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예찬 - 타자 윤리의 서사 예찬 시리즈
왕은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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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대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아낌없이 내주는 것이다. 환대를 베푸는 이가 주는 순수한 선물(=환대)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삶과 말을 따라 절대적이고 무조건적 환대를 표방하고, 불교는 환대를 일컫는 '보시(布施)'라는 덕목을 가장 중시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처럼, 세상의 짓밟히고 억눌린 타자들에게 작가가 목소리를 주는 것처럼 타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내주는 이타적 몸짓은 윤리와 사랑으로 피어난다.

 

 

 


권정생의 『몽실언니』 속 몽실이가 그렇다. 작가는 몽실처럼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중심에 놓음으로 같은 생을 산 이들을 환대하고, 몽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환대를 행한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속 독일군 사령관의 아들 브루노는 슈무엘의 상처를 건드릴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함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음으로, 가스실에 갇혀서도 손을 놓지 않음으로 환대를 실천했고 죽어가면서도 환대의 정신을 놓지 않았다.

 

두 어린아이가 뿌린 환대의 정신을 보면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환대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환대를 지향하지만 실천은 늘 어렵다. 솔직히 내가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환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난 나의 선한 의도와 달리 상대에게 해나 상처가 될 수 있고, 자기만족이나 위로를 위한 가식이 될 수도 있단 점이다. 《환대예찬》은 마음속에 '일종의 도덕적, 윤리적 씨앗'이 심어져 있다면 굳이 자기검열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어쨌든 우리가 지금 당장, 더 많이 그리고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건 목숨을 내놓는 수준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환대'가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환대'에 가깝다. 이 책에 관심이 있어 이 글을 읽는 이라면 십중팔구 "더 나은 환대를 실천하려는" 이유에서 끌린 것이리라. 저자는 마음속 갈대가 많은 우리에게 "더 나은 환대를 지향하려는 겸손한 마음이 환대의 본질이요 윤리"라고 다독이며 환대로 환대를 권유한다.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받은 환대를 자신도 실천하기 위해 장미에게 돌아간 것처럼, 우린 (환대의) 대물림이 유전자 속에 있던 학습을 통해서 건 어떤 형태로든 물려받고 있으니 사람은 윤리적인 존재로 서서히 태어나는 존재인 것이다.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 문학을 보면 우리가 환대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지 더 명확해진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속 「씬짜오 씬짜오」는 베트남전에 무지했던 한국인과 베트남전을 겪은 가족을 둔 베트남인 사이의 갈등을 풀어가는 이야기인데 이 과정에서 오고 가는 환대가 인상 깊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나 『당신들의 천국』은 이와 반대로 환대와 폭력이 얼마나 가까운지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두 작품에선 환대가 (팔레스타인인, 한센병 환자, 인디언 같은) 약자에게 가하는 일종의 폭력이 된다.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은 소련의 국가안보부 소속의 심문 및 도청 전문가 게르트 비즐러 대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국가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그가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을 도청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드라이만과 어떤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까지도 그를 보호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환대이지만 비즐러도 많은 것을 얻었다. 반대로 누군가의 눈엔 모든 걸 잃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말로 내가 하느님의 형상과 닮게 만들어진, 나와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의 봉사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마르켈은 하인들의 하인을 자처하지만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르켈은 결국 열일곱이란 어린 나이에 단명하고 말지만 그의 형제 조시마 장교는 훗날 그를 떠올리며 잘못을 뉘우치고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환대의 물림은 언제고 빛을 발한다. 십 년째 묵혀둔 책을 올핸 꺼내야겠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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