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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로 양복점
가와세 나나오 지음, 이소담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읽어 온 일본 소설의 90퍼센트는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한두 작가의 책 위주로 몰아 읽기를 하고 있어 너무 한 장르에 치우쳐 읽는게 아닌가 하는 내 스스로의 중지로 조금씩 다른 장르의 잔잔한 감동이 있는 책을 골라 읽고 있었다. 이번에 만난 《이사부로 양복점》도 이런 내 바람에 딱 맞는 책이었다.
"내인생은 앞으로 쭉 변변찮을 것이 분명하다." 소년은 자신의 삶을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어중간한 시골에서 태어난 것도 비극이오, 아쿠아마린이라는 이름으로 겪게 될 불편과 놀림도 비극이오, 엄마가 에로 만화가라는 사실도 비극이오, 키가 작고 동안인 자신의 외모 컴플랙스도 비극, 온통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살고 있는 17세 고등학생 쓰다 아쿠아마린. 오늘이 어제같고 내일에도 별 희망이 없다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쓰다에게 아주 특별하고 쇼킹한 일이 일어났다. 그건 등굣길에서 작은 쇼윈도에 걸린 코르셋을 본 것이다. 다름아닌 '이사부로 양복점' 쇼윈도에 프랑스 박물관 사진첩에서만 봤던 너무나도 우아한 코르셋이 걸려 있었다. 한 평생 점잖고 성실하게 정통 영국 신사복을 고집하며 재단해온 82세 노인 이사부로가 하루 아침에 변했다. 그는 혁명을 꿈꾼다.
"나는 82년이나 사회라는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안전지대에 앉아서 그저 순종하며 살아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얼간이 같은 체재 쪽에 서 있더구나. 남자로서 이 꼴이 한심하지 않니?"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한다! 화염병을 여자 속옷으로 바꿀 때야! 속옷으로 이 세상을 깨부술 순간이 왔어!" p54
이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82세 노인과 17세소년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세상에 화염병 아니지 코르셋을 던지는 유쾌 통쾌 상쾌 혁명이야기를 전재한다. 그리고 독특한 의상을 입고 다니는 아쿠아마린의 친구 아스카의 등장으로 세명이 중심이 되어 조용하기만 했던 시골 마을에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참 여기서 짚고 싶은게 있다. 최근 떠오른 핫 이슈가 '탈코르셋'이다. 과거 여성의 몸을 조여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어 숨쉬기도 힘들었던 그 코르셋 말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그동안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하고 억압했던 외적 기준을 코르셋에 빗대어 여기에서 벗어나가는 운동인데 소설의 주인공은 코르셋으로 혁명을 꿈꾼다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이들에게 혁명은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공무원인 아들의 반대와 특히 보수적인 상공회나 반상회의 노인회등에서 제재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모든 난관을 뚫을지. .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정말 이 말이 떠올랐다. 이때까지 이 열정을 어떻게 숨기고 사셨는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 마는 그들의 걸음 걸음에 요즘 힘든어하며 지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