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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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쯤 전 학교에서 한국현대사 수업을 들었을 때, 1945년 일본 패전(해방) 후 징용 징병으로 각지에 끌려갔던 조선인들의 귀국이란 주제가 잠깐 언급되었었다. 밀선을 타고, 또는 공식 귀국선을 타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사할린처럼 소련이 진주한 지역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또 다행히 귀국선에 올랐으나 의문 모를 사고로 배가 침몰해 수많은 조선인들이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그런 사실들을 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로 조선에 있던 일본인들은 어떻게 돌아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해방 당시 약 80만 명에 달했다던 일본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불과 몇 달만에 조선을 완전히 떠나갔을까? 그들이 떠날 때 패전국민임을 자각하고 조선인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떠나갔을까? 아니면 떠나는 그 순간까지 조선인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을까? 또 상전으로 군림하다가 갑작스레 떠나가는 일본인들을 보는 조선인들의 마음은 어떠했고, 양 민족의 '이별'의 과정은 어떠했을까?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의 귀국과정은 이 시기(해방정국) 역동적인 정치경제 사회 여러 주제에 가려, 또 재일동포들의 귀국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참고서도 드물어 관심이 있어도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사실 일본에서는 종전 당시 일본인들을 본국으로 보내는 일을 직접 담당했던 모리타 요시오란 사람이 이후 관련 자료와 귀국자들의 수기 등을 모아 정리한 책이 있지만 일본어이고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진 않았다.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이 책은 기존의 자료를 망라하면서도 딱딱한 역사서의 형식을 띠기 보다는 패전을 맞은 한반도 일본인들의 다양한 귀국 양상을 흥미롭게 보여주는데 주력하고 있어 반갑다. 나 자신이 그런 것처럼 해방 당시의 사회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부담없이,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책을 쭉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제목만 보고는 일본인들의 귀국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스스로는 한국사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막상 알라딘에서는 일본사로 분류된 것에도 살짝 놀랐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일본인들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의 귀국은 자연 조선사회와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패전을 짐작한 조선총독부의 무책임한 통화 발행이라든지, 일본인들의 재산처분 및 밀수, 그 과정에 이윤을 노리고 개입 중개 역할을 한 몇몇 조선인 모리배들 등 다양한 '이별'과정은 당시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풍경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책은 패전 후 하루아침에 달라진 일본인들의 처지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기의 흥미로운 사회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5장에서 언급된 식민지기 목욕탕 문화와 조선인 입욕 거부, 차별 문제는 식민지기의 일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단편이다.


저자는 결론 즈음에서 <요코 이야기>로 화제가 되었던 한일 역사인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또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피해자인식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또 어떻게 전후에도 살아남아 일본 국가적 차원으로 이어졌는지 등을 언급하고 있다. 또 그처럼 뒤섞인 역사인식의 극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저자 나름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1945년 한일 단절의 양상을 살펴보고, 나아가 현대 한일관계 갈등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저마다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한국사, 내지는 한일관계사에 더 어울리는 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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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 묻히다 -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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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달 초 갓 출판된 책을 조금 이르게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역사비평에서 나온 책의 제목은 적도에 묻히다’, 겉표지에는 책의 형식으로 역사 르포르타주’, 부제로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맨 아래에는 적도의 태양 아래 내동댕이쳐진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 전범이 되어,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이 되어 남쪽 나라에서 죽어간 젊은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먼저 저자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나마 해야 할 것 같다. 공동 저자인 우쓰미 아이코와 무라이 요시노리는 부부이다. 이 중 우쓰미 아이코는 일본의 전후 처리 내지 전쟁 책임, 재일조선인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역사학자이다. 시민사회를 통한 현실 참여활동도 활발히 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2007), ‘전후보상으로 생각하는 일본과 아시아’(2010) 등의 책으로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학자이다. 특히 한일 어디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조선인 전범에 대한 연구가 흥미롭다.

