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의 월든 -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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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을 좋아하기 때문에 제목부터 끌렸던 책, 도시인의 월든. 가독성이 좋아 편하게 읽어나가기도 했거니와, 사색에 잠기게 하는 에세이였다. 감히 쓸모없어질 용기. 챕터2의 제목이자,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갓생, 열정, 정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당당하게 쓸모없어질 용기. 쓸모없음을 지향할 수 있는, 아니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시간은 자본주의 문화의 핵심이다. 적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생산하여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금이다라는 명언 아래 사람들은 24시간을 분단위로 쪼개가며 생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바쁘게 살지 않는 것은 시간 낭비처럼 여긴다. 특히 한국은 마치 특정 나이대별로 성취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듯 많은 사람들이 쳇바퀴같은 삶을 향해 달려간다.

 

십대 내내 공부하여 20대엔 명문대 진학, 25살엔 좋은 직장, 30살엔 결혼... 나이마다 달성해야 하는 사회적인 목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본인이 뒤처졌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시간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공간을 쪼개고 낮과 밤을 나누어 24시간이라는 하루를 만든 건, 세상을 창조한 자연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그렇다면 만약,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개념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존에 사는 피다한족은 현재에 집중하며 매일매일을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집단이다. 그들은 어제, 오늘, 내일을 모두 한 단어로 표현한다. 굳이 구분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시간관념이 없는 삶이지만, 그들은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없고 삶의 방식에 절대적으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원시적이고 미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학자 마셜 말린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개한 사람들은 재물이 없어서 빈곤한 것이 아니라 재물을 갖지 않아서 오히려 빈곤하지 않다.”

 

그들의 방식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거나 바람직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효율적인 삶만을 강요하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번쯤 여유를 갖고 자신을 돌아보는 건 어떤지 권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기. 이게 그 첫걸음이다. 몇 달 전, 이탈리아 출신 알베르토 씨가 아이에게 한 말이 화제가 되었다. “심심하면 심심하면 돼. 무엇을 할까, 무엇이 재미있을까 생각하게 되잖아. 그렇게 좋아하는 걸 찾게 돼. 심심해져야 알 수 있어.”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심심해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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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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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파친코그리고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과 시대적 배경이 동일하다. 하지만 경성을 배경으로 하기에 두 책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되어 신선했다. 어떻게 될지 예측이 가능한 진부하고 뻔한 글이 아니었다. 평범한 것처럼 그려졌지만 결코 어느 하나 평범한 인생은 없었던 등장인물 간의 얽히고 설킨 풍부한 서사도 한몫했다. 뛰어난 묘사와 디테일한 설정도 인상 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번역 능력에 계속 감탄하며 읽었다. 마치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듯 문장들이 유려하게 흘러가고 단어 선택도 적절하다 못해 딱 들어맞았다.

 

그리고 이야기 중 이름 석 자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나혜석 이야기가 몇 번 언급되어 반가웠다. 일제강점기 시절 인물인 나혜석은 화가이자 작가이며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외친 신여성이었는데, 작중에서도 그런 업적들이 언급된 것이 새삼 감동이었다. 이외에도 세부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여러 번 언급되어서, 작가님이 이 책을 위해 사전조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며 챕터 시작 전 연도와 등장인물들의 나이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어서 이해가 편했다.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보통 약자인 조선인은 선하고 강자인 일본인은 악하게 그려지는데, 읽는 내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지, 그 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가 작중에서 더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다. 선악구도가 완전하지 않다고 했지만 물론 일부는 제외다. 가장 악독했던 이토 아쓰오는 마지막에 태평한 인생을 살아가는 듯 보였으나, 나가사키 원자폭탄 사건으로 결국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이 암시되어 조금이나마 통쾌했다. 목숨을 구하려 한 행동이 오히려 죽음을 구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사는 것은 유관순, 안중근, 안창호 등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하여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운동가들 덕분이다. 죽을 각오로 몸을 바쳐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도, 직접 발로 뛰지는 않았어도 뒤에서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이들도.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했다. 역사 속에서 잊혀져서 기억되지 않는,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무명의 운동가들. 그때의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p.s. 외국인 중에는 평생 배워온 역사지식보다 <파친코>를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를 정확히 알게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더 널리 알려져야 할 이야기. 이 책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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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수학책 - 재미와 교양이 펑펑 쏟아지는 일상 속 수학 이야기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서현 옮김 / 북라이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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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해 버렸거나(aka 수포자), 수학은 어렵고 지루한 학문이라는 편견을 가진 (나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수학 이야기라고 해서 공식을 마구 늘어놓거나 문제를 푸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조명하는 것은 수학적 사고를 기르는 법이다. 흔히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된다고 하지만, 수학의 활용도는 굉장히 높고 광범위해서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이야기는 미분, 함수, 좌표, 확률, 집합, 증명, 벡터 이렇게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벡터를 제외하면 한국에서는 문과생도 모두 배우는 기본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생소한 건 없을 것이다. 데이트의 설렘곡선, 자전거와 생크림의 공통점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꽤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함수 f를 스타일이나 정체성identity로 해석한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글씨가 크고 행간이 넓어 가독성이 좋다. 이해가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소주제가 4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라 계속 바뀌어서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핵심내용에는 노란색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편하다. 무엇보다 나처럼 책에 표시하는 거 싫어하시는 분들은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물론 아쉬웠던 점도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예시로 드는 인물이나 사건을 몰라서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과생이거나 수학 전공자라면, 굉장히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서 다루는 건 정말 간단한 기초 개념이다. 반대로 수알못이지만 수학과 친해지고 싶은 분들께는 추천!! 수학에 관심 없는 자녀의 흥미를 일깨워주기에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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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기획자의 시선 - 브랜딩 실무자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양봄내음.권병욱 지음 / 유엑스리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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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0년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대기업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업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난 두 저자가 공저한 책이다. 부제 또한 브랜딩 실무자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 브랜딩 초보자들은 그냥 경력자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말이다.

