금방 책장을 덮었다.


드라이브는 노균탁과 김혜정,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점으로 나뉘어져 있다. 책을 노균탁과 김혜정의 각 이야기를 반대로 두는 구성은 참신하고, 이 책에 대한 매력을 더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드라이브70대 노인 노균탁의 차량에 김혜정의 딸 10대 소녀 연희가 치여 죽게 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이 모두 파괴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파괴된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 각각의 시점은 독자로서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먼저 노균탁의 시점으로 시작했다. 70대 노인이 운전대를 잡는 건 문제라고 볼 수 없지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그러면 문제인가?). 노인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그로 인한 피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운전하는 것이 위험 요소가 되는 나이에 면허증을 반납하면 십만 원의 보상금을 주는 현행이 있다고 해도 그 보상금은 운전대를 직접 잡는 편리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대부분 운전대 잡는 것을 선택한다. 직접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면허증을 반납하면 좋으련만, 강요할 수 없는 현실도 안타깝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각지 못한 피해를 보고 하루아침에 삶이 파괴되는 누군가를 떠올리면 잔인하기까지 하다. 노균탁은 자신의 차량에 치여 피를 토하며 쓰러진 소녀, 소녀가 죽고 나서 삶이 완전히 무너진다.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다. 차량에 치여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소녀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고, 자신이 앞날이 창창한 10대의 소녀를 죽였다는 사실에,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노균탁은 이유가 어떻든 가해자가 되었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악마가 되었다. 무릎을 꿇고 평생을 사죄하며 살겠다고 해도 죽은 아이는 돌아오지 않기에 절대 용서 받을 수 없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고의가 아니었지만, 사람이 죽었다. 노균탁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노균탁 죄의 무게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노균탁은 자신이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엑셀을 밟았고 실수였다고 했다. 실수는 수습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노균탁은 실수가 아닌 죄를 지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가해자가 되어 딸 지영과 사위에게 무거운 짐을 얹었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노균탁의 마지막 선택이 남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 때문에 죽은 소녀와 소녀의 유족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노균탁이 혼자 생각해서 내린 결정으로 오히려 남은 이들을 더 괴롭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남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 후회, 원망 등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갇혀 휩쓸릴 테니까. 노균탁의 시점에서는 정말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웠다. 사람을 죽였는데, 나 말고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고 나로 인해 하루아침에 모든 게 무너졌고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느낌이었다. 노균탁처럼 진심으로 반성하고 괴로워하는 가해자들은 몇이나 될까. 대부분 가해자들은 죄의 무게를 낮추기 위해 머리를 쓰고, 피해자 유족들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고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계산적으로 잔인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안 그래도 지옥 같은 시간 안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더 잔인하게 칼을 꽂는 일이다. 가해자 죄의 무게는 어떻게 봐야 할까, 죄의 무게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노균탁 시점에서 쫓기듯 나와 한숨 돌리고 들어간 김혜정의 시점은 아수라장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딸과 아들은 등원하고 남편과 본인은 직장에 출근했다. 평소라면 급한 용건을 문자로 남겨둘 남편이 자꾸 전화를 걸어오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린 법이 없다는 듯이 혜정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남편이 알린 딸 연희의 죽음. 혜정은 남편 영준이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가서 상황을 바로잡을 거라고 생각하며 영준과 연희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계속 부정했던 연희의 죽음은 차갑게 식어 핏기 없이 누워 있는 연희를 보고 현실이 된다. 혜정은 연희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그러면서도 계속 부정한다. 아니라고, 연희가 죽었을 리가 없다고. 하지만 연희는 이미 숨은 거뒀고, 잔인하지만 연희를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영준은 혜정을 챙기면서 연희의 장례 준비를 했다. 혜정은 연희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장례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현실을 부정한다. 부정할수록 연희의 죽음은 확실해졌다.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연희를 한 번 더 안아 줄 걸, 한 번이라도 안고 싶은 혜정은 연희를 죽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들끓는다. 기절하고 나서 병원에서 깨어난 후, 곧바로 달려간 경찰서에서 연희를 죽게 만든 사람을 확인하고, 그를 잡아 흔들며 연희를 살려내라고 죽을 거면 당신이나 죽지, 왜 앞날이 창창한 내 딸을 죽였냐며 울부짖는 혜정의 모습은 정말 처절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마음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욱신거렸다. 