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년 남한산성 항전일기 - 왕은 숨고 백성은 피 흘리다
나만갑 지음, 서동인 옮김 / 주류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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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年 남한산성 항전일기 (나만갑 저, 서동인 역, 주류성 출판, 20171215)

이 책은 병자년(1636년) 봄의 일부터 병자호란이 시작된 12월 이후 정축년 2월 병자호란이 끝난 뒤까지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나만갑의 [병자록]을 번역한 전쟁사이다. 전란 중 식량을 책임진 관량사로서 나만갑은 먼저 그 화란이 일어나게 된 연유를 들고, 다음에 눈으로 본 것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한다. 『병자록』은 현재 국내에 약 10여 가지의 필사본이 전해오고 있고, 역자는 5권으로 이루어진 『병정록』은 그 양이 방대하여 이번 번역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고, 대신 또 다른 『병자록』이 한 권짜리 필사본으로 남아 있는데, 병자호란과 관련된 내용이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이 책은 이를 번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만갑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전쟁의 전후 일들과 참상을 그날그날 있었던 내용 그대로 평가나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고, 역자는 현대인의 어감에 맞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오도록 잘 번역하고 있다.

북한 핵을 둘러싼 현재의 복잡하고 어려운 주변 4강 외교관계를 생각하면 역자가 이 시점에서 왜 이 책을 출간했는지 바로 이해가 간다. 역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형감각과 온화하면서도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외교력과 자강 및 인내의 자세라고 한다. 38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피눈물 나는 사건을 이 마당에 떠올려보려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다는 것이다. 병자호란이나 그 전 정묘호란은 무엇보다도 평형외교에 실해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었고, 명분과 지나친 자존,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외교 감각, 실리 외교의 실종이 문제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원인은 명나라 및 청나라와의 등거리 외교를 추진하던 광해군을 인조반정으로 몰아냄으로써 명나라에 편향된 외교정책을 밀어붙인 데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누인 내부적인 문제에 더해서 중국과 미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그때그때의 정치·외교적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중심을 잡아나가지 못하면 자칫 파멸에 이를 수도 있으며,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에 따라 나라의 안위가 달려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대한 네 나라가 에워싸고 있다 하더라도 그 한가운데 있는 우리가 중심을 잘 잡으면 우리는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으며, 이해가 걸려 있는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그 이점을 잘 살리면 영토가 큰 나라 못지않은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역자의 주장에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만약 우리가 주변 강대국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여유 있는 ‘평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현재의 여건은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일 수 있으며, 그 속에 나라의 살림살이는 물론 국격과 나라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도약의 요소도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우리의 민초들은 성숙해 있으므로 낙후된 정치권을 선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만 이런 내부적 여건과 달리 나라 밖 외교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도나 의지와 무관하게 바깥 사정은 수시로 달라질 수 있고, 그런 상황에 능동적으로 시기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는 외교에 실패하면 나라는 자칫 멸망에 이를 수 있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 조선의 정치 지도자들이 성숙된 정치 감각과 외교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정묘·병자의 양대 호란은 겪지 않았을 것이며 그 통에 애꿎은 조선의 수많은 민초들만 죽어나가거나 노예로 살아가야만 하는 비참한 일은 없었을 것처럼 현재의 정치·외교적 상황도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그 때와 매한가지이고 이 땅의 위정자들이 우왕좌왕하는 꼴이 그 때와 너무나 흡사하여 한 숨만 나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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