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에 묻히다 -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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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달 초 갓 출판된 책을 조금 이르게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역사비평에서 나온 책의 제목은 적도에 묻히다’, 겉표지에는 책의 형식으로 역사 르포르타주’, 부제로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맨 아래에는 적도의 태양 아래 내동댕이쳐진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 전범이 되어,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이 되어 남쪽 나라에서 죽어간 젊은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먼저 저자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나마 해야 할 것 같다. 공동 저자인 우쓰미 아이코와 무라이 요시노리는 부부이다. 이 중 우쓰미 아이코는 일본의 전후 처리 내지 전쟁 책임, 재일조선인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역사학자이다. 시민사회를 통한 현실 참여활동도 활발히 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2007), ‘전후보상으로 생각하는 일본과 아시아’(2010) 등의 책으로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학자이다. 특히 한일 어디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조선인 전범에 대한 연구가 흥미롭다.

  조선인 전범에 대한 연구 열정은 태평양전쟁 시기 남방 일본군의 군무원으로 동원된 조선인들 각각의 삶을 추적한 이 책에서도 계속된다. 저자들은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일본의 아시아관을 묻고자 한 것이 연구의 한 동인이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우리가 여태 몰랐던, 내지는 일부 알려졌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식민지기 조선인들의 삶 일부를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선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두 일본인 저자에게 경의를 표함과 아울러 우리 역사의 일부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사실 우리가 먼저 기울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약간의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책은 19438-9월경 일본군의 군무원 모집에 응해 남방으로 간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시 하 엄혹한 사회경제적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군무원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지만, 황민화에 철저히 감화되어 일제가 내세우는 대동아 해방을 믿고 나선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산에서 두 달 간의 혹독한 신병 교육을 받고(군무원의 역할과는 상관없는) 간신히 인도네시아 혹은 싱가포르, 미얀마-타이 지역 등에 배치되었을 때는 그간의 기대와 희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책은 3천여 명에 달했던 조선인 군무원들 중 추적이 가능했던 여러 사람들의 행적을 르포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마다 기구한 사연과 운명을 지닌 모든 이들의 삶 전체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훈련 중에, 항해 중에, 근무 중에 갖가지 사고와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인도네시아 군무원 근무 중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하고 항일운동을 벌였다. 가까스로 일본의 패전을 맞았지만 곧바로 네덜란드 혹은 영국의 포로가 되어 전범으로 몰린 사람들도 있었다. 또 일부는 패전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남아 서양 열강에 대항하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헌신했다. 책에 나오는 양칠성(야나가와 시치세이)이 그러한 인물이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책임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지는 당시의 조선 군무원들. 해방 후 매일 같이 역에 나가 귀환열차에서 아들을 찾다 울며 돌아오기를 거듭했고, 결국 생사도 모른 채 사망했다는 양칠성의 어머니. 그 시대의 조선인들 중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이 비단 이 경우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나하나의 억울함·안타까움의 강도가 약해질 수 있는 게 아님은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양칠성을 비롯한 남방 군무원들의 사례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역사에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하마터면 완전히 잊혀 졌을 지도 모를 사례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접했을 때, 후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이들이 남긴 역사적 자취를 밟고 오늘 우리가 서있음을 상기한다면 적어도 이러한 역사를 우리가 아는 것, 알고자 노력하는 것, 그게 역사를 대하는 최소한의 책임이자 자세가 아닐까 싶다.

  덧붙여 양칠성의 존재가 왜 하마터면 사라질 뻔 했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일본 당국은 양칠성의 유골 수습과 재매장 시 그가 조선인임을 알았지만 유족을 찾아주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저자들의 부단한 노력 끝에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야 겨우 유족을 찾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당국의 노력·협조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식민지기 내선일체란 명목으로 조선인을 동원했던 일본이 전후 돌변해 갖가지 피해보상과 권리로부터 이들을 배제한 것은 우리가 예전부터 비판하던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는 왜 우리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노력에 소홀했던 건지, 왜 우리까지 그들을 손에서 놓았던 것인지는 의문이다.

  책의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기심과 무책임이 옛 식민지 치하의 한 인간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존재를 말살시키고 싶어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본식 성명만 봐서는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분간할 수 없는 사람들, 게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않았고(혹은 못했고), 남의 나라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한국 민족사가 굳이 주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혹은 일제의 일원으로 말단에서 전쟁 수행업무를 보조했고, 그 때문에 전후 다수가 전범으로 몰리기까지 했던 군무원이란 존재는 그다지 중요하게 않았고, 어쩌면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역사라는 인식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민족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보는 것도 같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맥락에서, 본문 중 인상 깊었던 부분 하나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식민지기 일본인은 조선인을 조센징으로 부르며 멸시했고, 그것은 조선인들의 뿌리 깊은 한으로 남아 있다. 조선인은 각각의 이름 즉 고유명사로서보다는 조센징이라는 집합으로 더 익숙하게 불렸다. 그런데 일본군과 인도네시아 현지 고용인들 중간 위치에 있던 조선 군무원들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인도네시아인이라고만 할 뿐 개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오직 인도네시아인만이라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우리 역사는 아픔과 피해가 더 많은 역사임에 분명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간혹 우리가 무심결에 잊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시사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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