노균탁의 시점에서는 메말라가는 느낌이었다면, 김혜정의 시점은 몸에 있는 모든 수분을 빼냈는데도 계속 물이 나오고, 동시에 모든 걸 집어삼킬 불이 이글거리는 느낌이다. 혜정이 울부짖고 분노하고, 딸 연희의 흔적을 느끼는 모든 장면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김혜정 시점의 모든 문장에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분노보다 자꾸 목이 메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까지 오래 걸렸다. 너무 괴로웠다. 이 상황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파괴되버린 삶,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김혜정, 그녀는 앞으로 딸 연희가 없는 삶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낼까. 받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결국 또 상처를 주고 만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모두 생각한 건 처음이다.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사고에는 늘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생명의 가치와 죄의 무게에 대한 서늘한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나는 대부분 상황을 파악하고, 피해자 입장이 되어 분노한다. 가해자의 입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죄를 짓고 난 뒤 뱉는 말은 다 똑같다. 실수였다, 심신미약, 음주 상태 등등. 생명을 앗아가고 그들의 삶을 하루아침에 파괴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죄의 무게, 아니 형량을 줄이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설령 뱉은 말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해도 전으로 돌릴 수 없기에 완벽한 반성도, 완벽한 용서도 없다. 고의든 자의든 죄를 지었다면, 그 죄로 인해 누군가의 세상이 무너졌다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잔인한 사실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일말의 죄책감이 없고, 잘못을 모르는 가해자는 절대 모른다).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도 흔들리고 무너진다. 죄를 짓는 건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죄를 짓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죄에 이유와 합리화가 적용되면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정말 악으로 가득 찰 것이며, 생명의 가치와 죄의 무게에 대한 서늘한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처음 한다. 나는 인간의 본성은 이라고 생각한다. 악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지만, 그 힘이 적정한 선을 넘으면 해를 끼친다는 게 내 입장이다. 선과 악은 오래전부터 싸워왔다. 본성과 도덕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본성을 통제하고, 도덕적인 선택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우리가 살기 편하고 안전해진다. 본성과 도덕적 딜레마가 싸우다 보면 본성이 이길 때도 있고 도덕이 이길 때도 있지만, 그 우승의 깃발은 본인의 선택으로 갖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뒤따른다. 그 후회의 무게는 차이가 분명하지만, 결국 선택을 하고 난 뒤에 따른 모든 것은 본인이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와 죄의 무게에 대해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세상을 만든 신도 바로 답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럼 생각한다. ‘신은 모든 걸 알고 있고 보고 계시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걸까?’.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나 세상을 만들 때 걸었던 조건이라고 해도 보고만 있기에 너무 잔인하고 처참한 일들이 많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보다 더한 일도 일어날 수 있고. 신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고 했다.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노균탁, 김혜정과 같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다. 그들의 삶을 드라이브를 통해 엿보는 동안 메말랐고, 불구덩이에 빠져 울부짖었다.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아니었다. 결국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신이 바라는 엔딩은 무엇일까? 이미 알고 있는 엔딩이기에 보지도 않을까. 노균탁의 차량이 소녀를 치기 전에, 노균탁이 엑셀이 아닌 브레이크를 밟게 신이 개입했더라면 노균탁과 김혜정 두 사람의 삶은 평범하게-손주를 돌보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일을 하며-흘렀을 것이다. 노균탁곽 김혜정의 파괴된 삶을 모두 봐버린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것이 의미 없어졌다. 그냥 신을 원망하고 싶어졌다. 신이 짠 판에 놀아난 인간이, 우리가 안쓰러울 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노균탁, 김혜정, 지영, 영준, 연희와 같은 사람들이 없길 바랄 뿐이다. 그저 모두 하품이 나올 만큼 평범한 시간 속에서 흘러갔으면 좋겠다. 엑셀 대신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삶이 우리의 삶이길, 그렇게 모두 안전하고 평안한 하루하루를 쌓길.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넥서스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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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소문 - 변하리 유니버스 푸른숲 어린이 문학 47
제성은 지음, 주성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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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이제 그만 멈춰!’