  조선인 전범에 대한 연구 열정은 태평양전쟁 시기 남방 일본군의 군무원으로 동원된 조선인들 각각의 삶을 추적한 이 책에서도 계속된다. 저자들은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일본의 아시아관을 묻고자 한 것이 연구의 한 동인이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우리가 여태 몰랐던, 내지는 일부 알려졌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식민지기 조선인들의 삶 일부를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선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두 일본인 저자에게 경의를 표함과 아울러 우리 역사의 일부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사실 우리가 먼저 기울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약간의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책은 19438-9월경 일본군의 군무원 모집에 응해 남방으로 간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시 하 엄혹한 사회경제적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군무원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지만, 황민화에 철저히 감화되어 일제가 내세우는 대동아 해방을 믿고 나선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산에서 두 달 간의 혹독한 신병 교육을 받고(군무원의 역할과는 상관없는) 간신히 인도네시아 혹은 싱가포르, 미얀마-타이 지역 등에 배치되었을 때는 그간의 기대와 희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책은 3천여 명에 달했던 조선인 군무원들 중 추적이 가능했던 여러 사람들의 행적을 르포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마다 기구한 사연과 운명을 지닌 모든 이들의 삶 전체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훈련 중에, 항해 중에, 근무 중에 갖가지 사고와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인도네시아 군무원 근무 중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하고 항일운동을 벌였다. 가까스로 일본의 패전을 맞았지만 곧바로 네덜란드 혹은 영국의 포로가 되어 전범으로 몰린 사람들도 있었다. 또 일부는 패전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남아 서양 열강에 대항하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헌신했다. 책에 나오는 양칠성(야나가와 시치세이)이 그러한 인물이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책임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지는 당시의 조선 군무원들. 해방 후 매일 같이 역에 나가 귀환열차에서 아들을 찾다 울며 돌아오기를 거듭했고, 결국 생사도 모른 채 사망했다는 양칠성의 어머니. 그 시대의 조선인들 중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이 비단 이 경우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나하나의 억울함·안타까움의 강도가 약해질 수 있는 게 아님은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양칠성을 비롯한 남방 군무원들의 사례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역사에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하마터면 완전히 잊혀 졌을 지도 모를 사례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접했을 때, 후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이들이 남긴 역사적 자취를 밟고 오늘 우리가 서있음을 상기한다면 적어도 이러한 역사를 우리가 아는 것, 알고자 노력하는 것, 그게 역사를 대하는 최소한의 책임이자 자세가 아닐까 싶다.

  덧붙여 양칠성의 존재가 왜 하마터면 사라질 뻔 했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일본 당국은 양칠성의 유골 수습과 재매장 시 그가 조선인임을 알았지만 유족을 찾아주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저자들의 부단한 노력 끝에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야 겨우 유족을 찾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당국의 노력·협조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식민지기 내선일체란 명목으로 조선인을 동원했던 일본이 전후 돌변해 갖가지 피해보상과 권리로부터 이들을 배제한 것은 우리가 예전부터 비판하던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는 왜 우리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노력에 소홀했던 건지, 왜 우리까지 그들을 손에서 놓았던 것인지는 의문이다.

  책의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기심과 무책임이 옛 식민지 치하의 한 인간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존재를 말살시키고 싶어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본식 성명만 봐서는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분간할 수 없는 사람들, 게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않았고(혹은 못했고), 남의 나라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한국 민족사가 굳이 주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혹은 일제의 일원으로 말단에서 전쟁 수행업무를 보조했고, 그 때문에 전후 다수가 전범으로 몰리기까지 했던 군무원이란 존재는 그다지 중요하게 않았고, 어쩌면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역사라는 인식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민족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보는 것도 같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맥락에서, 본문 중 인상 깊었던 부분 하나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식민지기 일본인은 조선인을 조센징으로 부르며 멸시했고, 그것은 조선인들의 뿌리 깊은 한으로 남아 있다. 조선인은 각각의 이름 즉 고유명사로서보다는 조센징이라는 집합으로 더 익숙하게 불렸다. 그런데 일본군과 인도네시아 현지 고용인들 중간 위치에 있던 조선 군무원들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인도네시아인이라고만 할 뿐 개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오직 인도네시아인만이라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우리 역사는 아픔과 피해가 더 많은 역사임에 분명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간혹 우리가 무심결에 잊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시사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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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 러일전쟁에서 한일병합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7
서영희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 역사비평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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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비의 <20세기 한국사> 시리즈 신간이 출간되었다. <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이번에는 대한제국 시기이다. 기존 5권의 시리즈가 출간되는 동안 정태헌 선생의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경제사>를 제외하면 모두 해방 이후의 현대사였기에, 이번 신간은 근대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더욱 반가울 것 같다.


