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스
워푸 지음, 유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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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X》는 추리소설이지만 스토리가 거칠고 어둡거나 무섭지 않다. 복잡하지도 않다. 추리소설을 쓴 작가들이 '아귀'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사람과 차례차례 토론을 벌이는 이야기다. 신기한건 출간되기 전에 아귀가 이야기를 모두 알고 오류를 지적한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제 추리가 맞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러므로 탐정의 추리, 그러니까 선생의 소설 속 '진상'은 사실 잘못된 겁니다."

 

 


소설을 하나의 세계로 가정한다면 주인공인 아귀는 (작가가 만든 잘못된) 세상을 하나 하나 고쳐나간다. 차분하고 예리하게. 다행히도 지적당한 작가들은 소설 속 오류를 바로잡는다. 하지만 현실이었다면 어땠을까?


​"머나먼 은하 저편에 두 개의 행성이 있었다. 큰 행성의 이름은 '나'였고, 작은 행성의 이름은 '타이'였다. 나 행성 정부는 늘 타이 행성은 나 행성의 위성이라고 공언했지만, ... "


​소설의 앞장을 읽을 때까지만해도 중국 작가의 소설인줄 알고 놀랐다. 타이완(대만) 작가였다. 그럼 그렇지. 중국에 이렇게 버젓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작가가 있을리가 없지. ...

 

 


애석하게도 나라에 한이 많을수록 작품의 농도가 짙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약자를 짓밟고, 긴 식민지 생활동안 보고 배운 악행을 미처 떨쳐버리지 못한 나라. 우리에겐 옛일이고 아픈 기억이지만 그들은 지금도 겪고 있다. 우리의 상처가 딱지가 앉아 아물어가는 정도라면 그들의 역사는 아직 아물지 않은, 계속 곪고, 덧나고 있는 상처이다.

작가는 이 소설로 스스로 '아귀'가 되고 싶었을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아귀'가 되어주길 바랐을까? '올가미를 풀어줄 열쇠'를 손에 넣었지만 풀도록 가만 두지 않을게 뻔하니 누구도 열쇠를 쥐려 하지 않는다.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게 바로 권력자들이 원하는 바이다.

문학이 갖고 있는 저력이 부디 타이완 국민들에게 용기가 되길. 이웃나라 홍콩에도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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