제성은 글 주성희 그림, 최애의 소문(푸른숲주니어)


 

가짜뉴스아이돌’, ‘최애’, ‘덕질키워드만 보고, 이 책을 내가 읽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리와 주리, 수빈이의 덕질하는 모습이 꼭 내가 덕질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최애의 소문은 아이돌 덕질을 해본 사람, 하고 있는 사람, 관심과 덕질의 애매한 경계선 위에 있는 사람들이 읽기에 아주 재밌고, 같이 분노하고, 공감할 수 있다. 아이돌 그룹 비프롬씨의 황금 막내 최유민을 덕질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폰좀비 아씨를 만나면서도 덕질을 멈추지 못하는 하리와 친구 수빈, 언니 주리, 유민의 늦둥이 동생 주원이 가짜뉴스로 피해를 보는 유민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유민의 가짜뉴스는 계속 퍼지고 살이 붙는데,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무성한 소문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유민을 향한 복합적인 하리를 포함한 유민의 팬들 감정, 절대 그럴 리 없을 거라는 믿음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는 지점,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함께 적극적으로 가짜뉴스의 허점을 찾고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를 좋아하고 응원하고, 마음과 시간을 쏟는 일이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점이 잘 드러나서 좋았다. 하리가 느끼는 기분, 감정은 덕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덕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리의 이야기를 들려준 제성은 작가님도 누군가를 덕질했고, 덕질하는 동안(현재 진행 중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누굴 덕질하시는지 너무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되셨는지 너무 너무 궁금하다!) 덕질하는 아이돌의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를 경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이라서 가짜뉴스의 심각성이 확- 와닿았다. 가짜뉴스는 전부터 공인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하나의 (악의적인) 수단이었다.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이 되고, 사실처럼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굴리고 굴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미지와 인기로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자리 잡아야 하는 공인에게 가짜뉴스는 치명적이고, 잔인하다. 물론 가짜뉴스가 사실을 바탕으로 떠돌다가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한다(아니라는 믿음이 굳건했고, 당사자도 아니라고 여러 번 부인했지만 결국 가짜뉴스가 사실이 될 때 느끼는 배신감과 허무함은 말로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대부분 가짜뉴스는 가짜일 뿐이고, 가짜뉴스로 인해 이미지 추락은 물론, 그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피해 입고,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당사자만큼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그것으로 조회수를 올리고 관심을 단번에 받는 수많은 사이버 레커에 대한 처벌은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유포자가 직접 느끼고 진심으로 반성하게 만들기에는 매우 약하다. 솜방망이 처벌은 유포자에게 또다시 가십거리로 떠들 명분을 줄 뿐이고, 가짜뉴스 피해자들은 또다시 사실이 아닌 거짓뿐인 세상에 자기도 모르게 우뚝, 세워진 채 한 순간에 수많은 익명의 손가락질과 욕설, 기분 나쁜 눈빛을 모조리 받아야 한다. 가짜뉴스 유포자에 대한 처벌은 더 강력해져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이들에게는 자비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중의 관심이 바탕이 되어 매일 서바이벌 같은 연예계에서 버티고 버텨 살아 남아야 하는 공인에게 대중의 평가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공인도 사람이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익명 뒤에 숨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날리는 수많은 날카로운 말들을 다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다. 대중의 평가는 공인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이 바탕이 되었을 때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연예계에 데뷔하기 전에 수많은 평가를 거쳐 힘겹게 발을 들인 이들에게 계속되는 평가는 잔인할 것 같다. 매일 자기에 관해 어떤 기사가 떴는지, 자신과 관련한 댓글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등등 신경 써야 하는 일은 피곤하고 숨 막히고, 연예계에 발을 들이고자 한 꿈을 꾼 지난날의 설렘이 잊히기에 충분하다. 그들에게는 평가보다 좋아하는 마음의 뿌리로 시작된 응원과 관심이 더 어울린다. 물론 냉정하고 쓴소리를 들어야 하는 몇몇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공인을 하나의 스트레스 풀 대상 혹은 마땅히 평가를 받고 그것을 받아들여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인형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악플을 단 이들에게 악플을 단 이유를 물어보면 취직이 되지 않아 힘든데 스트레스 풀 곳이 필요했다나 뭐라나. 우리의 공인에 대한 마음대로 생각하는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


가짜뉴스에 대응하지 않는 유민도, 그런 유민이 답답한 하리도 이해하는 입장에서 가짜뉴스 유포자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짜뉴스를 진짜라고 믿고 퍼나르는 사람이다. 사실이 아닌데 다수가 진짜라고 하니,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사람의 심리가 참 무섭다. 지금은 가짜뉴스와 사실을 어느 정도 구분하여 정보를 받아들이고 거르지만, 어렸을 때는 가짜뉴스에 마음을 훅- 빼앗기고 금방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익명 뒤에서 말하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단 초콜릿처럼 내 귀로 녹아 들어오고, 그 단맛을 의심할 틈도 없이 삼켜 버렸다. 나도 모르게 가짜뉴스를 유포하는데, 가담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가짜뉴스를 믿고, 친구들에게 ‘S가 이랬대. 진짜 대박이지 않냐?’라고 속닥거렸던 어린 날의 내가 어리석고 안타까웠다.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옆에 없었다는 사실에 두려움도 느껴졌다. 잘못이라고, 바로 잡을 수 있게 알려주는 사람의 부재는 아주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 나이여서 가짜뉴스와 사실을 구분 못 한다는 것을 떠나서 가짜뉴스만을 믿고, 가짜뉴스의 대상자에게 뾰족한 화살을 날린 것이다. 늦었지만 그때의 내가 날린 화살 때문에 여전히 흉이 남았을 연예인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사실과 가짜를 구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일단 던져 보는 가짜뉴스 대상자의 과거 이야기나 개인 사정 등을 장난, 카더라 식이었다고 말하지만 이건 엄연히 범죄. 한 사람의 삶을 하루아침에 파괴하고, 장난이라는 둥 어디서 들었다는 둥 실수였다는 둥 떠드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실수와 장난은 수습이 어느 정도 가능한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의미하니까. 예를 들면 흘린 물은 닦는 정도? 가짜뉴스 유포에 대한 처벌이 강력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또다시 한다.


진실을 반드시 드러나지만, 드러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할지 그 시간 안에서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아파야 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니라면 말을 아끼는 것이 맞다. 알더라도, 혹은 그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고 해도 그 대상이 없는 곳에서는 이야기가 어떻게 모양을 바꿀지 모르니 안 하는 게 옳다. 누가 뒤에서 내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기분이 나쁘고 억울하고, 당장 그 사람을 찾아가서 따지고 싶겠나. 연예인들은 지금도 누군가가 유포한 가짜뉴스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무관심도 무섭지만, 관심 중에서도 진심과 응원의 마음이 깃들지 않은 장난과 악의만 남은 마음에서 나온 관심은 더 무섭다.