저자는 대한제국 정치사를 전공한 서영희 선생이다. 선생이 박사학위 논문부터 꾸준히 천착해왔던 주제이니 만큼 이 주제의 대중서를 집필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 중에 한 분이리라 생각한다. 실제 내용 역시 편안히 읽히면서도 중간 중간 좀 더 깊은 주제를 다룬 스페셜 테마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느낌이다.


책머리의 부제는 망국 책임론을 넘어서이다. 책의 기본 문제의식을 말해준다. 우리는 대한제국 시기의 정치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04년 한일의정서 고문정치, 1905년 을사조약 외교권 강탈, 1907년 한일신협약 차관정치 식으로 주요 사건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있진 않았을까. 혹 그 와중에 대한제국의 역사를 점차 국권을 상실해가는 망국의 역사로만 치부해버리진 않았을까. 저자는 이와 같은 모든 선입견을 비판한다. 식민지화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도, 그럼으로써 보다 엄정한 시각으로 이 시기의 역사를 가늠하기 위해서도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시기 대한제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적 변동을 겪었는지를 중점을 두어 서술했다. 일제 통감부는 대한제국의 저항과 대응에 따라 어떤 식으로 통치권을 장악해갔는지, 고종과 근왕 세력은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고자 했는지, 그 외에 친일 내각이나 일부 개화 정객, 권력 지향적 계몽운동 세력들은 병합과 자치 사이에서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등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좀 더 역동적이고 절절한 대한제국의 역사상을 그려내고 있다. 교과서 수준의 지식을 넘어, 이 시기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다소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저자는 책머리에서 일제를 포함한 각 정치주체의 동향을 서술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고종과 일제, 두 주체의 서술에 집중된 감이 없지 않다. 예컨대 이 시기 국내 정치세력이 어떻게 나뉘어 있었는지, 고종 세력 중 양반 가문과 하층민의 신분적 구성·구별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이 책만 읽어서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병합 직전의 동향은 서술되고 있지만 단지 표면상의 동향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며 고종에 대한 서술처럼 행위의 배경과 목적, 과정 등을 아우르고 있지는 않다. 또한 대중서이지만 내용 이해를 위해 중요한 용어들은 간략하게라도 부가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46, 이완용에 대해 정동파라는 설명이 예이다. 정동파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구성 인물은 누구이며 어떤 성향인지 등이 간략히 추가된다면 이 시기 정치세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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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역사 세트 - 전2권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이종석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역사비평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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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이 기획한 역사교양서 20세기 한국사시리즈 중 다섯 번째로 북한의 역사 1·2가 발간되었다. 1960년까지를 다룬 1권은 남북 현대 정치·경제사 전공의 김성보 선생이 집필했고 1960년 이후 최근까지를 다룬 2권은 북한 정치사를 전공한 이종석 선생이 집필했다.

2007년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에 대한 책이 나온 뒤 한동안 뜸했던 20세기 한국사시리즈가 최근 다시 활발히 간행되는 추세인 듯싶다. 얼마 전 1980년대에 대한 책이 나와 시기적으로는 얼추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의 남한 현대사를 아울렀다고도 할 수 있는 시점에서 이번에는 북한에 대한 책이 나와 매우 반갑다.