 

스토리텔링의 시대에 더욱 강조되고 있는 브랜딩의 중요성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브랜딩이 정확히 뭐야?’, ‘브랜딩은 무슨 일을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든다면, 이 책을 펼쳐야 한다. 이 책은 브랜드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브랜드가 지향해야 할 것(정체성), 브랜드의 존재 이유, 살아남는 브랜드의 조건까지 브랜드의 A to Z를 모두 담고 있다.

 

브랜딩은 단순히 세련되어 보이게 외형을 포장하거나 콘셉트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요새 MZ세대들은 브랜드보다는 가치를 소비한다. 이에 맞춰, 더이상 제품만이 아닌 제품을 둘러싼 만족스러운 경험을 판매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제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제품을 사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이 제품이 만들어주는 나를 통해 소비자는 제품에 공감하고 애정을 가짐으로써 브랜드와 관계를 맺는다.

 

그렇다면, 브랜딩을 잘 하는 기업은 어디가 있을까? 흔히 애플, 스타벅스, 러쉬 등이 브랜딩의 모범 사례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아이앱 스튜디오와 카페 노티드 그리고 CJ제일제당을 꼽고 싶다. 의류 판매 업체 아이앱 스튜디오는 추첨을 통해 일부만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레플 제도로 희소성을 갈망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카페 노티드 또한 파스텔톤의 곰돌이를 앞세워 귀엽고 아기자기한 이미지를 구축했고, 그당시 생소했던 프랑스도넛이라는 특별함과 알록달록한 패키징, 핫플 방문을 인증, 전시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저격했다.

 

마지막으로 CJ제일제당은 위의 두 사례와 다르게 대기업으로서 훨씬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올해 초에는 밥과 아이스크림의 만남이라는 신선한 조합의 햇반 라이스크림 출시로 MZ세대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현재,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성수동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 <1의 맛집>, <햇반 쌀창고>를 세워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고객으로 만들었다. 그냥 도넛이라는 신제품을 출시한 것이 아니다. 그 도넛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다. 도넛의 이야기를 듣고 공간을 경험하게 된 소비자들은 이 도넛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됨으로써 CJ제일제당이라는 브랜드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런 브랜딩은 서사가 있는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디테일을 요구하는 만큼 까다롭지만, 그만큼 효과가 큰 방법이다. 이상적인 브랜딩이란, 모든 경험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 경험이 긴밀히 연결되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 한다. 일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관계는 없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브랜드가 소비자들과 강력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What보다 How, How보다 Why에 주목하는, 바야흐로 우리는 브랜딩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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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 생화학무기부터 마약, PTSD까지, 전쟁이 만든 약과 약이 만든 전쟁들
백승만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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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전쟁과 약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이 둘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질병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전쟁 중 우연하게 발병한 수많은 질병들 때문에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군은 교착상태에 빠진 중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페스트균을 살포했다고 한다. 민간인의 피해를 예상했음에도 저질렀으니 정말 극악무도하다.

 

실제로 전쟁에 질병을 이용한 건 일본군만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앨런 튜링을 비롯한 수학자들이 큰 활약을 했던 것처럼, 전쟁에서는 직업군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의사와 과학자 등이 군에 동원되었다. 의사가 대장이 되어 지휘한 사례도 있었다. 각종 질병으로부터 아군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지식은 꼭 필요했다. 전시상황은 열악했고, 많은 군인들이 좁은 막사 안에 모여서 지냈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염병이 퍼지기 딱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보통 전쟁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서로 총을 발포하며 싸우는 군인들의 모습이다. 또는 배 위에서 대포를 폭격하는 해상 전투 장면.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전쟁 장면은 보통 이러했다. 하지만 총기나 대포, 전술보다 더 무섭고 잔인했던 건 오히려 화학전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연의 섭리와 과학기술을 이용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그 당시에는 승기를 잡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했을 것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미국이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을 찾아낸 방법이다. 테러 이후 빈라덴은 잠적했고, 그 근거지를 수색하는데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침내 201152, 미국 특수부대는 빈라덴을 사살했다. 그런데 CIA10년간 꼭꼭 숨어 있던 빈라덴의 은신처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이 배경에는 백신 접종 정보가 있었다. 백신 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은 빈라덴 자녀의 DNA 정보를 통해 주소를 알아냈던 것이다.

 

의료와 과학기술, 개인정보의 힘은 정말 대단한데, 이렇게 치명적인 만큼 악용의 여지가 있어 무섭기도 하다. 2020년 등장해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모두 QR코드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과 백신 이슈를 직접 겪은 터라 남 일 같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끝물이라고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우리의 현실이었고, 또 언제 어떻게 마주할지 모르는 팬데믹 때문에 이 책을 더 흥미롭게 읽었다.

 

독극물로 사냥한 동물을 섭취해도 인체에는 아무 문제 없는 이유, 도파민을 만들어서 알약으로 먹어도 소용없는 이유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전쟁과 약을 둘러싼 인문학 보따리에 관심이 있다면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도 같이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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