덕질하면서 대부분 행복했지만, 아팠던 날들도 있었다. 실검이 있을 당시, 덕질하는 아이돌 그룹 혹은 멤버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반가우면서도 걱정했다. 내 아이돌은 사고 칠 일이 없을 거라고 그럴 애들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걱정과 불안이 슬쩍- 고개를 빼꼼, 내미는 건 어쩔 수 없다. 실검에 오른 멤버 이름을 떨리는 마음으로 클릭하면, 멤버의 활약이나 활동 관련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긍정적인 기사와 댓글에 기분이 좋았지만, 가끔 선플 사이에 낀 악플에 내가 악플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욱신거렸다. 비추천을 누르고 신고하는 것, 제발 선플만 보고 악플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덕질은 멈출 수 없고, 벌써 10년이 넘었다. 덕질하면서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응원하고 좋아하고, 앞으로 영원을 망설임 없이 약속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돌이 그들이라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들을 알게 된 날을 나는 행운의 날이라고 한다. 나에게 행운을 광활한 우주만큼 안겨준 그들이고, 지금도 여전히 팬들을 위해 데뷔 초와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열일해주기 때문에 우리 또한 처음과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응원하는 중이다. 지금은 아이돌과 팬 사이를 넘어 눈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깊고 단단한 관계가 되었다. 닿을 수 없는 스타고, 그런 스타를 멀리서만 지켜보는 팬은 예전을 의미한다. 지금은 SNS나 앱을 통해 아이돌과 더 가깝게 소통하며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지금의 관계가 좋지만, 어디서나 적당한 선을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문제가 일어난다. 팬으로서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응원하는 방식이 누구 봐도 자기만족이고, 덕질하는 아이돌을 오히려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모른 척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팬이 아니라, 그저 남의 불행이 곧 행복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덕질로 찾은 나의 끝없는 행복, 같은 마음으로 함께 덕질하는 즐거움, 덕질이 나의 일상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덕질은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오래오래 쌓이면 좋아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덕질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한다면 출구를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덕질은 망설일 필요가 없다.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유민과 같이 가짜뉴스로 피해를 보는 연예인들이 강력하게 유포자들의 처벌에 힘써서 두 번 다시는 가짜뉴스로 힘들어하지 않길 바란다. 요즘 세상이 소란스럽고, 연예계에서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분들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 방송 등 한 번 이상은 봤고 알기에 그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어째서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잘 살고,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이 세상을 등지는 건지 억울하고, 가해자들을 향한 분노가 모든 걸 삼켜 버릴 만큼 화르륵-, 타올랐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예인들이 행복하게 사랑받으며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악플을 올리고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이들보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들이 많으니 행복하게 활동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SNS나 기사 등 댓글을 적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익명 뒤로 숨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찌질한 악마 같은 이들에게 전한다. 가짜뉴스 때문에 잠깐 덜컹거리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하루아침에 남의 삶에 균열을 만든 대가는 엄청날 것이며, 당신들이 키보드를 두들기는 어리석고 찌질한 시간과 댓글,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올린 영상 등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진심으로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활동하는 데 힘이 되어주는 거라고, 그러니 시간 낭비할 시간에 발이나 닦고 잠이나 푹 자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길 바란다고.


너무 몰입해서 읽었다. 내 이야기고 나처럼 덕질하는 이들의 이야기고, 덕질의 대상이 되는 아이돌, 배우, 셀럽 등의 이야기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꼭 공인이 아니더라도 가짜뉴스는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고, 내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더 경계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갖춰야 한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엄청 어려운 일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지 않는 것,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객관적인 눈,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갖출 때야말로 우리를 공격하는 화살은 우리가 세운 방어벽을 절대 뚫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이들이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깨닫고, 가짜뉴스를 경계하며 그에 따른 처벌에 관심을 가지며, 적극 실천해야 한다. 가짜뉴스가 없어지는 그 머나먼 날까지, 제성은 작가님처럼 혹은 나처럼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작가님이 펜을 들어 쓴 글을 세상에 낸 것처럼, 내 아이돌을 믿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응원하는 나처럼.

 

폰좀비 아씨의 존재를 통해 가짜뉴스,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는 점을 우리가 쉽게 가짜뉴스에 노출되고, 쉽게 믿고 퍼나르는 데 자신도 모르게 힘쓰며 익숙하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갖게 한다. 빠르게 변화하고 하루에 엄청난 양의 정보와 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사는 우리가 진지한 태도로, 직면한 문제와 주변을 서성이는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고 적용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적합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힘써야 함을 폰좀비 아씨라는 캐릭터를 통해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같다.

 

진정한 성덕을 향해 가는 하리! 나도 하리처럼 진정한 성덕이기 되기 위한 걸음을 오늘도 내딛는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푸른숲주니어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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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3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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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 일이 아닌 일은 없다.