먼저 이 책이 가진 장점은 북한 현대사에 대한 본격적인 대중서라는 점에 있다. 사실 지금까지 북한의 역사는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TV, 잡지 등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북한의 실상은 굉장히 편협하고 극히 일부분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념의 색안경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전문 연구자들의 연구서도 많이 출판되었지만 이 경우는 굉장히 전문적이고 어려워서 북한에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실 북한 역사에 대해 좋은 참고가 될 만한 기존의 대중서는 <북한 50년사>정도 외에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비평에서 나온 이번 책은 우선 북한사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 김성보, 이종석 두 분이 각각 자신의 주된 연구시기를 나눠 맡아 집필한 것이 돋보인다. 또한 내용 면에서 기존 학계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매우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된 점도 장점이다. 1권과 2권의 구분은 사회주의 체제의 형성기와 이후 본격화 단계이다. 특히 1권은 사회주의 체제 형성기를 인민민주주의사회로 칭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사회주의 단계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가 공존하는 가운데 어떤 발전경로를 거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남한과 다른 북한의 발전경로를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롭다. 특히 분단 직후 남북 체제가 정비되기 까지, 남북은 비슷한 여건에서 반제반봉건이라는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친일파 청산 문제나 토지개혁 문제가 그것이다. 책에는 그러한 내용들이 잘 실려 있어 남한과 다른 북한의 처리양상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최근 남북관계는 핫라인마저 끊긴 최악의 경색관계라 한다. 북한과의 정부·민간 교류가 단절된 채 편의에 의한 간헐적 접촉만 유지되는 모양새다. 북한의 역사에, 현재의 모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보도를 통해 들려오는 식량위기나 후계문제와 같은 표면적 측면을 단순한 가십정도로 여길 게 아니라면, 북한 형성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적절한 참고서적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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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왕의 공부
김태완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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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대학 학부생 시절, 조선 후기 공론(公論)정치에 관한 논문을 한 편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단순히 왕과 고위관료 몇몇에 의해 국정이 좌우되는 것이 아닌 여론의 수렴을 도모하고자 했던 정치행태에 대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논문에서 조참(朝參, 한 달에 네 번 중앙에 있는 문무백관이 정전에 모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정사를 아뢰던 일), 상참(常參, 의정을 비롯한 중신과 시종관이 매일 편전에서 임금에게 정사를 아뢰던 일), 윤대(輪對, 백관이 차례로 임금에게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 등 용어를 찾아보며 왕 노릇을 한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겠구나, 막연히 생각했었다.  

왕의 정치라는 건 두 방향에서 이뤄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널리 여론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민본정치를 표방한 이상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테니.  

다른 한 편으로 실제 정치적 의사결정 능력을 지닌 핵심 지배층의 부단한 자기개발과 노력, 공부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널리 여론을 수렴하고 거기에서 진정한 민심을 듣고 반영하는 것 자체가 결정권자의 역량에 달린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이 책에 다룬 왕이며 왕의 공부, 즉 경연인 것이다. 

율곡의 책문을 전공한 김태완 선생의 이 책은 조선시대에 행해진 경연의 개요, 왕의 일상 스케쥴과 경연, 실제 경연내용 등 말 그대로 경연에 대한 내용을 집대성했다. 조선시대 왕들과 당대의 석학들이 어떻게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는지, 그 토론과정에서 어떤 정치철학, 실제의 문제가 오고갔는지 등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율곡 이이 등 당대 석학의 글을 바탕으로 경연과정을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지만 장면 단위로 서술해 결코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다소 의외로 느낀 감이 없지 않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경연이라는 주제 자체에서 느껴지듯 철저히 '옛날 이야기'에만 집중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현실정치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본문도 마찬가지로 경연의 이야기 속에 저자의 문제의식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점은 독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현재의 정치세태를 그만큼 불만족스럽게 보고 있는 것일까? 어찌 되었건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현실로 돌아온다면,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부단히 현재를 궁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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