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박도봉의 현장 인문학
김종록.박도봉 지음 / 김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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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박도봉의 현장 인문학 (박도봉, 김종록, 김영사, 160807)

알루코 그룹의 박두봉 회장의 자수성가한 전기 형식의 에세이를 인문학자인 김종록 원장이 질문하고 박두봉 회장이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잘 맞지 않는 조합 같은데 나름 틀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은 김종록 원장의 뛰어난 글솜씨와 인문학적 소양이 글 전체의 흐름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고 보이며, 박두봉 회장의 평소 현장 중심론에 대한 소신을 솔직하게 피력하고 있다고 본다. 책의 초반에는 김종록 원장의 무척이나 날카롭고 긴장된 질문에 대하여 박두봉 회장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신화를 쓴 당사자로서 대답하기가 상당히 껄끄럽다고 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하여 부드럽고 편하게 답변해주고 있는 점이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김종록 원장이 담론의 방향에 대하여 냉정하게 다음과 같이 선을 긋고 있는 점이 좋아 보인다. “금수저가 흙수저에게 거드름 피우며 두는 훈수나, ‘태어날 때 가난한 건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건 당신 잘못이다’는 식의 그럴듯한 노동 강요라면 흥미없다. 꿈을 이룰 수 없는 환경 개선없이 노동만 강요하거나 큰 꿈을 꾸라고 부추기는 건 ‘희망난민’을 양산할 뿐이다. 건강한 시민의식과 지성을 마취시키는 내용없는 위로 역시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현장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단 대화답게 치열한 도전과 성공담에 어린 사람의 가치와 의미에 집중하도록 하죠.”

오늘날 과거 신분제 사회 못지않게 커져만 가는 불평등 구조에 분노하고 있는 민중적 정서가 팽배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의 금수저·훍수저론, 유럽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노동계급), 대기업 노조들의 고용세습 등 현대판 음서제도가 판치는 세상에서 과연 노력 여하에 따라 신분 이동이 자유로워져서 ‘땀이 혈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박도봉 회장은 땀이 혈통이 되고 부의 세습이 없어져야 세상이 건강해지고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누구라도 열심히 일하면 창업도 하고 부자도 될 수 있어야 하고, 그 부를 충분히 누리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면 사회적 경제의 밑거름이 되도록 부를 다시 환원해야 옳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Freeter족,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노동 의욕을 잃고 구직도 포기한 NEET족, 태어날 때부터 승자와 패자가 정해저 버린 계층 고착화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믿음이 현장 중심의 땀 혈통론과 잘 버무려져 있다.

2016년 현재 체류 외국인 수가 200만명이 넘었고, 5년 후에는 300만명 시대가 된다고 한다. 체류 외국인들 대부분이 국내의 청장년들이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3D업종인 제조업에 대다수가 투입되어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기술을 익혀서 자국에 돌아가 창업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왜 한국의 청년들이 제조업을 기피하고 현장일을 하기 싫어하는 것은 다분히 기성세대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본다. SNS에 어느 언론대학원 교수가 올린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기업은 연구개발 안 하고 면세점만 먹으려 하고

정당은 환골탈태 안 하고 흉내만 내려 하고

방송은 편성혁신 안 하고 스타만 잡으려 하고

신문은 문제제기 안 하고 대중이 원하는 것만 쓰고

청춘은 개척할 생각 안 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모두들 쉽게 먹으려고만 한다.』

자본주의의 정신인 청교도 정신이 근면, 절약, 성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가 이미 자본주의 성숙단계를 지났는지 온 세상이 힘든 일은 피하고 편한 길만 찾으려고 하는 세태를 잘 지적한 글이라고 본다. 더구나 대기업들이 연구혁신을 통하여 세계적 경쟁에서 승리하는 대신에 국내 중소기업의 구멍가게 밥그릇을 빼앗는데 몰두해 있는데 그래도 박도봉 회장과 같은 인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돌아가는 것 같아 위안을 삼아본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한국 경제가 몹시도 어렵다. 조선, 철강을 비롯한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국가 근간이 무너질 것이다. 현장은 노동과 땀의 무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곳으로, 인문학은 어떤 학문 분야보다도 실용적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입증해주고 있다고 보며, 과연 이 국가와 정부는 정치가, 경제가, 청년들이 이렇게 이 지경까지 갔는데도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각자도생할 거면 사회와 국가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묻는 박도봉 회장의 물음에 답하라고 하고 싶다.

전통적인 종교의 신이 불확실한 내세적 구원을 약속한다면, 자본주의라는 신흥종교의 신인 돈은 확실한 현세적 구원을 약속하는데, 땀 흘려 정직하게 모은 돈에만 신성이 있다는 박회장의 금언은 우리 시대 천민자본가들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본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많이 가진 사람들이 불법이 편법까지 쓴다면 공정하지 못하다. 호랑이에게 독수리의 날개까지 달아준다면 살아남을 동물이 없다. 결국은 먹이사슬 자체가 파괴되고 마는 거죠” Karl Jaspers의 “자기의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는 말을 수용하여, 자아는 타자와의 상호인정에 의한 산물이어서 인정받으려면 자기를 타자에게 던질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재일 기업인의 말을 해기며, 힘겨워도 머뭇거리지만 말고 자신을 삶의 현장에 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확신은 경험과 꿈이 결합할 때 나오며, 기발한 발상, 창조적인 발상은 발이 현장에 있고 머리가 미래를 겨냥할 때 튀어나온다. 신영복 선생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세계일주도 우주여행도 아니고,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여정이라고 ‘발’은 현장이고 실천이라는 것이다. 현장에 나와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무실에서는 절대 안 보이는 문제들이 현장에서는 고스란히 드러나고 해결의 실마리도 보인다는 것이다.

책의 전개를 왜 기승전결 형식을 취했는지 생각해 보니, 책 내용 자체의 기승전결 형식보다는 박두봉 회장의 인생 자체를 기승전결로 파악해서 서술하지 않았나 유추해 본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다음 글귀가 있다고 한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 땀의 노예가 되면 돈이 알아서 나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한당(不汗黨) 같은 놈’이라는 욕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땀 안 흘리고 많이 가지려고 하는 무리들을 말하는데, 예부터 성격이 포악하고 행동이 거칠며 배짱이 두둑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리고 재물 등을 강탈하는 불량배나 강도를 일컬어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하는데 요즘 왜 정치판과 경제인들이 연관되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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