표명희, 당근이세요?(창비)(창비 청소년 문학 133)

 


버샤이후, 2년 만에 표명희 작가님 작품을 읽게 되었다. ‘표명희라는 작가 이름이 익숙했지만 왜 익숙한지 몰랐는데, 난민 이야기를 다룬 버샤작가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찜찜했던 부분이 해결됐다. 두 번째 만남이 표명희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집이라서 더 의미 있다. 청소년 시기를 보내면서 친구나 가족보다 책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책이 유일한 친구였고, 동시에 유일한 대나무숲 같은 거였다. 특히 청소년 소설은 조언, 충고 없이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안한 품이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시린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힘이 되는,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줄 수 있고 때로는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꿨고, 자연스럽게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 읽고 배우고, 쓰며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눈 깜짝할 사이에 졸업장을 받았다. 문창과 재학 시절 때는 그때라서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라는 교수님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졸업하고 난 후,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펜을 놓고 나니 그 말이 자주 생각났다. 작가가 되는 일이 생각보다 쉬울 줄 알았고, 내 이야기를 세상에 많이 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다. 펜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은 힘없이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만도 못했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펜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쉽게 펜을 놓았고 다시 펜을 잡으려고 했지만, 여전히 펜을 잡지 못하고 있다. 펜을 잡는 방법을 아예 잊어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 표명희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집은 저 아래 가라앉아 있던 처음 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와 글을 쓰는 것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첫 꿈을 끌어 올렸다. 일단 쓰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은 핑계 대신 쓰는 것이다.


이 소설집에는 4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딸꾹질,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오월의 생일 케이크, 개를 보내다. 딸꾹질2002년 월드컵, 빨간색, 붉은 악마,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는 당근 알바, 한부모 가정, 이주자 가족, 시설 생활, 오월의 생일 케이크는 가족, 군대, 518, 개를 보내다는 반려견, 만남과 이별로 키워드를 뽑을 수 있다. 4편 모두 조금만 귀 기울이고 고개를 돌리면 듣고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평범해서, 일상이라서 강한 울림이 있는지도 모른다. 금방 내 옆을 지나친 이들 중, 한부모 가정이거나 이주자 가정이거나 518과 같은 역사로 인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목에 뭔가 턱-, 하고 걸렸다. 솔직히 내 일이 아니기에 관심은 물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이웃, 먼 친척 그리고 이름과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하늘 아래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일이다. 나와 전혀 관련 없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무관심이 처음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으며, 우연히 듣게 되는 이야기에는 매번 안쓰러운 눈길을 던지거나 짧은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 나의 지난날의 모습이 부끄럽고 찌질해보였다.


4편 중, 오월의 케이크개를 보내다가 기억에 남는다. 오월의 케이크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518을 다루고 있다. 집안의 장남 큰아빠는 집의 모든 기대를 받고 그 기대에 부응하여 명문대까지 들어갔지만,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완전히 삶이 파괴되었다. 가족도 아니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그 일을 당사자인 큰아빠는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큰아빠를 고통스럽게 할 일이니까. 큰아빠는 그 일의 피해자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절대 옅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가진 채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수류탄이 터지고, 피를 흘리고 울부짖는 소리가 가득했던 그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버텨서라도 살아가야 하는 그 일의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생활과 감정, 그리고 앞날을-잠깐이지만-생각하고, 분노하고 아파할 수 있었다. 교과서로만 봤던 일을 실제로 겪은 이들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지난날을 보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잔인한 것 같다. 당연하다. 피해받은 쪽이 어째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할까. 지금도 방구석에서, 삶이 부서진 채 겨우 숨을 붙들어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세상에서 살 수 없을 나는 이대로 계속 살아가도 되는 걸까? 생각이 많아진다.


개를 보내다는 진서와 반려견 진주의 이야기다. 진주는 아빠가 진서의 생일 선물로 데리고 온 유기견이다. 진서도 엄마도 진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개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서는 똥은 누가 치우고?’라는 말로 진주와 처음 마주한다. 진서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개를 키우면 해야 할 일은 물론 개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개를 키우고 있는 입장-4마리를 키우고 있다-에서 진서와 엄마가 진주를 달가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내 선택으로 키우게 되었지만, 가족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내 선택을 자주 후회했다. 개들은 금방 분위기를 알아차렸고, 나는 미안하면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히는 개들을 등지는 날이 많았다. 나의 욕심과 무지함,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으로 나와 가족, 그리고 나만 믿고 그저 내 품에 안겨 온 아이는 서로에게 가족이 아니라 이 되었다. 짐짝 취급하고 귀찮아하던 내 모습을 떠올릴 때면 아이들을 볼 자신이 없다. 아이들이 없던 시간은 오래전부터 희미해져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내 시간에 아주 짙게 남았다는 것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없는 시간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먼 시간의 이야기지만 아이들과 이별해야 할 때가 오면, 나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몸에 모든 수분을 빼내듯 울 것이다.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당연한 섭리를 부정하면서 신을 원망할 것이고 지난날의 내 선택을 후회하고 자책할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건 당연한 섭리가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새끼 강아지를 보기 위해 몰려 가는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한 진서의 마음을 잘 알아서, 앞으로 내가 느껴야 할 감정들이어서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이 아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그 순간이 되도록 아주 늦게 오길 바랄 뿐이다. 아이들이 있는 동안에는 아이들의 소중함을 자주 잊겠지만, 그 대가는 아이들이 강아지별로 떠나고 나서 내가 치러야 할 것이며 그 사실을 아는데도 곁에 있을 때는 매번 후회할 행동을 한다. 진주는 진서의 가족으로 지내면서 행복했을까? 진서는 진주 덕분에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 빈집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진주가 있으니까. 진주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서의 시간에 녹아들었다. 진주의 시간에는 진서가 가장 많이 존재할 것이다. 사람과 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한다. 사람의 시간이 50이면, 개의 시간은 100이라나.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과 있을 시간이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기다림 없이 흐르고, 아이들의 시간은 무섭게 흘러가는 중이다.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줄 거라는 착각은 이제 거둬야 한다. 후회가 더 쌓이기 전에 빠르게 흐르는 아이들의 시간에, 나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에게, 나와 함께 하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 나의 시간을 기꺼이 아이들에게 줄 것이다.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며.


