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슴아 내 형제야 ㅣ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9
간자와 도시코 글, G. D. 파블리신 그림, 이선아 옮김 / 보림 / 2010년 10월
평점 :

꼭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듯한 표지의 사슴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세밀화로 표현된 그림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숨쉬는것 같았거든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시베리아의 숲에서 태어난 사냥꾼이다
내 옷은 사슴 가죽, 내 신발도 사슴 가죽
옷도 신발도 사슴의 다리 힘줄을 실 삼마 꿰매었다
나는 사슴고기를 먹는다
그것은 내 피와 살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사슴이다」
약간은 투박하게 느껴지는 어투의 글 속에 온통 사슴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사슴이 모여 살고 있는 시베리아 숲에서 태어나
몸을 온통 사슴으로 치장하고..심지어는 사슴고기를 먹기까지 하는 사냥꾼!!
이런 사냥꾼의 삶속에 사슴은 뗄래야 뗄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니..이제 나는 사슴이고..곧 사슴이 나입니다
<사슴아 내 형제야>는 시베리아의 숲과 강..그리고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사냥꾼과 사슴의 삶을 통해
우리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책입니다
그동안 아기자기한 글과 그림의 창작그림책에 익숙해 있던 윤후맘에게
'~ 한다'라는..어찌보면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글 전개가
처음엔 너무나 낯설고 살짝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
수려한 그림과 함께 사냥꾼이 들려주는
어릴적 사슴과 처음 만난 추억담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마치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이야기 마냥 귀를 쫑긋 세우게 됩니다
「사슴아, 오랜 세월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앞에 나타나
아름다운 몸을 주었던 사슴아
조상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었듯이
바로 그랬듯이 오늘도 나타나
자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다오」
사슴을 잡아 살을 발라내고 또 그 고기를 먹고 사는 사냥꾼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원시스럽고
극단적으로 보면 야만스러움이 느껴질 수도 있으나
희한하게도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숨죽여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사슴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하는 목적이 아니라
사냥꾼과 그 가족들..더 나아가 그의 조상들의 삶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존재이기에
비록 사슴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사슴을 위해 찬양하고 경배를 아끼지 않습니다
작가가 실제 사냥꾼의 삶을 곁에서 쭈욱 관찰하지 않는한
과연 이런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섬세함이 가득 묻어난 책 속에
자연을 향한 경이로움이 마구 느껴집니다
늘상 우리와 함께 있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살던 자연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보게 해주는 책!!
정말 오랜만에 만난 대작(?^^)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서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