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세트 - 전2권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처음 나는 조르바를 따라가 일꾼들을 감시했다.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른 생을 살아 보려고 했다. 새로운 갱도를 여는 것처럼 실질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 보기로 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우려고 애썼다. 언어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내 오랜 바람을 이루려고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속 '나'는 작가이다. 서재 안에 갇힌 채로 세상을 그려내는 데 한계를 느낀 그는 우연히 조르바를 만나 함께 여행하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그가 책상에서 상상하고 꿈꿔왔던 시작은, 야망은, 꿈은 야무졌다. 책상에 앉아 머릿속으로만 세상을 바꿀 생각들을 하는 작가는 그야말로 극'이상주의'적인 인물이다.

작가는 조르바를 통해 글이 아닌 몸으로 부딪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 간다. 자신과 아주 다른 삶을 사는 조르바를 흠모한다. 거칠게 없고, 본능에 충실한!! 자유로운 영혼. 그는 세상만사를 투명인간처럼 투과해 지나갈 뿐 어느 것도 소유하려 들지도, 걸리지도 않는다.
자유롭지만 현실을 사는 조르바가 그에겐 판타지이자 로망, 이상, 실현해야 될 꿈이다. 조르바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그들이 조르바의 노동을 놓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조르바는 고단해서 무언가 먹고 마시기 전에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럴 때 그와 대화하면 그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에 힘이 없었다. 몸짓도 느려졌고 퉁명스러웠다. 그의 말대로 엔진에 연료를 채우면 그의 몸이라는 기계는 다시 생기를 되찾고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기억은 되돌아왔으며 발은 날개를 단 듯 춤을 추었다."


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줘야 사람이 건강할 수 있다 생각한다. 몸이 고된 일을 하면서 정신이 깨어있기란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육체노동을 해본 적 없는 상류층(?) 분들의 정신이상(갑질)을 보라! 육체노동의 소실이 가져온 무시무시한 부작용이 틀림없다. 스스로 운전하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해야 고쳐지는 병이다. 육체노동이 없으면 정신도 고갈된다. 작가도 그래서 밖으로 나왔지만 몸소 부딪치진 않고 조르바를 통해 욕구를 해소한다.


"인간이라는 불운한 존재는 자기 주위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세우고, 그 안에 요새를 만들었다. 그 속에서 삶에 미미한 질서와 안정을 부여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미미한 행복을 말이다."

소설 속 '나'는 결국 그가 꿈꾸고 이루려던 것이 또 다른 요새임을 깨닫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길 모두 오르막이고 험하다. 같은 정상으로 향할 수도 있다.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같은 행동일지도 모른다. 조르바가 물어 왔을 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했다."

 

 

 

페미니즘의 영향으로《그리스인 조르바》속 여자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작가가 만약 여성을 싫어해서 여성 혐오를 자기 작품이 녹아낸 것이라면 또 다르게 봐야겠지만 (니체에 심취했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 일단 난 "세상 모든 여자"를 대변한다기 보다 "한 캐릭터"로 보고 이해했다. 조르바와 반대로 틀에 얽매여 평생을 허비한 (그 시대의 여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단 면에서 억울하지만) 대조되는 캐릭터로 느껴져,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강조하기 위해 쓰인 건 아닐까? (내가 너무 관대한가?..)

당시에도 성별은 물론 직업별 등 온갖 편견이 있었다. 실제로 소설에서 작가, 여자, 노인, 노동자 뭐 가릴 거 없이 까인다. 여자가 좀 많이 까이는데 그런 "여자"를 싫어한 게 아니라 "그런" 여자를 싫어한 거 아닐까. 여자를 싫어했다기에 (자신을 투영해 놓은) 소설 속 작가는 굉장히 무욕적이다. 누군갈 싫어하는 것도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내가 책을 통해 느낀 작가는 뽀얀 피부처럼 마음도 무채색이다.

조르바의 여성 혐오는 또 달랐다. 조르바에게 여자는 너무나 매력적인 탓에 모든 걸 버리게 만드는 자유마저 버리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존재. 악마가 내려보냈다 느껴질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 그에게 여자는 적이었다. 남자들이 수 세기에 걸쳐 품어온 여자에 대한 판타지, 이성에 대한 탐욕(갖고 싶지만)과 욕구 불만(가질 수 없는)이 어떤 것인지 느껴졌다. 세상 모든 땅을 정복하고 모든 걸 가져본 남자들이 유일하게 갖지 못한... 여자. 자유는 쟁취할 수 있을지언정 여자는 가질 수 없다!!는 귀한 교훈을 주는 책으로 보는 건 어떨까. :)



+

 소설이지만 어디를 펼쳐 읽어도 내용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앞부터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되겠지만 어쨌든 이 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스토리보단 의식의 변화가 골자라 봐도 무방하겠다.

번역은 열린책들에 가깝고 핸디북이라 가방 속에, 패딩 주머니에 쏙쏙 넣고 다니면서 볼 수 있어 좋았다~ 한동안 뜸했던 핸디북이 다시 나와 너무 반갑고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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