청소년의 시선으로 쓰인 네 편의 이야기를 통해 웃음도 나고 마음에 물컹한 것이 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하며 위로를 받았다. 작가가 세밀하게 그린 한국 사회의 현재가 생생해서 이야기 속에 등장한 모든 인물이 다 내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한국 사회의 현재를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록한 것이 읽히고 전해져야 하는데 표명희 작가님이 가볍지 않은 일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소설집이 청소년에게, 어른에게 읽히고 전해져 한국 사회의 현재를 파악하고, 조금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위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변화를 끌어낼 수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네 편의 이야기에서 한국 사회의 지금을, 소란스럽고 모든 게 흩어진 한국 사회의 지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 내 일이 아닌 일은 없으며, 오늘도 내 일일 수도 있는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습니다:D

 


#당근이세요 #표명희 #창비 #청소년소설 #2002년월드컵 #당근알바 #한부모가정 #이주자가정 #시설생활 #518 #트라우마 #역사 #반려견 #만남과이별 #기억 #청소년시설 #소설추천 #책로그 #2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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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벼운 아이와 너무 무거운 아이 - 2023 볼로냐 라가치상 어메이징 북셸프 선정작 곰곰그림책
남기림 지음 / 곰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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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아이와 무거운 아이, 우리의 이야기

남기림 그림책, 너무 가벼운 아이와 너무 무거운 아이(곰곰)

 


너무 가벼운 아이와 너무 무거운 아이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서로 불완전한 두 아이는 서로에게 괜찮을까? 생각보다 쉽게, 빨리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우리는 짧은 길을 언제나 먼 길로 돌아온다. 여러 갈래의 길을 걷고, 생각지 못한 상황에 놓여 보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등 수많은 선택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한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나와 네가 우리가 되는 순간을 더 단단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처음 너무 가벼운 아이와 너무 무거운 아이라는 제목을 머릿속에서 발음하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발음했을 때 무게가 달랐다. 머릿속으로 발음했을 때는 가벼웠다면 입 밖으로 소리 냈을 때는 무거웠다. 제목에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가벼운무거운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가벼운과 무거운앞에 붙은 너무가 그 무게에 더 힘을 싣는다.


너무 가벼운 아이는 하늘에, 너무 무거운 아이는 땅에 있다. 가벼운 아이는 무거운 아이가, 무거운 아이는 가벼운 아이가 부럽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어느 날 가벼운 아이는 겁에 질려 무거운 아이에게 언제나 자신을 잡아줄 거냐고 묻는다. 무거운 아이는 가끔 네가 혼자 걸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말에 놀라고 슬펐던 가벼운 아이는 무거운 아이의 손을 놓는다. 한 번 놓은 손은 더 이상 잡을 수 없었다. 가벼운 아이가 느꼈을 슬픔과 놀라움도 무거운 아이가 한 말의 진심도 다 이해된다. 가벼운 아이는 무거운 아이를 진심으로 믿고 자신을 지켜주길 원하고, 무거운 아이는 분명 가벼운 아이를 위해 한 말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서로의 손을 놓은 채 가벼운 아이는 하늘을, 무거운 아이는 땅을 자유롭게 떠다니고 걸어 다닌다. 근데 둘은 자유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손을 잡고 있을 때가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가벼운 아이는 떠나가는 것들을 붙잡고 싶었고, 무거운 아이는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 했다. 가벼운 아이에게는 무거운 아이가, 무거운 아이에게는 가벼운 아이가 필요한 것이다. 둘은 원래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될 운명이니까. 애초부터 하나를 전제하고 존재하는 거니까. 그렇게 떠나간 것들을 붙잡으려는 마음과 하늘로 올라가려는 마음이 닿는 지점에서 가벼운 아이는 팔을 활짝 벌려 무거운 아이를 맞이하고, 둘은 절대 다시 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손을 마주 잡는다. 잡은 손을 놓고 각자 지낸 시간 동안 가벼운 아이는 하늘을 떠다니면서 떠나간 것들을 보고, 무거운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둘이 만나서야 가벼운 아이는 떠나간 것들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무거운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적지가 생겼다. 서로를 향해 이어진 길에 여러 장애물이 많았을 뿐이다.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 둘은 두 번 다시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손을 마주 잡은 것이다. 얼마나 많은 손들이 놓고 놓쳐지고, 어렵게 마주 잡았을까.


