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난 바다를 보고 싶소.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여기서 버나드는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고잠시 머뭇거렸다.「마치 ‘나‘라는 사람 이상이 된 것같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겠지요. 아무튼 훨씬 더 ‘나‘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오. 타인의 일부나 혹은 사회 조직체 속의 한 세포에 불과하지 않고 말이오.
「나는 이대로의 나 자신이 좋소.비록 비참할지언정 이대로의 내가좋단 말이오. 소마를 먹으면 아무리즐거워진다고 해도 나는 내 자신이되고 싶소.」
신체적 결함은 지적인 과도함을낳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 과정이 반대로, 즉 지적인 과도함이 신체적 결함을 낳는 것도 가능하다.지적인 과도함은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 고독을 자발적으로 택하고 일부러 눈과 귀가 멀게 하여 금욕주의적인 인공적 성 불감증 환자가 될수 있다.
저는 10년 전 런던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적일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진 학교 교육의 실상을 목격했습니다. 아이들의 일자리를 가로챌 로봇이 부상하고, 기후 변화는 생존을 위협하고, 세계화가 확대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월등한 감성 지능과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지만,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데 사용하는 방식 은 수천 년 전의 소크라테스 또는 공자에게나 익숙할 법한 것들이었습니다.
가족구성원들 사이에는 질식할 것 같은친밀감이 있었고 위험하고도 광적인, 그러면서도 아주 추잡한 관계가있었다. 어머니란 존재는 자기 자식들을 광적일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마치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에게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내 새끼!‘ 하듯이 말이다. 비록 고양이는 말을 할 수 없겠지만, 예를들어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