가벼운 아이와 무거운 아이는 나의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지금 나의 상태에서는 두 개의 나이다. 가벼운 아이는 가벼워지고 싶은 나이고, 무거운 아이는 흔들리지 않는 나인 것이다. 한동안 우울과 자존감을 1도 찾을 수 없는 바닥에 꼬꾸라진 채로 침체되어 있었다. 햇빛을 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고 두려웠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니 나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고, 숨이 붙어 있으니 마음이 수척해진 날들은 계속 이어지고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답답해하면서도 안타까워했다. 그들의 시선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우울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 못 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박완서, 세상에 예쁜 것(마음산책))라는 말이 맞았다. 내가 쳐놓은 검은 커튼 틈으로 햇살 한 줄기가 들어왔고, 눈이 부셔 얼굴을 찌푸린데 반해, 한 줄기가 너무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커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다리에 일어설 힘이 조금씩 생기더니 그냥 매일 해가 뜨는 것을 보자.’라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그렇게 두 아이가 서로의 손을 다시는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처럼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일상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보니 살아졌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언제 다시 또 일상을 잃고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저 아래로 가라앉아서 나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지 알 수 없어 두렵지만-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을 잃을까봐-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는 시간이 해결 못 할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나는 시간의 힘을 믿기로 했다. 나의 가벼운 아이와 무거운 아이는 지금 손을 맞잡은 상태이다. 가끔 손이 떨어질 것 같으면 가벼운 아이가 손을 세게 쥐거나 무거운 아이가 손을 감싸듯 잡는다. 서로 놓지 않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서 아슬아슬하지만, 당분간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손을 놓거나 놓치더라도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둘은 돌고 돌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야 하며 혼자로 하나가 아닌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그림책 책장을 넘기는 어느 날, 내가 가벼운 아이와 무거운 아이에 어떤 의미를 담을지 알 수 없지만 그때는 가볍고 흔들리지 않는 나였으면 좋겠다.


 

이 그림책은 책 제목 댓글 이벤트 당첨으로 곰곰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곰곰출판사 : 세로 그림책은 처음이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세로 방향으로 펼쳐진 둘의 세상이 끝도 없이 위아래로 펼쳐지는 것 같아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그림도, 그림을 타고 제 마음에 살포시 앉은 문장들도 오래오래 떠올릴 것 같아요. 너무 가벼운 아이와 너무 무거운 아이를 만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가벼운 아이와 너무 무거운 아이는 사실, 저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주변을 자세히, 오래 들여다봐야겠습니다^^*


 

#너무가벼운아이와너무무거운아이 #남기림 #곰곰출판사 #그림책 #가벼움 #무거움 #무게 ###우리 #하나 #맞잡은_#불완전한세상이_하나가되는과정 #의식과무의식 #타인 #포용 #또다른나 #다양한의미 #다양한해석 #그림책추천 #세로그림책 #이벤트증정도서 #서평 #책로그 #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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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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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을 동시에 꿈꾸는 우리, 이대로 괜찮은가?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인플루엔셜) 티저북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라는 제목만 보고, 나를 위한 책이구나, 어떻게든 내가 만나게 될 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제목을 어떻게 이렇게 지을 수 있을까, 감탄했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라는 문장을 자꾸 곱씹게 된다. 곱씹을수록 내 마음에, 아니 나의 우주에 내가 알고 있는 구멍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구멍이 메워지는 것 같다. 분명 이 책은 이번이 아니더라도 나와 만났을 것이다.


왜곡된 거울상으로 재현한 흐릿하고 낯선 미래의 이야기곱씹을수록 진해지는 책 제목을 달고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을 동시에 꿈꾸는 오늘의 SF에 발 들일 준비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끝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단정과 연결, 파괴와 회복이라는 각각 반대의 세계에서 내가 어느 한 곳에라도 속하지 않은 채 붕- 떠 있지는 않을까, 그게 두렵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에 제대로 발을 들이기 전에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내딛는 첫걸음으로 만난 포털역노화꿈에서 흐릿하게 봤던 장면 같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분명 인간이 겪어야 할 시공간을 미리 엿본 기분이랄까. 두 작품을 읽고 난 후, 뭔가에 쫓기다가 겨우 따돌린 후 숨어서 간신히 숨을 돌리면서 여전히 쿵쾅대는 심장 소리로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울고 싶어졌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왜 울고 싶었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울고 나면 두 작품을 잘 소화했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다행히 울지 않았지만, 마음에 물컹한 무언가가 걸려 있다. 걸린 것이 무엇인지, 힘을 줘서 빼내야 하는지 아니면 녹아서 사라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내 심장이 두 작품에 반응했다는 것이다.


포털은 파괴와 회복 사이에 어딨는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다. 3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데릭의 포털을 보자. 데릭은 자기 아버지가 3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곳 인근에서 혼자 사냥하면서 한 줄로 나란히 나 있는 구멍들을 발견했고, 그 구멍에 손을 넣었다. 구멍에는 살아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있었다. 분명 살아 있고, 따뜻했다. 구멍에 손을 넣어 아버지의 얼굴을 만진 데릭은 쓰러져서 심하게 울고, 동생이 안아줘야 했다. 데릭의 경우를 보면, 포털이 보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포털을 통해 떠나보내지 못한 아버지를, 목 놓아 불러도 오지 않을 그리운 아버지를 향한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표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포털이 생기고, 보이는 이유가 애도할 일이 많아진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애도할 일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짓눌린 채 힘든 일에 대처하는 심리적 기제가 무너지고 온갖 중독에 빠져들며, 엉망이 되고 폭력적이고 초췌해진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기를 잃은 채 그저 숨이 붙어 있어서 사는 좀비가 된다. 포털에는 포털이 아주 많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포털을 봤을지 모른다. 포털에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르고, 전해졌을 수도 있다. 나도 포털을 봤을까? 포털은 개인적인 것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 들어 있는 공간 개념이다. 개인적이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포털이 있고, 지금도 포털이 생기고 앞으로 셀 엄두조차 낼 수 없게 포털이 생길 것이다. 포털로 가득 찬 세상에서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포털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홀린 듯이 포털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 데릭처럼 손을 넣거나 다브로스키 아저씨처럼 흙을 파서 묻을 수도 있다. 포털 안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손을 넣을 수 있을까? 포털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면, 나의 포털에는 만져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손을 넣어도, 얼굴을 들이밀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포털을 만들고 있다. 불안과 고민, 걱정에 쫓기며 잠드는 것이 힘들어서 책상 앞에 앉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장을 천천히, 넘기는 행위가 의미 없이 자꾸 구멍이 생기고,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좋지 않은 느낌을 자주 느낀다. 포털을 통해 내가 가벼워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포털을 만들 것이다. 애초에 포털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없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포털이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와 겹쳐서 찌릿했다. 곱씹을수록 자꾸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의 세계로 눈길이 가는 내 모습을, 이미 다른 차원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포털을 찾은 것 같다.


역노화의 설정은 참신했다. 나이가 들어 죽는 건 자연의 섭리이기에 놀랄 것도 없고, 너무 익숙하게 슬픔에 젖는다. 무뚝뚝하고 무심하고, 자기밖에 몰랐던 아버지(게리 시먼스)가 소생술 대신 유전자 역전을 선택하면서 딸 (하데)은 그의 역노화 과정을 참관한다. 그와 딸의 시간이 완전히 반대로 흐르는 것이다. 참신한 발상인 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니 말이다. 아버지의 역노화를 지켜보는 딸의 심정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했다. 역노화를 선택하는 것으로 심판을 받는 것일까? 하데()는 눈물의 임종이 싫고, 싸구려 용서도, 마지막 순간 한마디로 해결되는 속죄도, 다 싫어!’(38)라고 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유전자 역전의 선택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누구를 위한 최선일까? 역노화를 직접 경험하며 아기의 모습으로 죽는 아버지, 아니면 아버지의 역노화 과정을 참관하는 딸? 하데는 아버지가 점점 젊어지고 어려지고, 유아가 되는 순간에 울음을 터뜨린다. 눈물을 그치지 못한다. 하데의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하데는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나.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일까, 아니면 역노화를 참관하면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존재했던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무언의 감정 때문일까.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것, 무슨 이유로든 존재가 사라지는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건 괴로움과 슬픔, 고통 등 다양한 감정이 수반되지만, 동전 뒤집기처럼 쉽게 결론 낼 수 있는데 어째서 존재하는 쪽(남는 사람)이 더 괴로워야 하는 걸까. 아기가 된 아버지를 가슴에 단단히 끌어안고 뛰기 시작한 딸은 아버지를 용서했다(오래전에 용서했던 건 아닐까). 아버지와의 단절이 연결되었고,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으로 파괴되었던 하데 자신의 일부를 회복했다. 이는 하데가 존재하기 때문에,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으며, 간단하고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연결과 회복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 조건을 맞춰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두 작품을 보자. 단절과 연결 그리고, 파괴와 회복이 왜곡된 거울상으로 재현한 흐릿하고 낯선 우리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을 동시에 꿈꾼다는 것이(동시에 꿈꾸는 게 이기적이다) 쉽지 않겠지만 가능할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는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에서 자유를 찾지 못한다. 그 안이 아니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이 이루어지는 건 어렵지 않게 경험하거나 볼 수 있다. 단절되기 위해서 연결하고 연결하기 위해서 단절되고, 파괴하기 위해서 회복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파괴한다고 생각해도 될까. 모두에게 좋은 쪽(연결과 회복)으로만 흐릿하고 낯선 우리의 이야기를 끌고 가면 안 될까. 이것 또한 그저 나의 바람일 뿐이다. 모두의 바람이라면 바람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SF와 접목하여 흐릿하고 낯선 멀지 않은 우리 미래의 이야기를 참신하고, 깊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읽는 동안 정신이 몽롱했다. 두 작품을 잘 읽어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저 읽는 동안 내가 했던 생각, 느꼈던 것들을 적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를 제목으로 둔 건 최고다. 제목을 곱씹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낀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며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것 또한 슬픔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티저북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비매품으로 인플루엔셜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줄리애나 배곳 작가님이 궁금하다. 어떻게 이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작가님의 우주에 구멍이 있다면 그 구멍을 내는 것이 무엇인지 며칠 밤새워 듣고 싶다. 솔직해서 따갑고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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